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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파우더’ 처리에 미래 자원전쟁의 승패가 달렸다! –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최신 기술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의 급격한 성장 속에서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기존 방법들의 단점들을 극복한 혁신적인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어센드 엘리먼츠(Ascend Elemetns)를 비롯해, 이슈가 되고 있는 관련 최신 기술들을 다양하게 살펴보자.

폐배터리를 물리적으로 분쇄한 블랙파우더.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등의 희소금속이 포함된 블랙파우더의 처리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전승민

과학기술분야 전문 기자 및 저술가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 산업의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폐배터리가 골칫거리이자 새로운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폐배터리 재활용(Recycling)’ 기술 개발의 각축전도 거센데, 남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리사이클링 기술을 갖춘 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거머쥐는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국이다.

SNE리서치의 올해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 규모는 2030년 약 70조 원(539억 달러)에서 2040년 약 220조 원(1,741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황에 따라서 2050년이면 600조 원까지 규모가 확장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놀라운 성장 전망이 가능한 것은 폐배터리가 새로운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3월 발표한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산업의 원료 조달 효과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45년 우리나라는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으로 리튬 2만 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2년 한 해 국내 리튬 수입량의 28%에 해당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외에도 2045년이면 망간 2만 1,000톤, 코발트 2만 2,000톤, 니켈 9만 8,000톤 등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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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어떻게 하는 걸까?

그렇다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 걸까. 가장 먼저는 폐배터리를 잘게 부수어 가루, 즉 ‘블랙파우더’로 만드는 ‘전처리’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 블랙파우더를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리사이클링 과정의 효율이 결정돼, 블랙파우더를 21세기 후반의 새로운 자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후 블랙파우더에서 다시 여러 가지 자원을 뽑아내는 과정을 ‘후처리’ 공정이라고 하며, 후처리 공정은 습식과 건식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습식공정은 블랙파우더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리튬, 흑연, 니켈, 코발트, 망간 등 다양한 자원을 수거하는 방법이다. 리튬 등 귀한 자원을 버리지 않고 수거할 수 있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한편 건식공정은 전처리 공정이 필요 없다. 즉 블랙파우더를 만들지 않고 방전을 끝낸 폐배터리를 그대로 용광로에 녹여 합금 덩어리로 만든 다음, 이것들을 제련해 니켈, 코발트, 구리, 철 등의 금속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간단하고 일이 빠르지만, 용광로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탄소배출량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용광로 등을 설치해야 하므로 초기 투자비 역시 많이 든다. 무엇보다 건식공정을 통해서는 리튬을 회수할 수 없다. 리튬은 배터리를 만들 때 가장 귀중한 자원으로 꼽힌다. 건식공정에서도 합금 덩어리 이외에 배출되는 찌꺼기인 ‘슬래그(slag)’나 ‘분진’ 등을 모아 다시 처음부터 습식공정을 진행하면 리튬을 뽑아낼 수 있지만, 이때는 건식공정이 후처리가 아닌 전처리가 돼 적합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공정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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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식 같은 습식’ 리사이클링 방법은 없을까?

그럼에도 건식공정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과정이 복잡해 손이 많이 가는 습식공정 대비 공정이 단순하고, 여러 자원을 한꺼번에 리사이클링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자원을 갈무리하는 습식공정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건식공정과 같이 그 과정을 간소화할 수는 없을까.

다행히도 최근 그러한 기술이 등장했다. 이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습식공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습식공정은 용매(녹여내기 위한 물질)를 이용해 블랙파우더에서 수차례에 걸쳐 각종 금속을 녹여내는 방법을 썼다. 다시 말하자면, 첨단 배터리의 양극재로 자주 쓰이는 N·C·M(니켈·코발트·망간)이 필요하다고 할 경우, 기존의 방법으로는 이 세 가지 금속을 세 차례에 걸쳐 용매로 녹여내야 했다. 용매의 종류나 녹여내는 방법 등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현재는 국내 외 기업 대부분이 이 방법을 기본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는 ‘공침법(여러 물질을 동시에 침전시키는 방법)’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과거에 이 방법을 쓰지 않았던 것은 여러 물질이 한꺼번에 녹아 나와 성분비를 조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미리 성분비까지 조정할 수 있게 돼 정확히 원하는 비율의 합금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즉 단 한 번의 공정으로 최신 배터리 양극재인 N·C·M 합금을 그대로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폐배터리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공정을 크게 간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공정까지 간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이 기술은 SK에코플랜트가 전략 투자하고 있는 미국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혁신기업 ‘어센드 엘리먼츠(Ascend Elements)’가 보유하고 있으며, 독점적으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어센드 엘리먼츠는 2015년 메사추세츠주에 설립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전문기업으로 북미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중 하나로, SK에코플랜트가 이사회 의석 1개를 확보해 경영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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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에서 ‘리사이클링’ 연구 각축… 기술력이 미래 만든다

아직 상용화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이나 국책 연구기관 등에서도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현재의 재활용 공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IBS 연구진이 개발한 회전하는 액체 반응기 실제 모습(출처: IBS)

국내 기초과학연구원(Institute for Basic Science, IBS) 연구진은 지난 5월 ‘회전력 기반 반응기’로 폐배터리에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금속을 분리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밀도가 다른 용액이 서로 섞이지 않고 층별로 쌓이는 ‘원심분리기’의 원리를 이용해, 한 번에 금속 혼합물을 분리하고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보다 앞선 1월에도 비슷한 연구 성과가 소개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Korea Institute of Geoscience and Mineral Resources, KIGAM)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공정에 광물 선별 방법인 ‘부유선별’ 공정을 활용해, 다양한 용매를 선택적으로 한 번에 분석해 내는 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 역시 한 번의 공정으로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을 고루 추출할 수 있다.

이처럼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아직은 연구개발 단계로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상용화를 준비 중인 기업은 SK에코플랜트 진영이 사실상 유일해 당분간 독주가 예상된다. 실제로 최근 어센드 엘리먼츠는 미국 완성차 기업과 초대형 양극재용 화학물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북미 배터리 시장 공급망 장악에 나서기도 했다. 계약 규모는 최소 10억 달러(약 1조 3,350억 원)로, 향후 고객사 요청에 따라 50억 달러(약 6조 6,750억 원)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폐배터리를 리사이클링하면 ‘배터리 원료’를 얻을 수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리튬이나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의 재료를 리사이클링 공장에서 수급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업계 전문가들 중에는 2050년이 지나면 관련 원료의 50% 이상을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으로부터 공급받게 될 것이라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즉,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이 전기차 배터리 원료 중 상당 비율을 계속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중요 공급원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함의는 분명하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은 미래 사회를 만들고, 또 유지해 나갈 핵심 기반기술로 구분하기에 부족함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과학기술분야 전문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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