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돕는 인공지능(AI)의 더하기 빼기
헬스케어, 스마트홈, 자율주행차… 이제는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는 인공지능(AI). 그렇다면 ‘탄소중립’을 위해 인공지능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일상 속 에너지 절약부터 재생에너지 생산까지, 탄소를 줄이기 위해 곳곳에서 열일 중인 인공지능 기술과 그 미래를 살펴보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연비를 높일 수 있는 운전 방법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 있다. 급가속이나 급정거를 하지 말라든가, 쓸데없이 엔진 공회전을 하지 말라든가, 너무 빠르거나 느린 속력으로 달리지 말라든가 등의 조언은 거의 상식에 속한다. 이런 방법을 모두 사용해 운전하면 같은 거리를 다니면서도 꽤 많은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그만큼 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줄일 수 있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연비를 높이는 운전 방법은 조금이나마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 개인에게는 기름값을 약간 아끼는 정도지만, 전 국민이, 나아가 온 세계 사람들이 연비를 높이는 운전 방법을 잘 지킨다면 탄소중립 달성에 중요한 공을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연비를 높이는 운전법은 실천하기가 굉장히 귀찮다는 데 있다. 내키는 대로 운전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빨리 달리게 될 때가 있다. 잠깐의 부주의로 급가속이나 급정거를 할 때도 있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러니 운전 습관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연비를 높일 수야 있겠지만, 전 국민이 항상 연비 좋은 운전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2020년대인 지금은 이런 문제에도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운전을 도와주면 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퍼지면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자동차를 운전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귀찮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연비를 아낄 수 있는 운전 방법을 꼬박꼬박 지킬 수 있다. 완벽하게 사람을 대신하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아니라 운전을 어느 정도 도와주는 인공지능 기능만 설치돼도 더 수월하게 연비 좋은 운전을 할 수 있다. 미래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들끼리 서로 통신하며 한쪽 길로 차가 너무 몰리지 않도록 배분해 교통 흐름을 더 원활하게 하는 방법도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연비를 높이는 운전법을 사용하는 시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 운전할 때보다 인공지능이 더 높은 연비로 운전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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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부터 얼굴 인식까지, 생활 속을 파고든 인공지능 기술
이런 관점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은 여러 분야에 쉽게 적용해 볼 만하다. 다시 말해, 널리 알려진 에너지 절약 방법을 일일이 실천하는 것은 귀찮으니,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 챙기도록 하면 그만큼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간단하게는 센서로 작동하는 공공화장실의 수도꼭지가 좋은 예시다. 사람이 직접 돌려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는 실수로 물을 틀어 놓은 채로 사람이 떠나 버리면 많은 양의 물을 낭비하게 된다. 물을 정화하고 끌어오는 데 든 전기도 그만큼 낭비한 셈이다. 만약 센서로 작동하는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다면 사람이 떠나도 저절로 물이 끊어지기에 쓸데없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사람이 없을 때 자동으로 꺼지는 복도의 센서 등이나 효율을 감안해 자동으로 켜졌다 꺼지는 자동 냉난방 장치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도 있다. 인공지능이 복잡한 문제풀이에 유리하다는 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만약 한 반 학생들을 키를 기준으로 누가 가장 농구 선수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고른다고 해 보자. 이런 문제는 간단하다. 키를 나타내는 숫자가 가장 큰 사람을 찾으면 된다. 학생 숫자가 천 명이나 만 명 정도 된다고 해도 컴퓨터는 간단히 숫자를 비교해 답을 낼 수 있다. 엑셀 같은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을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컴퓨터를 써서 잠깐 사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세상의 문제들 중에는 간단한 숫자 비교로는 무엇이 가장 적합한지 찾을 수 없는 문제가 대단히 많다. 예를 들어, 얼굴 사진 한 장을 가져다 놓고 그 사진과 가장 닮은 학생이 누구인지를 찾아야 한다고 해 보자. 사진과 닮은 정도라는 것은 숫자 하나로 간단히 표현할 수는 없는 문제다. 보통의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는 결국 사람이 눈으로 일일이 봐 가면서, 뭐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여튼 닮아 보이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면서도 어떻게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대상 역시 비교하며 가장 적합한(닮은) 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의 얼굴을 비교하는 인공지능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스마트폰에서도 잠금을 해제하려는 사람이 주인의 얼굴에 충분히 가까운 얼굴인지 따질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이 쓴 글자를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 문제다. 스마트폰에 그린 형체가 ‘가’와 비슷한 모양인지 ‘나’와 비슷한 모양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저 숫자 몇 개를 비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지만, 스마트폰의 인식 프로그램은 사람이 쓴 형체가 어떤 글자와 가까운지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답을 낼 수 있다.
