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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지구의 날》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하라” 커지는 기업 자연자본 공시 요구, 대응책은?

최근 기업의 경영활동에 쓰이는 자원(Stock) 중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자연자본(Natural Capital)’로 정의하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기업공시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다가오는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자연자본 공시를 둘러싼 국내외 주요 동향을 살펴보자.

국제사회에서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기후위기로 인해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며 비옥한 토지, 깨끗한 물, 맑은 공기 등 예전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손쉽게 얻을 수 있던 자원들이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자원을 얻는 데 드는 비용이 늘고 채굴 및 운송, 생산설비 운용 등에도 차질이 빚어지면서 농업, 어업과 같은 1차산업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첨단산업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생물다양성: 지구상의 생물종의 다양성,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다양성, 생물이 지닌 유전자의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말.

어떤 자원이 중요해지면, 그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카테고리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예전엔 자연(Nature)이나 자원(Stock) 정도로 뭉뚱그려 분류하던 것 중 마치 자본(Capital)과 같은 역할을 해온 것들을 최근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다시 묶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 더해, 중요 자원을 잘 관리하기 위해선 매장량, 활용처 등 관련 정보를 상세히 파악하고, 누군가 이를 무분별하게 쓰지 못 하도록 감시하는 체계나 제도를 갖춰야 한다. 이에 현재 국제사회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자연자본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평가해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자연자본 공시 제도화를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국제기구다. 유엔환경계획(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Finance Initiative, UNEP FI),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 등이 뜻을 모아 2021년 6월 ‘자연자본 관련 정보공개협의체(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를 출범한 것이다. 이후 TNFD는 공시기준 개발에 나서 지난해 9월 최종 권고안(Recommendation of the TNFD)을 발표했으며, 미국, EU 등 주요국도 이에 보조를 맞춰 관련 제도를 손질 중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자연자본 공시를 둘러싼 국제기구와 국내외 동향을 함께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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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연자본이 중요해졌을까?

근래 자연자본의 가치가 치솟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연자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제 생태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왔다. 실제 글로벌 GDP의 50% 이상인 58조 달러(약 7경 8,068조 원)는 자연자본에 의존하고 있다.(Geneva Association, 2022) 예를 들어 담수가 부족해져 사람이 마시는 용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채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하는 광물들을 얻지 못 해 전기차 배터리 생산이 불가능해질 것이며, *초순수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도 모두 가동을 멈출 것이다.

*초순수(Ultra-Pure Water, UPW): 물 분자를 이루는 수소와 산소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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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연자본의 감소로 우리의 삶이 위협받는 이러한 가정이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2022년 발간한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The Global Risks Report)’에서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10대 리스크 중 ‘생물다양성 손실(Biodiversity loss)’, ‘천연자원 감소(Nature Resource Crises)’를 각각 꼽았으며,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Price-waterhouse Coopers) 역시 같은 해 발표한 생물다양성 관련 보고서에서 ‘앞으로 5개 기업 중 1개 기업이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붕괴로 심각한 운영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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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자본 공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자연자본 공시는 기업의 자연자본과 관련된 지표를 재무제표에 반영해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제도다. 2022년 12월 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 제15차 당사국 총회(Conference of Parties, COP 15)에서 제도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졌다. TNFD 역시 당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합의안(Kunming-Montreal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GBF)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ISSB)의 ESG 공시 기준,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lobal Reporting Initiative, GRI)의 지속가능성보고서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공시기준 최종 권고안을 개발했다.

*생물다양성협약: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제적 협력 방안, 국가 간 권리와 의무 등을 규정하기 위해 1992년 5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채택된 국제협약.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합의안: 제15차 CBD 당사국 총회서 채택된 합의안으로, 2030년까지 훼손된 해양 생태계의 30% 복원,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한 육상, 담수, 해안, 해양 생태계의 최소 30% 보전, 모든 종의 멸종위험 10% 감소 등을 위한 23개 실천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전 세계에 통용할 수 있는 ESG 공시 기준 마련을 위해 설립된 기관.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 유엔환경계획이 전 세계에 통용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입안하기 위해 설립한 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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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최종 권고안에서 TNFD는 자연자본을 ‘식물, 동물, 공기, 물, 토양, 광물 등 재생 가능하거나 재생 불가능한 천연자원이 결합돼 사람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자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이 자연자본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의존(Dependencies, 자연자본에 대한 의존) △영향(Impacts, 자연자본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 △위험(Risks, 자연자본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 △기회(Opportunities, 자연자본에 미친 영향을 완화하는 과정이나 그 결과로 얻는 기회) 등 네 가지로 분류하고, 기업이 이를 측정 및 관리할 수 있도록 기준과 지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기업에게 △자연자본 관련 위험과 기회를 경영진이 적절히 관리감독하고, △자연자본이 기업의 사업, 전략, 재무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투자자에게 공유하도록 했으며, △자연자본 관련 위험과 영향을 측정 및 관리해 지표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해 성과를 평가하도록 했다. 또한 ‘LEAP(Locate, Evaluate, Assess, Prepare) 접근법’이라는 구체적인 공시 방법론 역시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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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개국 320개 기업·기관 공시 참여… 우리나라도 환경부 주도로 논의 중

TNFD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성명을 통해 전 세계 320개 기업·기관들이 앞으로 2년 이내에 자연자본 공시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리스트에는 이케아(IKEA), 소니(Sony),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GSK, PwC 등 글로벌 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현재 58개국에서 약 1,100개의 글로벌 기업이 TNFD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공시 참여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자연자본 공시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 Rock)이 지난해 3월 투자 기업의 자연자본에 대한 의존도와 자연자본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 더해 ISSB는 CBD COP15에서 자연자본을 포함한 추가적인 ESG 공시기준 제정 계획을 발표하며 “TNFD를 포함한 여러 자연자본 관련 공시기준 활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글로벌 ESG 공시기준에 자연자본 공시기준이 반영될 가능성이 생긴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자연자본 공시에 대한 추이를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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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 수립 (출처: 연합뉴스TV(youtube.com) 유튜브 채널)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국내 상황에 맞게 수정한 제5차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했다. 이 계획을 통해 △생태계·생물종 보전 △생태계·생물종 지속가능한 이용 △모든 사회구성원 참여 확대로 이행 강화 등 3대 정책 분야에서 12개 핵심과제와 21개 실천목표를 도출했으며, 세부 실천방안 역시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또한 환경부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13개 기업, 4개 법무·회계법인들이 함께 ‘자연자본 공시 협의체’를 구성, 올해 3월 6일 1차 회의를 진행하며 국제사회에 커지고 있는 자연자본 공시에 대한 대응 역시 시작했다.

당분간 자율적으로 공시가 이뤄지겠지만, 자연자본 공시 역시 국제 표준에 따라 ESG 공시와 함께 의무화되는 시점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자본을 포함한 ESG 전반의 데이터를 수집∙측정하는 체계를 갖추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철저한 대비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이미 예고된 미래 속 새로운 기회들을 놓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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