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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핵심 에너지라는 ‘수소’ 공급망, 이미 우리 손 안에?

미래를 이끌 새로운 성장 동력, 수소? 아니, 수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핵심자원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쓰이고 있는 수소를 살펴보고, 곧 실현될 수소경제에 대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모색해 보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수소 기체는 태워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특히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면 효율적으로 전기를 만들 수도 있어 기후 문제를 해결할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 ’새로운’이라는 수식어에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수소가 지금 당장 산업과 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수소연료전지(Hydrogen Fuel Cell) :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화학 반응시켜 전기를 생성하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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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산성비를 정화하다

한창 한국에서 여러 환경 문제에 대한 소식이 쏟아지던 1990년대를 기억한다면, 그 시절 산성비 문제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는 사실도 생각날 것이다. 공기 중에 오염 물질이 있어서 빗물이 떨어지는 동안 비가 산성으로 변하고, 그것이 지상에 떨어져 여러 가지 해를 입힌다는 이야기는 심각한 환경 위기로 곳곳에서 지적됐다. 우스갯소리로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소문도 그 시절에는 무척 많이 돌았다.

그런데 2020년대에는 그때만큼 산성비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산성비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심각한 산성도의 비로 인해 농작물 등의 피해가 속출하던 울산과 같은 공업도시도 산성비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의 오염이 적어졌고, 서울 같은 다른 여러 인구 밀집 지역도 소폭 개선되었거나 적어도 우려에 비해 악화되지 않는 수준으로 오염을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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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출 : 금속 혼합물 따위를 가열하여 그 성분을 분리하는 조작. 또는 그때 일어나는 현상.
**용탈 : 토양 중에 침투한 물에 용해된 가용성 성분이 용액의 상태로 표층에서 하층으로 이동하거나, 또는 토양 단면 외부로 제거되는 과정.
***호소 : 늪과 호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런 해결이 거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산성비를 일으킬 수 있는 오염 물질을 적극적으로 줄이기 위해 많은 기술자들이 기술을 개발했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설비를 가동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산성비 문제는 진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소’를 활용한 기술이다.

산성비의 원인으로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연료 속에 들어 있는 황 성분이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가 비에 녹아 *황산으로 변하는 반응이다. 이 같은 원리로 산성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연료에서 미리 황 성분을 제거한 뒤 태우는 생각을 해냈다. 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석유를 판매하는 정유사가 석유에서 황 성분만 골라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소가 활용된다.

*황산(Sulfuric Acid) : 무기산의 일종. 무색, 무취의 끈끈한 액체로 질산 다음으로 산성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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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너지의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 Vacuum Residue Desulfurization)(출처: SK이노베이션)

현재 국내 정유 회사들은 말하자면 석유 속의 황 성분을 수소에 붙여서 빼낼 수 있는 ‘수소화 탈황(Hydrodesulfurization)’ 공정을 거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휘발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질 좋은 연료는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최대한 황을 제거한 채로 판매된다. 최근에는 중유 등을 사용할 때에도 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국제 규제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으므로 휘발유가 아닌 다른 여러 석유에서도 보다 철저히 황을 빼내는 기술이 적용되어 가는 추세다.

한국은 정유 용량 기준으로 세계 5위 수준으로 손꼽히는 세계적인 정유 대국이다. 정작 한국에서 석유는 생산되지도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한국이 정유에 관해서 무척 앞선 기술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석유에서 황을 빼내는 작업도 한국에서는 엄청난 용량으로 매일 같이 진행되고 있다. 즉, 한국에서는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수소를 매일 같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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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 인류 먹여 살린 수소

수소는 더 흔한 곳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료를 만드는 데도 수소는 핵심 재료다. 농작물에 꼭 필요한 비료 중에 특히 과거에 중요했던 물질로 질소 비료가 있다. 그런데 질소 비료 성분은 번개가 칠 때나 우연히 생길까, 저절로 쉽게 생겨나지 않는다. 아마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19세기 유럽 학자들이 ‘이제 앞으로 세상은 질소 비료를 너무 구하기 어려워져서 모두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고 결국 농작물 부족, 식량 부족으로 인류가 전멸할 것’이라고 걱정했다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소를 이용해서 공기 중의 질소 기체를 질소 비료 성분으로 바꾸는 ‘하버법’ 기술을 개발했다. 하버는 노벨상을 수상했고, 이 기법으로 사람들은 질소 비료를 마음껏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그 결과로 세상의 농작물은 부족해지기는커녕 크게 늘어났고, 그 덕택에 80억 지구 인구가 지금도 먹고 살고 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리가 먹는 쌀, 밀, 국수, 빵, 과자 등 모든 식량은 수소로 만든 비료 덕분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넓은 논밭에 뿌리는 그 많은 비료를 만들 때, 우리는 그만큼 많은 수소를 사용한다.