내가 처음 인공지능 기술을 직접 사용해 보았던 것은 20년 전쯤 화학 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연구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이라 기계 학습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화학 연구” 정도의 말을 사용했지만 그 작업에는 지금의 인공신경망 인공지능과 같은 부류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공지능이 탄소, 수소, 질소 같은 성분이 수십, 수백 가지 조합으로 섞여 있는 여러 물질들의 구조를 보면서 사람이 먹으면 가장 위험할 것 같은 물질을 판정하는 것이었다. 탄소 몇 개가 질소 몇 개와 어떤 식으로 조합돼 있는 것이 독성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따지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닮은 얼굴을 찾아내듯이, 어떤 물질 구조가 다른 여러 위험한 물질들과 공통점이 있어 보이는지, 혹은 다른 안전한 물질들과 비슷해 보이는지를 찾아낸다.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에도 이런 방식을 도입해 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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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에너지 사용량 빼기(-)
예를 들어, 사람 대신 로봇과 기계 장치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스마트팜(Smart Farm)’이라는 시설을 갖췄다고 해보자. 어떻게 하면 이 농장에서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에너지는 가장 적게 사용할 수 있을까? 난방을 얼마나 하고, 채광을 어떻게 하고, 물과 비료를 얼마나 주고, 씨를 언제 뿌리고, 수확을 언제 할지에 따라서 에너지 사용량과 수확량이 모두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를 사람이 가늠하기란 복잡한 문제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은 가장 비슷한 얼굴을 찾아내듯이, 에너지 생산량을 줄이는 데 가장 적합한 운영방법도 찾아낼 수 있다. 만약 이런 방법으로 세계의 모든 농산물 생산시설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상당할 것이다.
이런 식의 인공지능 활용 방안은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 더욱 현실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할 때, 자동화된 공장을 인공지능이 관리하게 해 효율을 높인다는 이야기가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라는 이름으로 많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 공장 효율이 높다는 이야기는 같은 양의 제품을 생산할 때 드는 에너지 사용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만큼 탄소중립에 득이 된다. 한국전력의 2022년 기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54%는 산업용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특히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인공지능으로 공장의 기계 사용 효율을 끌어 올릴 수 있다면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는 상당할 것이다. 아예 설비를 개발하거나 건물을 지을 때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장 전기가 덜 들도록 설계하는 방법도 유망하다. 빌딩을 지을 때 최대한 통풍이 잘 되고 햇빛을 잘 받는 각도와 구조가 무엇인지 인공지능이 알아내도록 하고 그에 맞게 건물을 지어 올린다면 그만큼 난방비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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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재생에너지 생산량 더하기(+)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과는 반대 방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법도 앞으로는 점점 더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기를 만들어내는 재생에너지의 효율을 끌어 올리는 데도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튼튼하고 오래가는 풍력 발전기 날개를 만들려면 어떤 성분을 배합해서 재료를 만들어야 할까? 혹은 더 전기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을 만들려면 어떤 물질을 추가로 발라야 할까? 이런 문제는 20년 전, 화학 물질의 독성을 연구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하던 것과 대단히 비슷한, 말하자면 전통적인 인공지능 활용 문제다. 그때는 여러 물질 중에 어떤 물질이 가장 위험한지 인공지능에게 맞혀 보라고 했다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어떤 물질이 가장 풍력 발전기 날개에 좋은지, 태양광 패널에 좋은지를 맞혀 보라고 하는 것으로 질문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비슷하게, 인공지능을 재생에너지 장치 개발에 활용해 풍력 발전기의 모양을 보다 공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형상으로 개선하거나, 태양광 패널을 보다 햇빛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으로 설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일기예보 기술을 인공지능으로 더 발전시켜서 바람이 잘 부는 곳,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골라 설치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때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에너지 생산 시점과 소비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시기에 해가 지거나 날씨가 흐려지면, 태양광 발전으로 필요한 전기를 다 만들어낼 수 없다. 