SK에코플랜트는 더 이상 Internet Explorer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최적의 환경을 위해 다른 웹브라우저 사용을 권장합니다.

시행 임박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전력시장에 가져올 변화는?

중앙집중형으로 운영되던 전력 시스템의 지역 단위 분산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생산·소비의 지역단위 에너지시스템 구축을 위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올해 6월부터 시행된다. 법 시행 이후 전력산업 생태계는 어떻게 바뀔지, 공급자와 수요자 측면에서 전망해 봤다.

(출처: 셔터스톡)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년 이상 이어져 오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얼마 전 발생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으로 전통적인 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물리적 전쟁을 뛰어넘는 전 지구적 문제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포괄적인 방향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늘어난 재생에너지 관리를 위한 해답 ‘분산에너지 시스템’

기후변화라는 전쟁에 맞서는 세계 주요국의 탄소배출 추이와 탄소중립 전망을 살펴보면, 그동안 추진해 온 발전 방향을 조금 더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은 비교군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함을 볼 수 있다.

급진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의 중심에는 ‘전력’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석탄 화력 발전과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전력을 공급해 왔지만, 최근에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만 보더라도 초기 자급자족을 위한 지붕형 태양광 발전 시설 등이 주로 보급된 것을 시작으로, 지원 증가에 따라 *유틸리티급으로 그 규모가 확대됐다.

*유틸리티급 태양광 발전: 주택용·일반용 태양광 발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대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를 의미한다. 용량 기준으로는 통상 1MW급 이상으로 정의한다.

재생에너지가 도입되던 약 10년 전의 전력거래소는 500여 기의 발전기를 모니터링하고 이중 절반 수준의 설비를 활용해 *전력계통을 운영했다. 재생에너지를 포함해도 총 설비 수가 약 1만 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 기준으로 이제는 태양광 및 풍력 설비의 수만 13만 개가 넘는 상황이 됐고, 앞으로 10년 내 이러한 재생에너지 설비 수는 최소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설비를 기존의 중앙집중형 운영체계로 모두 모니터링하고 운영하는 것은 점점 쉽지 않아질 것이다. 분산형 운영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어 명의 아이를 관리하고 교육할 때는 가정교육이나 과외가 효율적이겠지만, 아이의 수가 천 명으로 늘어난다면 여러 개의 반으로 나누어 교육하는 학교나 학원이 더 적합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전력계통: 발전 공급자로부터 전력 수요자에게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 변전소, 송·배전선 등을 연결한 전력망.

.

전력 시스템 안정화 만드는 수요지 중심의 전력 분산

중앙집중식 공급 시스템을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에너지 공급 체계를 혁신해 계통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분산에너지가 활성화돼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직접 소비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중앙 계통에 문제가 발생해도 독립적인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본래 재생에너지는 수요지 인근에 설치해 전력 수요를 분산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은 기존 대규모 중앙제어형 전원과 마찬가지로 수요지와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보급이 진행됐다. 이 때문에 지역별 전력의 공급과 수요는 여전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수요는 없지만 발전 설비가 많이 위치한 동해안 지역을 수도권과 연계할 수 있는 *송전선로가 부족한 것이 쟁점이 되고 있다.

*송전선로: 발전소에서 발생된 전력을 변전소로 공급하는 전선 경로.

.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도입 핵심은 ‘통합발전소 도입’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지역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생산·소비의 지역단위 에너지시스템 구축을 위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이 지난해 6월 13일에 제정돼, 올해 6월 1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경북 전기 요금 더 싸진다? 분산에너지특별법 통과(출처: KBS 대구 공식 유튜브 채널)

분산에너지법은 크게 공급자 측면과 수요자 측면, 그리고 전력시장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공급자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도는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통합발전소)다. 현재 분산자원들은 통합된 관리체계 없이 산재된 상태로 *급전지시 없이 발전 중이며, 분산자원들을 통합할 수 있는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 제도는 존재하나 그 역할은 수요관리사업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VPP 제도가 도입되면 소규모 분산에너지 자원들을 ICT 기술을 이용해 연결한 뒤 통합적으로 제어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할 수 있어, 도매시장에서 대형 발전설비와 동일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급전지시: 전력거래소가 전력 수급 균형 유지와 전력계통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전력량(수요)과 발전 가능한 전력량(공급)을 확인하면서 발전시설에 발전 여부를 지시하는 행위.

