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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라떼의 대변신! 녹조·적조에서 ‘석유’를 뽑아낸다고?

진화하는 친환경 과학 기술과 달라진 녹조·적조의 쓰임새를 알아보자.

‘녹조라떼’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녹조(Green Algae)는 하천의 물이 녹색으로 물드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심각해지면 마치 우유에 녹차가루를 듬뿍 탄 ‘녹차라떼’처럼 걸쭉하게 변하게 되는데, 이를 보고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 ‘녹조라떼’다. 우리나라 하천만의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세계 곳곳의 하천에서 수시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녹조의 원인은 하천의 ‘부영양화’다. 영양염(nutrients; 미생물 생육에 필요한 무기성 원소, 질소나 인 등)의 농도가 자연상태일 때보다 더 높은 상태를 말한다. 쉽게 이야기해 ‘비료 성분이 과도하게 녹아든’ 물의 상태를 일컫는다. 음식물 쓰레기, 축산분뇨 등 유기물 쓰레기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민물인 하천에서 부영양화가 일어나면 조류(미세 수중생물)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녹색이나 남색빛을 띄는 ‘녹조류’나 ‘남조류’가 빠르게 성장한다. ‘매생이’도 녹조류의 한 종류다. 이런 조류가 섞여들게 되면서 물이 녹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바다에선 녹조가 아니라 적조(Red Tide)가 일어난다. 원인은 민물과 마찬가지로 부영양화다. 물속의 풍부해진 영양소를 먹고 ‘식물성 플랑크톤(조류를 포함한 다양한 바닷속 미생물)’이 급속도로 자라나게 된다. 이를 바다 바깥에서 보면 붉은빛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바다에는 플랑크톤의 붉은 빛으로 인해 녹조가 아닌 적조가 생긴다.

만약 부영양화가 일어난 하천을 유속만 빠르게 만들어 바다로 그대로 흘려보내면 어떻게 될까. 하천에서는 미처 녹조가 생겨나지 못했다 해도 대신 바다에서 적조가 생겨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당연히 양식업, 관광업 등에 큰 피해가 일어나게 된다. 녹조나 적조가 대단히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과학계에선 이런 ‘녹조나 적조를 친환경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녹조 또는 적조를 포함하는 수중 광합성 생물, 즉 ‘미세조류’엔 적잖은 기름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여기서 기름을 추출해 성분조정을 거치면 석유 제품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이오매스’ 기술의 끝판왕이 미세조류?

 

동물이나 식물의 찌꺼기에서 연료를 뽑아내는 방법은 과거부터 잘 알려져 있던 기술이다. 우리 조상들은 동물에서 짜낸 기름을 호롱불 등의 연료로 썼다. 향유고래(sperm whale)의 기름은 양초를 만들기에 적합한 밀랍성 물질이었다. 이처럼 생명체에서 뽑아낸 연료를 ‘바이오매스’라고 부른다.

폐목재 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2세대 바이오매스는 식량을 원료로 하는 1세대의 단점은 극복했지만, 기름 추출 효율이 떨어진다

바이오매스 기술도 시대에 따라 발전해왔다. 1세대 바이오매스는 주로 사탕수수나 옥수수 같은 식량이 원료였다. 지금도 남미에선 사탕수수로 알코올을 만들어 자동차 연료로 쓴다. 하지만 이 방식은 기아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음식으로 자동차 연료를 만든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2세대 바이오매스는 폐목재나 톱밥 등에서 셀룰로스(Cellulose)라는 유기화합물을 분해해 알코올로 만든다. 하지만 이 역시 기름 추출 효율이 떨어져 상용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미세조류를 키워 연료를 만드는 3세대 바이오매스가 주목받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최근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미세조류를 키워 연료를 만드는 ‘3세대 바이오매스’다. 성장이 빠른 데다 기름 함량도 많아 사업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 휘발유나 항공유 등과 성분에서 큰 차이가 없고 미세조류를 기르는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물론 미세조류로 만든 인공석유를 연료를 사용하면 보통의 석유와 마찬가지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다만 미세조류를 기르는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되므로, 넓은 시각에선 지구 전체의 탄소가스 농도가 증가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렇게 추출한 기름은 성분조정을 거치게 되면 기존의 석유와 사실상 같은 물질이 되므로, 기존의 석유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미세조류, 인공석유계 원탑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미세조류 바이오매스와 비슷한 기술은 없을까? 최근 실용화 단계에 있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이퓨얼(e-Fuel)’이 가장 비슷할 것이다. 이퓨얼은 전기기반연료(Electricity-based Fuel)의 약자로, 대기 중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물을 전기분해 해 얻은 수소로 제조한 합성 인공석유를 뜻한다. 이 역시 기존의 석유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와 물에서 얻은 수소로 제조한 합성 인공석유 e-Fuel