사람들이 전기를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어 풍력 발전으로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되면 그 많은 전기가 전력 계통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막아 내는 것도 고민거리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보면, 전기가 많이 만들어질 때 커다란 배터리에 전기를 충전해 뒀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 다시 배터리에서 빼내 쓰는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가 보급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용량의 ESS를 얼마나 설치해 둬야 할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전기를 언제, 얼마나 많이 쓰는지 미리 예상해야 하는데, 이런 예상 역시 인공지능을 통해 효과적으로 수행해 볼 수 있다. 더 멀리 보면 인공지능은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라는 이름으로 좀 더 폭넓게 전력망을 관리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도전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이면서도 더 싸고 안전하게 전기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스마트그리드: 전기 및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전력망을 지능화·고도화함으로써 고품질의 전력서비스를 제공하고 에너지 이용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력망.
앞으로 IT 산업이 발달할수록 에너지 사용을 줄여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빼기 방향’과 재생에너지를 더 잘 생산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더하기 방향’ 모두에서 인공지능이 좋은 성과를 보여줄 가능성은 높아진다. 혹시 인공지능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 인공지능을 설치해 둔 컴퓨터들이 소모하는 에너지, 그 자체가 너무 커지지는 않을까? 한창 생성형 인공지능이 화제가 됐을 때, 대규모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에 많은 숫자의 컴퓨터와 막대한 전기가 소요됐다는 소식이 꽤나 걱정스러운 어조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싶지는 않다. 최근 ‘온 디바이스 AI’라고 해서 인터넷 연결 없이 스마트폰 내부에 인공지능 기능을 포함시킨 신제품이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제품이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다든가 하는 불만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이미 개발된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인공지능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인공지능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신제품을 보면 인공지능의 전력 소모 문제도 기술 발전으로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 볼 만하지 않나 싶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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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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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연비를 높이는 운전법은 실천하기가 굉장히 귀찮다는 데 있다. 내키는 대로 운전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빨리 달리게 될 때가 있다. 잠깐의 부주의로 급가속이나 급정거를 할 때도 있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러니 운전 습관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연비를 높일 수야 있겠지만, 전 국민이 항상 연비 좋은 운전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2020년대인 지금은 이런 문제에도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운전을 도와주면 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퍼지면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자동차를 운전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귀찮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연비를 아낄 수 있는 운전 방법을 꼬박꼬박 지킬 수 있다. 완벽하게 사람을 대신하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아니라 운전을 어느 정도 도와주는 인공지능 기능만 설치돼도 더 수월하게 연비 좋은 운전을 할 수 있다. 미래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들끼리 서로 통신하며 한쪽 길로 차가 너무 몰리지 않도록 배분해 교통 흐름을 더 원활하게 하는 방법도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연비를 높이는 운전법을 사용하는 시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 운전할 때보다 인공지능이 더 높은 연비로 운전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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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부터 얼굴 인식까지, 생활 속을 파고든 인공지능 기술
