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착한 기업’에서 ‘성공하는 기업’으로
RE100이라는 단어가 처음 돌기 시작할 때, 그 뜻은 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충당한다는 말이었다. 현대의 기업은 대체로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장비를 가동하고, 사무실의 불을 밝히고, 냉∙난방을 위해서 전기가 꽤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다른 회사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나 가스 터빈 발전소가 아닌 태양광이나 풍력에서 만든 전기만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그 회사는 “우리는 RE100을 달성했다”라고 선언할 것이다. 또는 때에 따라 RE100의 기준을 정하고 달성한 것을 확인하는 모임도 있기 때문에 “RE100에 가입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나는 RE100이 기후 변화와 관련된 최근의 움직임과 다른 차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RE100이 예로부터 내려져 오는 환경 운동의 전통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RE100 유행은 흔히 비영리 환경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선진국의 대기업들이 홍보, 선전 효과를 목적으로 동참하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결과적으로 RE100을 선언한 회사들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인터넷 및 첨단 기업들에게는 당장의 실용성은 떨어질지라도 ‘미래를 앞서나가는 회사’라는 느낌을 젊은 층에게 보여 주는 수단이 됐다. 여기까지는 환경 운동의 익숙한 전통대로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분위기가 요즘 달라졌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위와 같은 기후변화 관련 활동을 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성과에 보다 밀접한 관련을 두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미지 개선만큼 실질적인 이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과거에는 전기차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선량한 자동차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다. 하지만 현대의 전기차는 빠르게 가속하고 첨단 기술이 많이 적용된 고성능 자동차로 인식되며 판매되고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 발전에 따른 기술적 돌파, 생산 방식과 공급망 혁신, 자율 주행과 같은 새로운 분야와의 결합 등이 이전과는 달라진 포인트다. 북극곰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들만 전기차를 찾는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다. 이와 유사하게 홍보와 선전에서 출발한 RE100 역시 요즘은 빠르게 변화해 가는 추세다. 사업의 성장이나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와 RE100이 연결될 수 있는 면을 부각하는 것이 요즘식이다.
RE100, 무조건 좋은 걸까?
가장 먼저, 최근 RE100은 공급망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고 확대되고 있다. RE100을 달성하는 기업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기업에 재료를 납품하는 협력 업체에도 RE100을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서비스 업체는 자회사 내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에서 나아가 서버 기기를 납품하는 타 회사에서도 RE100의 달성을 요구한다. 이런 경우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더라도 RE100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물건을 팔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묘한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RE100을 요구하는 이러한 공급망이 결국 연결되어 있는 회사들에게 간접적인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풍력을 직접 예로 들어 보면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환경 기술 선진국은 대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널리 퍼져 있는 편이다. 따라서 이런 선진국 회사들은 쉽게 재생에너지를 구해서 어렵잖게 RE100을 달성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어렵다. 곧 RE100 달성에도 부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단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선진국 대기업이 “이제부터 우리 회사는 RE100 달성 기업에서만 원재료와 부품을 사겠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한국, 베트남 회사들은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넓게 보아, 재생에너지가 발전한 선진국 회사들이 너도 나도 RE100을 달성하겠다고 하면, 성공할 회사와 피해를 볼 회사가 크게 나뉜다.
이런 방식으로 RE100은 한 회사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선진국과 그와 연계한 나라들 전체의 수준과 이익을 상승시키는 도구로 발전하고 있다. 현실에서 RE100 달성 회사들은 직접 회사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거나, 회사 앞 마당에 풍력 발전기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여러 많은 재생에너지 회사들로부터 전기를 사서 받아 오는 방식으로 RE100을 달성한다. 자기 지역에 재생에너지 산업이 발달해 있다면, RE100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전국의 모든 태양광 발전을 다 합치더라도 반도체 회사 한 곳의 전기를 다 충당할 수 없다. 풍력 발전기가 집중 설치된 영국 북해 일대나 타 유럽 국가들(10% 이상)과의 비중을 비교했을 때에도 한국(0.5%)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2021). 지역, 사회, 공동체가 RE100을 유리하게 활용할 배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CF100, RE100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때문에 몇몇 나라에서는 RE100을 수정한 CF100을 주장하기도 한다. CF100(Carbon Free 100)은 무탄소 에너지, 즉 이산화탄소 저배출 에너지를 말한다. RE100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RE100과 관련된 풍력, 태양광, 수력 외에 원자력 발전과 연료전지 등을 포함한다. 한국은 여전히 원자력으로 얻는 전기가 전체의 30% 선 정도는 되므로, CF100이라면 거기에 해당하는 전기를 구해 오기는 훨씬 쉬워진다. 시대가 변화해 가면서 원자력 안전에 관한 기술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고, 온실 기체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하게 인정되고 있으니, 기후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은 과거에 비해서는 확실히 높아진 추세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CF100은 기술적으로는 따져 볼 가치가 있는 대안이다.
그러나 RE100과 CF100을 동시에 견주어 보면, RE100의 전통적인 출발점이 도드라진다. RE100이 소비자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면, 원자력을 내세우는 CF100은 RE100과 비등한 호감, 참신함을 주기가 쉽지 않다는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런 점은 RE100을 CF100이 쉽사리 금방 대체해 나가지 못하는 장애물이 된다. 반대로 이야기해 보자면 CF100은 원자력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감성에 호감이 가는 참신한 것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더불어 CF100을 목표로 막상 원자력을 확대해 나간다고 할 때, 과연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이 가장 큰 성장 기회를 얻을 것이냐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세계 어느 나라든 원자력 발전을 확대할 때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는 주민을 설득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확대하기에 용이한 나라는 민주국가보다는 그와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 쪽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CF100의 미래는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은 문제를 풀어 가야 하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