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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신규 배터리 규정으로 전 세계 배터리 판을 흔들다

전기차 도입이 확대되며 폐배터리 재활용이라는 숙제를 안게 된 인류. 지속가능한 배터리 산업을 위해 유럽연합(EU)이 먼저 칼을 빼 들었다. EU가 지난달 발효한 새로운 배터리 규정이 전 세계 배터리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자세히 살펴봤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파트너변호사

지질학적 관점에서 인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 후 11,700년간 이어져 온 *홀로세(Holocene)의 자연환경은 인류에게 우호적이었고, 인류는 자연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전 지구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단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자연환경과 지구 역사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데, 이처럼 인류의 활동으로 지질학적 변화가 개시된 시대를 일컬어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명명한다. 물론 국제지질학계의 논의는 진행 중이나,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릴 국제지질학총회에서 인류세가 비준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홀로세(Holocene) :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로, 충적세(沖積世) 또는 현세(現世)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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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도입, 그다음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전기차의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인류의 활동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면서 자연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전기차의 도입 및 확대일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30년 우리나라의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는 약 45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인 운전자뿐 아니라 렌터카, 택시, 차량공유업체들도 속속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으며, 전기차와 연계한 탄소배출권 사업모델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핵심부품은 바로 배터리다. 배터리는 ‘일차전지’와 ‘이차전지’로 나뉘는데, 일차전지는 재충전할 수 없어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교체해야 하지만, 이차전지는 일정한 범위에서 재충전이 가능해 배터리 수명이 지속된다. 전기차에는 주로 이차전지인 리튬이온 배터리가 사용되는데, 현재 기술력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는 약 500회 정도 충전하면 급속히 손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가 300~400㎞임을 감안할 때 전기차가 15만~20만㎞를 주행한 시점, 즉 7~10년이 전기차 배터리의 평균 수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폐차대수 및 폐배터리 시장 규모 전망(출처: SNE 리서치)

전기차를 이용하면 탄소 배출량이 감소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할 폐배터리는 딜레마다. 시장조사기관 SNE 리서치의 올해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폐차 대수는 2025년 56만 대에 불과하지만 2040년에는 4,227만 대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환경개선효과는 무색해진다. 만약 이 수많은 폐배터리를 그대로 매립하면 토양,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될 것이며, 소각하면 폭발과정에서 유해가스가 방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립환경과학원에서도 전기차 폐배터리를 유독물질로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폐배터리를 재활용 또는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경제성과 환경개선이라는 유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해체, 파쇄, 연소 등의 공정을 거쳐 폐배터리에서 리튬, 니켈, 망간과 같은 희소금속을 추출해 다시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유한 배터리 산업에도 당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배터리에 사용되는 희소금속은 대부분 해외 공급망을 통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산업 측면에서도 기업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SNE리서치의 올해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 규모는 2030년 539억 달러(약 70조 원)에서 2040년 1,741억 달러(약 220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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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해진 탄소배출량 기준, 이제 공급망 관리는 필수

배터리 공급망은 원자재 채굴부터 제품화, 사용, 폐기, 리사이클링까지 여러 단계로 구성된다. 특히 리튬과 같은 희소금속의 원산지와 채굴 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는 희소금속의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환경파괴와 인권침해가 이슈화되고 있다. 일례로 리튬 1㎏을 생산하려면 평균 2,200ℓ의 소금물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주변 농지나 습지가 급격히 건조해져 환경이 파괴되고 결과적으로 지역주민의 생존권 위협 등 인권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염호에 위치한 리튬 추출 시설. 일반적으로 염호에서 리튬을 생산할 때 소금물을 18~24개월 동안 햇빛에 건조한 후 잔여물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방식이 사용되는데, 이때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해 주변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편, ESG 측면에서 공급망 전체에 걸쳐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Scope 3) 측정 및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배터리 공급망 내 기업에게 탄소배출 관리 및 저감 능력은 생존의 필수요소이자 경쟁력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 감축을 목표로 재생에너지와 폐배터리 재활용 원료 이용을 확대하며 공급망을 새로이 구축하고 있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해당 기업이 소유·통제하는 발생원에서 배출된 직접배출량(Scope 1), 기업이 구입·소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간접배출량(Scope 2), 원재료 채취, 생산, 운송 및 유통, 사용, 폐기 등 제품 및 서비스의 전 과정(Life Cycle Assessment ·LCA)과 협력사의 배출량 등 사업 전체 밸류체인(Value Chain)에서 발생한 연관배출량(Scope 3)으로 분류된다.