이런 관점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은 여러 분야에 쉽게 적용해 볼 만하다. 다시 말해, 널리 알려진 에너지 절약 방법을 일일이 실천하는 것은 귀찮으니,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 챙기도록 하면 그만큼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간단하게는 센서로 작동하는 공공화장실의 수도꼭지가 좋은 예시다. 사람이 직접 돌려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는 실수로 물을 틀어 놓은 채로 사람이 떠나 버리면 많은 양의 물을 낭비하게 된다. 물을 정화하고 끌어오는 데 든 전기도 그만큼 낭비한 셈이다. 만약 센서로 작동하는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다면 사람이 떠나도 저절로 물이 끊어지기에 쓸데없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사람이 없을 때 자동으로 꺼지는 복도의 센서 등이나 효율을 감안해 자동으로 켜졌다 꺼지는 자동 냉난방 장치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도 있다. 인공지능이 복잡한 문제풀이에 유리하다는 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만약 한 반 학생들을 키를 기준으로 누가 가장 농구 선수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고른다고 해 보자. 이런 문제는 간단하다. 키를 나타내는 숫자가 가장 큰 사람을 찾으면 된다. 학생 숫자가 천 명이나 만 명 정도 된다고 해도 컴퓨터는 간단히 숫자를 비교해 답을 낼 수 있다. 엑셀 같은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을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컴퓨터를 써서 잠깐 사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세상의 문제들 중에는 간단한 숫자 비교로는 무엇이 가장 적합한지 찾을 수 없는 문제가 대단히 많다. 예를 들어, 얼굴 사진 한 장을 가져다 놓고 그 사진과 가장 닮은 학생이 누구인지를 찾아야 한다고 해 보자. 사진과 닮은 정도라는 것은 숫자 하나로 간단히 표현할 수는 없는 문제다. 보통의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는 결국 사람이 눈으로 일일이 봐 가면서, 뭐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여튼 닮아 보이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면서도 어떻게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대상 역시 비교하며 가장 적합한(닮은) 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의 얼굴을 비교하는 인공지능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스마트폰에서도 잠금을 해제하려는 사람이 주인의 얼굴에 충분히 가까운 얼굴인지 따질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이 쓴 글자를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 문제다. 스마트폰에 그린 형체가 ‘가’와 비슷한 모양인지 ‘나’와 비슷한 모양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저 숫자 몇 개를 비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지만, 스마트폰의 인식 프로그램은 사람이 쓴 형체가 어떤 글자와 가까운지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답을 낼 수 있다.
내가 처음 인공지능 기술을 직접 사용해 보았던 것은 20년 전쯤 화학 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연구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이라 기계 학습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화학 연구” 정도의 말을 사용했지만 그 작업에는 지금의 인공신경망 인공지능과 같은 부류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공지능이 탄소, 수소, 질소 같은 성분이 수십, 수백 가지 조합으로 섞여 있는 여러 물질들의 구조를 보면서 사람이 먹으면 가장 위험할 것 같은 물질을 판정하는 것이었다. 탄소 몇 개가 질소 몇 개와 어떤 식으로 조합돼 있는 것이 독성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따지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닮은 얼굴을 찾아내듯이, 어떤 물질 구조가 다른 여러 위험한 물질들과 공통점이 있어 보이는지, 혹은 다른 안전한 물질들과 비슷해 보이는지를 찾아낸다.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에도 이런 방식을 도입해 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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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에너지 사용량 빼기(-)
예를 들어, 사람 대신 로봇과 기계 장치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스마트팜(Smart Farm)’이라는 시설을 갖췄다고 해보자. 어떻게 하면 이 농장에서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에너지는 가장 적게 사용할 수 있을까? 난방을 얼마나 하고, 채광을 어떻게 하고, 물과 비료를 얼마나 주고, 씨를 언제 뿌리고, 수확을 언제 할지에 따라서 에너지 사용량과 수확량이 모두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를 사람이 가늠하기란 복잡한 문제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은 가장 비슷한 얼굴을 찾아내듯이, 에너지 생산량을 줄이는 데 가장 적합한 운영방법도 찾아낼 수 있다. 만약 이런 방법으로 세계의 모든 농산물 생산시설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상당할 것이다.