문제는 이퓨얼을 제조하려면 적지 않은 전기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점이다. 수소 확보를 위해 물을 전기분해할 때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때 등 연료 생산 과정에서 많은 양의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발전소에서 대량의 전기를 지속적으로 받아와야만 생산이 가능한 연료인 셈이다.

 

반면 미세조류 바이오매스는 연료제조 과정에 쓰이는 에너지를 크게 절약할 수 있어 이퓨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녹조나 적조 등의 미세조류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태양빛만 있으면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놓기 때문에 에너지를 거의 들이지 않고도 지구 대기를 깨끗이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다 자라난 미세조류를 모아 기름을 짜내고 약간의 성분조정을 거치기만 하면 즉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다국적 석유 기업들도 앞다퉈 미세조류 인공석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세조류 확보, 하천에 있는 녹조 그냥 걷어오면 되는 게 아니다?

 

미세조류로 바이오매스 연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세조류 대량 확보가 기본이다. 흔히 ‘미세조류로 인공석유를 만든다’라고 하면 하천이나 바다에 떠 있는 녹조나 적조를 잠자리채 같은 것으로 걷어 온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실제로 기름을 생산하는 과정에 이 같은 방법을 채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방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태양빛이 강한 사막 등의 장소에 인공 배양시설을 만들고, 그곳에서 미세조류를 대량으로 길러낸 다음 이 미세조류를 이용해 기름을 짜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녹색황금’ 미세조류 (출처: YTN 사이언스 유튜브 채널)

이 배양시설엔 다양한 첨단기술이 총동원된다. 미세조류가 가장 잘 자라도록 성분이 조정된 배양액을 개발해 공급해야 하고, 녹조나 적조 등도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를 사용한다. 유전자편집기술 등을 이용해 최대한 성장속도가 빠르고 많은 기름을 짜 낼 수 있는 품종을 새롭게 개발해 사용하는 것이다. 일단 한 번만 실험실에서 품종을 개발해 내면, 그 다음부턴 배양액과 태양빛만 공급해도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 후, 기름을 짜내는 수고만 거치게 되면 대량의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석유, 플라스틱, 전기까지! 미세조류의 변신은 어디까지?

 

미세조류는 인공석유 생산 이외에도 상당히 쓸모가 많다. 가장 먼저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석유를 짜낼 수 있다는 말은 그 성분을 조정해 플라스틱 등의 생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7년 영국의 한 회사는 ‘울트라 III 에코’라는 이름이 붙은 신발을 만들었는데, 중국 타이(太) 호에 잔뜩 끼었던 녹조를 원료로 사용했다. 녹조에서 뽑아낸 기름을 처리해, 신발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EVA(Ethylene-vinyl Acetate, 에틸렌초산비닐)를 대체하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녹조에서 직접 전기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한 사례도 있다. 2016년 연세대 연구진은 녹조류의 광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를 가로채 내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터리얼스(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싣기도 했다.

환경오염 일으키는 녹조로 전기 만든다 (출처: YTN 사이언스 유튜브 채널)

환경오염 물질인 녹조나 적조가 하천, 바다 등에 생겨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선 하천의 부영양화를 줄여 최대한 녹조나 적조가 생겨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녹조나 적조 그 자체는 이론적으로 대단히 쓸모가 많다는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앞으로 지구 대기를 더 깨끗이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석유 및 화학제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미세조류 바이오매스’ 기술이 완전히 실용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과학기술분야 전문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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