해외 전기차 폐배터리 사업과 정책 사례(출처: YTN 사이언스 유튜브 공식 채널)

나아가 주요 국가들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과 관련된 정책을 내놓으면서 배터리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배터리 재활용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전기차 배터리 기업에 31억 달러(약 3조 9,700억 원)에 이르는 지원과 함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배터리 핵심 소재 회수율 관련 국가 차원의 목표를 선언하고, 자동차 생산기업에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민간 중심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약 30개 배터리 관련 업체가 배터리 공급망 협의회를 설립했으며, 미쯔비시 자동차의 폐배터리를 수거해 동일본 여객철도의 철도 건널목 용 전원으로 활용하는 등 폐배터리 재사용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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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EU 배터리 규정, 무엇이 달라졌나?

유럽연합(EU)은 지난 8월 17일 배터리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EU 배터리 규정을 발효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그간 배터리 공급망 내 정보 이력을 관리하기 위한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제도를 도입, 폐배터리 회수율 상향을 추진해 오면서 배터리 공급망 재편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지난 2023년 8월 17일 배터리 및 폐배터리에 관한 시장 감시 수준을 높이고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EU 배터리 규정(EU Battery Regulation)이 발효되면서 공급망 재편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 EU 배터리 규정은 전기차용 배터리뿐 아니라 휴대용, 산업용 배터리 등에도 적용되고 EU 역내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외 수입 배터리까지 적용돼,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기업들도 그 영향을 받게 될 예정이다.

*배터리 여권: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해 배터리 수요자가 해당 배터리에 대한 상세 정보와 탄소발자국을 QR 코드 및 CE 라벨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디지털 문서.

지난 8월 17일 발효된 새로운 EU 배터리 규정 내 주요 내용.

신규 규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① 배터리 생산자에 대해 사용 후 배터리 회수 목표가 부여된다. 휴대용 배터리의 경우 2027년 63%에서 2030년 73%까지, 전기 스쿠터 등 경량 운송수단 배터리는 2028년 51%에서 2031년 61%까지가 회수 목표다.

② 산업용 및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서는 폐배터리에서 나온 원자재 포함 의무가 부여되며, 최소 포함 비율은 단계적으로 상향될 예정이다.

또한 ③ 2026년부터 모든 배터리에는 전자적 형태의 배터리 여권이 도입된다. 2027년부터는 QR 코드로 소비자에게 배터리 성능, 내구성, 화학물질 구성 등의 정보와 함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탄소발자국)까지 표시해야 한다.

아울러 ④ 2027년부터는 스마트폰 등 휴대용 기기의 배터리를 소비자가 직접 탈부착 및 교체 가능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특히 신규 규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규정의 적용 범위가 환경 이슈에 그치지 않고 인권 보호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즉, EU 시장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모든 기업은 아동노동 및 열악한 노동환경 방지를 위해 배터리에 사용된 광물 원자재에 대한 OECD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제3자 인증을 거친 공급망 실사 보고서 작성 의무도 부여된다.

이에 신규 규정은 배터리 산업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입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규정의 적용 범위가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와 공급망 전체에 이른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EU를 넘어 전 세계에 미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종식 이후 회복세로 돌아서길 기대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대립 속 공급망 재편, 금리조정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로 우리 기업들이 처한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ESG 경영을 기치로 내세우고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산업계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변화는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신규 EU 배터리 규정 등 이미 예고된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면,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변화는 우리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오지헌 변호사는 ESG 분야를 전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법무법인 원’ 파트너변호사로, 법률 자문 등 일반적인 업무에 그치지 않고 전략 수립, 기업교육, 정책연구, 입법 자문, 해외 교류 등 ESG관련해 공공과 민간을 오가며 폭넓게 활약하고 있다. 한국무역상무학회 이사, 서울지방변호사회 ESG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지역난방공사 감사자문위원(ESG 부문), 한국표준협회 탄소중립표준화포럼(녹색금융분과)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며, 최근 발의된 ‘ESG 경영촉진법’의 입법 자문을 수행했다. 또한 오 변호사가 부센터장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원 ESG센터’는 오프라인 교육뿐 아니라 온라인 ESG 교육 확산에 일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HRD협회로부터 ‘베스트프랙티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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