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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실현하려면 ‘수소 가격’이 얼마까지 떨어져야 할까?

2050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수소. 하지만 수소를 싸게 생산하여 상용화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다. 수소 생산 및 운송 비용을 현실화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함께 알아보자.

(출처: 셔터스톡)

백세훈

한국전력공사 경영연구원 선임연구원

요즘은 ‘친환경’ 키워드를 빼놓으면 물건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얼마 전 들른 백화점에서 거의 한 층 전체를 할애해 친환경 의류잡화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요즘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제품이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만들어졌다 홍보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 따져보면 아직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의류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단순한 예로 합성원료 대신 누에로부터 명주실을 뽑아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소재만 생각하면 친환경적이지만, 공장은 조명과 냉난방을 필요로 하고 재봉틀도 계속 움직여야 하며 명주실은 차에 실려 산지로부터 공장으로 옮겨진다. 일련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가 현재로서는 대부분 화석연료를 활용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친환경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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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수소’ 생태계에서 국가 간 무역은 필연

수소는 용도가 다양하지만 최근 특히 각광받는 활용처는 화석연료의 대체다. 물론 화석연료에 비해 다루기 어렵고 비싸지만 화석연료 대신 태워 전기를 만들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꼽힌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수의 주요국이 수소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어, 앞으로 전세계 수소 수요는 다양한 산업 부문에 걸쳐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수식어가 다른데, 생산에 활용되는 에너지원이 화석연료일 경우 그레이수소, 화석연료지만 탄소포집 기술이 적용되면 블루수소, 원자력이면 핑크수소, 재생에너지면 그린수소로 분류된다. 수소 산업이 발전 초기 단계인 지금은 생태계 활성화를 우선으로 수소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지원이 이루어지는 추세이나, 가장 청정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그린수소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재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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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재생에너지 발전 환경에 따라 그린수소 생산비용이 크게 차이난다. (출처: IRENA, “Global Hydrogen Trade to Meet the 1.5℃ Climate Goal”, ’22.7)

그러나 그린수소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생에너지는 국가별로 경제성이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의 경우 평지 위주의 지형에 일조량이 풍부한 중동이나 사막 지역과 비교하면, 산지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태양광선을 가리는 구름이나 안개가 끼는 날도 많은 우리나라의 발전 효율은 낮은 편에 속한다. 이에 동일한 발전 출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국가별 경제 환경에 따라 조달 금리나 설비 구축·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이 크게 다르다는 점도 경제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곧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그린수소의 생산비용 차이로 직결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린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비용보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우수한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비용이 운송 비용까지 모두 고려해도 싸다면, 그린수소를 만드는 대신 수입해 오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수소 수입비용과 생산비용의 차이가 발생하면 국가 간 수소 무역의 동인이 생겨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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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인 ‘수소 운송’은 또 하나의 난제

이미 주요국들은 발빠르게 움직이며 수소 무역을 준비하고 있다.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등의 국가는 충분한 재생에너지 발전력을 갖추고 본격적인 수소 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칠레, 포르투갈, 스페인, 중동 등의 후발주자들은 풍부한 재생에너지 잠재량을 활용해 이들을 뒤쫓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 일본, 우리나라 등 자국 내 수소 생산 여건이 좋지 않은 국가들은 선제적으로 수입경로 다각화 시도를 이어가는 등 국가 간 무역 흐름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상온에서 기체 상태인 수소는 밀도가 낮아 운송이 어렵다. 먼 거리를 경제적으로 이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수소를 액화하는 방법이 있다. 액화수소는 화학적 공정이 수반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 밀도가 높고 불순물에 대한 염려도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영하 253도라는 극저온의 환경을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단점도 있다. 수소를 암모니아로 변환하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상온에서 에너지 밀도가 높은 액체 상태로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변환과 재변환에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단점도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수소 운송 방식들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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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운송방식의 차이 역시 수소의 경제성에 영향을 미친다. (출처: Hydrogen Council, McKinsey&Company, “Hydrogen Insights”, ’21)

운송 수단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역 간 거리가 가깝다면 파이프라인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지다. 천연가스 운송 등 다른 용도로 이용하던 파이프라인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다면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설치된 경로로만 운송이 가능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단점이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트럭 등 다른 수단이 유리할 수도 있다. 지역 간 거리가 멀 때는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 선박을 통한 해상 운송이 경제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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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의 수소 무역 생태계는 어떻게 그려질까?

