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향후 세계의 경제, 정치, 사회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선언이 있었다. 이 선언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너무도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개념이라고 하며 서둘러 대응을 시작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모호한 개념이라고 하며 실체가 없다고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글로벌 팬데믹이 도래하며 그러한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기술이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점진적인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기술을 서둘러서 수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와 생활의 혁신적인 변화를 마치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일상인 양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 같았던 변화가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의 기습과 함께 빠르게 시작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달전문 플랫폼을 이용하여 음식을 주문하고 화상으로 수업을 받고 회의를 진행하며,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뉴스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구매하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확장이 가져온 변화
예상치 못한 속도로 빠르게 디지털화(化)된 현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소비 패턴 역시 당연히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거시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소비의 혁신적인 변화는 판매하는 기업의 몇 가지 혁신적인 패러다임 변화와 맥을 같이하게 된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전문가마다 각자 다른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확장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은 다들 아는 바와 같이 개별 주체가 서로 만나는 광장과도 같은 곳을 말한다. 이러한 플랫폼은 온라인 영역으로 넘어와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 그리고 기업과 기업이 만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일례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배달음식 앱(애플리케이션)은 음식점과 고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고 쇼핑 앱 또한 판매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숙박, 결혼중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한 예로, 로블록스(Roblox)라는 게임 플랫폼은 유저가 자신만의 게임을 쉽게 만들어 다른 유저에게 판매하는 플랫폼인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메타버스 플랫폼이 되어 유저 간의 소통과 상호작용을 발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은 단어 자체의 뜻에 ‘연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플랫폼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보다 많은 객체가 연결될수록 그 경제적 효과가 커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네트워크 외부효과’에 따라 플랫폼은 참여자가 많을수록 확장된다. 참여자의 증가에 따라 누적되는 수많은 데이터는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플랫폼 기업과 행동경제학 사이의 연결고리
그렇다면 플랫폼 기업과 행동경제학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행동경제학에서의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인슈타인처럼 사고하고 컴퓨터처럼 계산하고, 장래의 이익을 위해 바로 앞의 유혹에는 참을 줄 아는 간디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때로는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은, 즉 허버트 사이먼이 제안한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지니고 있는 의사결정시스템에서부터 기인한 각종 비합리적 행동들과 현재 주어진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경제학은 고전경제학에서 하듯이 시계열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을 하기보다 어떠한 인위적인 환경 하에 있는 인간과, 인위적이지 않은 환경 하에 있는 인간을 비교하는 실험을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실험경제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험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증명해 나가는 행동경제학은 샘플과 비용의 한계 때문에 제한적인 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많은 샘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인간의 행동,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예상과 달리 어떤 편향된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행동경제학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은 바로 플랫폼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객의 ‘빅데이터’는 소비자 행동경제학의 근거
플랫폼은 많은 유저(가입자, 고객)가 함께 활동하는 곳이며, 이들의 행동 패턴이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빅데이터’다. 플랫폼 기업의 많은 고객들은 엄청난 규모의 잠재적 실험 참가자와 같다. 기업이 플랫폼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현장 실험에 기반한 행동경제학을 도입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A라는 서비스 환경에서 고객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데이터를 확보하며, 다른 한편으로 B라는 달라진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행동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정밀하게 설계된 환경변화를 통해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반영함으로써 고객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행동경제학적 실험을 시행, 보다 나은 결과를 적용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중 유명한 사례로는 구글의 간결한 검색창 시작화면을 만든 주역인 마리사 메이어의 실험이 있다. 구글에 재직하는 동안 마리사 메이어는 웹사이트에 최적의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하여 폰트, 레이아웃, 검색결과 표시 등 다양한 문제를 검토했다. 마리사 메이어는 구글 유저를 대상으로 행동경제학의 주요한 실험 방법인 무작위 통제 실험(RCT)을 실시했다. 구글의 검색 결과를 표시하는 링크의 파란 글씨를 어떤 파란색으로 할지 결정하기 위해, 구글 유저에게 41개 색상의 파란색 링크 중 무작위로 뽑힌 파란색을 보여주고 어떤 파란색을 가장 많이 클릭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구글 검색결과의 파란색 링크가 탄생했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아마존의 예가 있다. 아마존은 웹사이트 유저를 대상으로 무작위 통제 실험과 같은 테스트를 실시하여, 결제 신용카드 등록 버튼을 웹사이트 초기 화면에서 쇼핑카트(장바구니) 페이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유저들이 신용카드를 등록하고 자동결제를 선택하는 과정을 쇼핑카트 보기와 결제 과정에 가깝게 위치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아마존은 수백 만 달러의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DT)는 이제 사회 및 경영 전반의 대세가 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고객에 대해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고객의 패턴과 빅데이터를 분석, 보다 많은 활동과 소비를 촉진하는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 또한 고객과의 접점을 활성화하여 보다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고객과 데이터가 있으면 어떤 기업이라도 행동경제학의 탁월한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다. 행동경제학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