이런 식의 인공지능 활용 방안은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 더욱 현실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할 때, 자동화된 공장을 인공지능이 관리하게 해 효율을 높인다는 이야기가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라는 이름으로 많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 공장 효율이 높다는 이야기는 같은 양의 제품을 생산할 때 드는 에너지 사용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만큼 탄소중립에 득이 된다. 한국전력의 2022년 기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54%는 산업용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특히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인공지능으로 공장의 기계 사용 효율을 끌어 올릴 수 있다면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는 상당할 것이다. 아예 설비를 개발하거나 건물을 지을 때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장 전기가 덜 들도록 설계하는 방법도 유망하다. 빌딩을 지을 때 최대한 통풍이 잘 되고 햇빛을 잘 받는 각도와 구조가 무엇인지 인공지능이 알아내도록 하고 그에 맞게 건물을 지어 올린다면 그만큼 난방비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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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재생에너지 생산량 더하기(+)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과는 반대 방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법도 앞으로는 점점 더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기를 만들어내는 재생에너지의 효율을 끌어 올리는 데도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튼튼하고 오래가는 풍력 발전기 날개를 만들려면 어떤 성분을 배합해서 재료를 만들어야 할까? 혹은 더 전기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을 만들려면 어떤 물질을 추가로 발라야 할까? 이런 문제는 20년 전, 화학 물질의 독성을 연구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하던 것과 대단히 비슷한, 말하자면 전통적인 인공지능 활용 문제다. 그때는 여러 물질 중에 어떤 물질이 가장 위험한지 인공지능에게 맞혀 보라고 했다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어떤 물질이 가장 풍력 발전기 날개에 좋은지, 태양광 패널에 좋은지를 맞혀 보라고 하는 것으로 질문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비슷하게, 인공지능을 재생에너지 장치 개발에 활용해 풍력 발전기의 모양을 보다 공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형상으로 개선하거나, 태양광 패널을 보다 햇빛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으로 설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일기예보 기술을 인공지능으로 더 발전시켜서 바람이 잘 부는 곳,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골라 설치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때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에너지 생산 시점과 소비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시기에 해가 지거나 날씨가 흐려지면, 태양광 발전으로 필요한 전기를 다 만들어낼 수 없다. 사람들이 전기를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어 풍력 발전으로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되면 그 많은 전기가 전력 계통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막아 내는 것도 고민거리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보면, 전기가 많이 만들어질 때 커다란 배터리에 전기를 충전해 뒀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 다시 배터리에서 빼내 쓰는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가 보급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용량의 ESS를 얼마나 설치해 둬야 할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전기를 언제, 얼마나 많이 쓰는지 미리 예상해야 하는데, 이런 예상 역시 인공지능을 통해 효과적으로 수행해 볼 수 있다. 더 멀리 보면 인공지능은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라는 이름으로 좀 더 폭넓게 전력망을 관리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도전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이면서도 더 싸고 안전하게 전기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스마트그리드: 전기 및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전력망을 지능화·고도화함으로써 고품질의 전력서비스를 제공하고 에너지 이용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력망.
앞으로 IT 산업이 발달할수록 에너지 사용을 줄여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빼기 방향’과 재생에너지를 더 잘 생산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더하기 방향’ 모두에서 인공지능이 좋은 성과를 보여줄 가능성은 높아진다. 혹시 인공지능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 인공지능을 설치해 둔 컴퓨터들이 소모하는 에너지, 그 자체가 너무 커지지는 않을까? 한창 생성형 인공지능이 화제가 됐을 때, 대규모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에 많은 숫자의 컴퓨터와 막대한 전기가 소요됐다는 소식이 꽤나 걱정스러운 어조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싶지는 않다. 최근 ‘온 디바이스 AI’라고 해서 인터넷 연결 없이 스마트폰 내부에 인공지능 기능을 포함시킨 신제품이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제품이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다든가 하는 불만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이미 개발된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인공지능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인공지능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신제품을 보면 인공지능의 전력 소모 문제도 기술 발전으로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 볼 만하지 않나 싶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