분산에너지법의 시행령이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전력거래소는 제주도에서 진행 중인 시범사업을 통해 *전력도매시장형 VPP 구성을 추진 중이며, 지난해 8월 30일 전력시장운영규칙 변경을 통해 ‘전력시장 제도개선 제주 시범사업 운영규칙’을 도입하면서 VPP 형태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력거래소의 전력시장운영규칙은 도매시장에서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지만, 향후 *특화지역 전력판매형 VPP로 구성해 소매시장에 진출하는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전력도매시장형 VPP: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통해 전력도매시장에 참여해 급전지시에 대응하는 통합발전소.
*특화지역 전력판매형 VPP: 지정된 특화지역 내에서 소비자와 계약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통합발전소.

.

전력 시장 뒤바꿀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주요 포인트’

분산에너지법은 전력 수요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도권에 집중돼 있던 전력 수요를 발전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분산에너지법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산에너지법에는 수도권 등 *계통포화 지역에 대규모 전력소비자가 입주하는 경우 전력계통영향평가 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이 마련돼 있다. 이 조항은 ‘*전기사용예정통지’ 제도와 함께, 전력 공급자가 계통 포화 회피를 위해 전력 공급을 거부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하자면, 대규모 *수용가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하고 미리 전기사용예정통지를 해야 수도권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용가는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응에 필요한 비용과 전력계통이 혼잡하지 않아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비용을 비교해, 더 유리한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전력 수요가 분산될 가능성이 더 생겨나는 셈이다.

*계통 포화: 이미 계통에 접속돼 있는 수요가 많아 추가적인 접속을 허용하기 위해가 수도권에서는 송변전 설비의 구축이 필요한 상황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전력 수요가 이미 높은 지역에 대규모의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경우 나타날 수 있다.
*전기사용예정통지: 전기사업법 시행령 제 5조의 5 제 5호에 따라, 55MW 이상의 대규모 전기 사용자가 전기 사용을 미리 알리는 제도로, 한전은 이에 대한 전기 공급 가능 여부를 사전에 검토하고 회신한다.
*수용가: 자신이 사용할 목적으로 전력을 구매하는 고객.

또한 신규 대규모 수용가에게는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가 부여된다. 설치 의무지역은 택지개발, 도시개발, 혁신도시 및 산업단지 등 새로운 대규모 전력소비가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선정되며,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연료전지,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 지역난방까지 분산에너지의 정의 안에 포함돼있어, 다양한 에너지원이 활용될 수 있다.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는 지역의 전력자립률에 따라 차등 적용돼 상대적으로 전력자립률이 낮은 지역부터 설치 의무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분산에너지 비율도 도입 초기에는 낮게 책정되겠지만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지역별로 전기요금에 차등을 둘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전력 수요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전국에 단일요금제가 적용됐지만, 분산에너지법은 송배전 비용 등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다르게 시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 경우 전력 수요자가 상대적으로 송배전 이용요금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돼 분산에너지의 장점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전기요금의 정상화가 필요한 현시점에서 요금 수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지역별 전기요금에 차등을 두기는 불가능할 것이며, 요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자급률이 높은 지역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승률을 기대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분산에너지법 시행은 전력시장 공급자와 수요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전력시장제도 자체를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배전망에 적합한 설비를 설치·관리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운영까지 책임지는 배전사업자를 지정하는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과외 시스템에서 학교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담임제도를 마련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모두 한순간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이에 분산에너지법에서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지정해 규제샌드박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VPP와 다양한 분산자원이 기존의 시스템과 연계하여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장구조의 전반적인 개편이 요구되며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화지역의 규제특례를 통해 미래형전력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분산에너지의 확보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변화시킬 유인도 함께 제공이 되어야 한다. 시장의 현상을 반영하고,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신호는 바로 가격이다. 얼마전 동해안의 송전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사업자의 전력직접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에는 소매가격이 한전을 통해 단일가격으로 형성됐다면, 이제 발전 사업자와 전력 수요자가 개별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분산에너지시스템의 발전이 기대되는 행보이다. 앞으로도 분산에너지법이 전력 시장에 필요한 변화의 방아쇠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태의 연구위원은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후 2015년부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지난해부터는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 에너지 시장 및 정책 분야 Affiliate를 겸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계통 안정화 태스크포스(TF) 총괄분과 위원으로, 2023년부터는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저장산업 발전 전략 TF 전문위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