이 밖에도 이미 수소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장은 허다하다. 플라스틱, 옷감, 고무를 만들거나 의약품, 화장품의 원료를 제조할 때도 수소는 흔히 사용된다. 수소는 로켓 연료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1990년대 초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우주에 보낸 유럽의 ‘아리안 로켓’도 수소연료를 중요하게 활용했고, 1960년대에 처음으로 인류를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 계획에서 쓴 ‘새턴 V(Saturn V) 로켓’은 아예 대량의 수소연료를 주력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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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많이 쓸수록 기후위기 해결은 가까워진다

화학 산업이 발달한 한국 같은 나라는 이미 수소를 많이 만들고, 사고팔고, 다루어 본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 한국이 수소 기술 개발에 유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소를 싼값에 만들어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단순히 수소차에 넣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이외에도, 다른 여러 산업에서 득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석탄 대신 수소로 만드는 ‘그린 철강’ 뜬다 (출처: 연합뉴스TV)

특히 한국의 제철소에서는 수소를 써서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자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값싼 수소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제철 산업 같은 분야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길이 뚫릴 것이다. 제철 산업이 발생시키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멀리 보면 제철 산업을 위해 해외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 석탄을 더 이상 사 올 필요가 없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수소환원제철법 : 철광석에서 철을 만들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던 탄소계 환원제 이용 방식과 달리, 수소를 환원제로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 철 생산 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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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소를 싸게 많이 생산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물을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분해해서 만들어 내는 수소, 즉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생산하는 길에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얻는 일부터가 고민거리인 데다가, 전기 분해에 필요한 촉매를 싼값에 효율적으로 구해 오는 일도 파고들수록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생산시설이 오작동하거나, 수소의 재료인 물이 더러워지는 등 의외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SK에코플랜트 수전해(SOEC, Solid Oxide Electrolysis Cell) 실증 시설

그런데 이미 수소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산업 구조라면 이러한 문제를 앞서 풀어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수소를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많은 수소의 생산을 기대해 볼 수 있고, 대량 생산을 통해 수소 생산 가격을 자연스럽게 낮출 수 있다. 이에 더해 수소를 충분히 많이 팔 수 있다는 보장이 생기면 수소 생산 설비 개선에 더 많이 투자해 기술 개발의 속도를 높여 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촉매나 물을 다루는 문제를 먼저 개선한다면, 이 기술이 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져 산업의 기회가 된다. 즉, 플라스틱이나 섬유 공장에서 수소의 수요가 높아질수록, 그만큼 청정 수소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날도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순조롭고 활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수소를 유통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미 여러 산업에서 수소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렇게 중간을 채우는 기술에서도 그동안의 경험을 이용해 앞서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간단하게는 ‘어떻게 수소를 주고받는 배관을 쉽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설치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잘 푸는 것도 업계의 경쟁력이 될 것이고, ‘수소를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안전한 설비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도 수소와 연결된 여러 업계에 두루두루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좀 더 나아가면, 주로 기체의 형태로 운반되고 있는 수소를 암모니아나 휘발유, 부탄가스, LNG로 바꿔 더 쉽게 들고 다니는 기술을 실용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거대한 수소 저장 용기를 LNG 운반선 같은 커다란 배에 설치해서, 대량의 국제 수소 운송 사업을 해 보자는 조선업, 해운업의 도전과 발맞춰 나가는 미래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마침 한국은 금속 재료산업과 조선산업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그야말로 여러 산업이 수소를 매개체로 유기적으로 움직여 나간다는 꿈을 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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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수소를 연료로 더 많이 쓰자는 것 이외에, 공급망과 가치사슬에 엮여 있는 다양한 산업들을 같이 보게 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한국 경제에서 수출 산업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아주 새로운 수소 자동차나 비행기를 개발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세계의 선진국, 강대국들이 그렇게 개발된 생소한 제품을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수입하려고 들까? 기후변화 대응 산업의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선진국들의 견제를 뚫으려면, 적어도 당분간은 이미 수소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정착된 산업들을 충분히 이용해서 차근차근 수소와 연결된 모든 기술을 성장시켜 나간다는 계획이 중요할 수 있다.

끝으로 한 가지 꼭 덧붙이고 싶은 점은 과학의 세계에서 단순히 특정 한 가지 기술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식의 단정은 종종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떤 홍보 포스터 등의 자료에서는 석유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니까 기후를 망치는 악의 산업이고, 초록색 들판 위에 설치된 수소 생산 설비는 깨끗한 선의 산업이라는 식으로 묘사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석유 배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기술자가 누구 못지않게 환경 문제의 해결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일이 흔하다. LPG 가스통을 만들던 회사의 노력으로 더 안전하게 수소를 쓸 수 있게 되는 일도 언제나 벌어진다. 산업과 경제의 큰 전환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만큼, 현실을 살펴보는 더 폭넓은 생각과 다양한 방향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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