다양한 요인으로 2050년 수소 가격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1kg당 2달러 이하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IRENA, “Green Hydrogen Cost Reduction”, ’20)

현 시점에서 그린수소의 생산비용은 그레이수소나 블루수소의 몇 곱절이다. 그린수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비싸고 전해조 설비를 갖추는 데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설비 단가가 하락하고 기술 발전에 따라 설비의 생산 효율과 수명이 증가하면 그린수소의 생산비용도 매력적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실제로 국제재생에너지기구(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IRENA)는 최근 연구에서 2019년 1㎏ 당 3.2~7.7달러 수준이던 그린수소 생산비용이 ‘205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1㎏ 당 2달러 이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운송비용은 더 큰 폭으로 감소해, 선박을 활용하는 방식 기준으로 2022년 1㎏ 당 6.5~17.3달러 수준에서 2050년에는 1㎏ 당 0.8~1.7달러 수준까지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부두, 항만, 수소 운반선 등의 운송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점차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장거리 운송을 위한 수소 변환 및 재변환 효율도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험이 쌓이고 운송 절차가 최적화되면 추가적인 비용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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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A가 분석한 결과 2050년에 이르면 파이프라인과 해상 운송을 통해 그린수소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한국은 주로 인접 수출국과 암모니아를 거래한다. (출처: IRENA, “Global Hydrogen Trade to Meet the 1.5℃ Climate Goal”, ’22.7)

이처럼 그린수소가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될 2050년에는 전체 그린수소 무역 규모가 18.4EJ*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우리나라의 연간 총 에너지 소비량이 약 12.6EJ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 그린수소 국제 무역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지 짐작할 수 있다. 전체 무역량 중 약 55%는 단거리 파이프라인을 통해, 약 40%는 암모니아 형태로 선박을 활용해 비교적 먼 거리로 운송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사실상 섬과 같은 지리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어 선박을 활용한 암모니아 수입 의존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EJ(Exa Joule): 10의 18제곱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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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수소 경제성 확보 위한 선결과제는?

(출처: 국립과천과학관 공식 유튜브 채널)

수소산업 생태계는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단계이다. 원대하고 야심찬 미래 계획과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린수소 무역이 실제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책적 노력을 바탕으로 여러 측면에서 선결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여느 초기 단계의 산업이 그렇듯 시장의 형성과 기반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구심점이 되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정책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가 투명하고 명확한 가격신호를 제공해 참여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 제도와 공정한 규제 체계가 갖춰져야 하며, 기술 성숙과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현돼 사업성이 갖춰질 때까지 정부의 일관되고 충분한 재정 지원이 요구된다.

또한 수소의 품질에 관한 국제 인증 표준이 필요하다. 지금은 청정, 저탄소, 그린 등 친환경적인 수소에 관한 호칭도 제각각이며, 그 기준도 모호하다.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했지만, 매연을 뿜어내는 내연기관 자동차로 운송한 뒤, 보관하기 위해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했다면 정말 친환경적일까? 즉, 진정한 의미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은 수소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수소의 생산-수송-소비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 대한 탄소의 배출 기준을 정하고 이를 공인해 줄 수 있는 합의된 체계가 필요하다. 더구나 그 거래가 국가를 넘나드는 상황이라면, 국제적인 표준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기술의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수소의 거래가 성립하려면 비용 측면에서 다른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원보다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당장은 재정 지원으로 격차를 메우더라도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지속가능한 수소 생태계의 구현을 위해서는 운송 또는 변환 과정에서 효율이 개선되거나 재변환 없이 화합물 상태로 직접 활용하는 방법이 개발되는 등 다각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적 도전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으로 수소보다 훨씬 우수한 자원이 등장해 새 패러다임이 열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수소, 특히 그린수소는 탄소중립의 한 축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이며, 국제 무역 체계도 점차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수소 생태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할지 함께 지켜보자.

백세훈 선임연구원은 서울대학교 EPNEL(전력시스템 및 경제 연구실)에서 수학하며 전기공학박사를 취득한 후 2021년부터 한국전력공사 경영연구원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래 전력시장, 전력산업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 전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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