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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다 쓴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소중한 자원을 다시 얻을 수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해 보자. 폐배터리는 돈이 된다. 최근 완성차 업체, 배터리 제조 업체, 재활용 업체 등 관련 업계가 폐배터리의 소유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앞으로 폐배터리의 주인은 누가 될지 지금 함께 알아보자.

하인환

KB증권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

갈수록 치열해지는 핵심광물 확보 경쟁, 해법은 ‘폐배터리’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세 가지 관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기대된다. 첫 번째는 전기차의 보급이 확대되고 향후 전기차의 폐차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을 때 쏟아져 나올 폐배터리를 처리해 줄 수 있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그대로 폐기되면 환경오염 유발물질이 배출될 수 있지만, 재활용 또는 재사용하면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다시 한번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참고로 재활용 방법으로는 폐배터리에서 광물자원 등의 배터리 원료를 추출하는 방법이 주로 거론되고 있으며, 재사용 방법으로는 폐배터리를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 ESS)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방법 등이 검토되고 있다.

두 번째는 광물자원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광물자원 부족 문제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전기차의 보급과 함께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핵심광물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핵심광물들의 매장지가 일부 국가로 제한돼 지속가능한 공급원 확보의 차원에서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핵심광물 광산 보유국들은 최근 광물자원의 수출을 통제하려는 민족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예로 니켈 생산 1위인 인도네시아는 니켈의 원광석 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니켈 판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OPEC)와 유사한 기구를 설립해 수출제한 등의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또한 리튬 매장지로 유명한 남미 국가들도 리튬 판 OPEC을 설립하고 있다. 이처럼 니켈과 리튬의 주요 매장/생산국들이 같은 목적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서로 협력하며 범 광물 카르텔을 형성할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니켈 · 리튬판 OPEC? 세계에 부는 ‘신자원민족주의’ 바람(출처: SBS 뉴스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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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글로벌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에 이어 흑연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해 국가 안보 관점에서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산업이 바로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이다. 광물자원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에 비해서는 광물자원 공급량이 적겠지만, 정치적인 리스크가 없고 친환경적인 측면까지 충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최근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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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싸움 판세 가를 Key Factor는 ‘폐배터리 소유권’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참여자는 크게 정부와 민간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고, 민간기업은 완성차 업체, 폐배터리 제조 업체, 재활용 업체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정부와 민간기업 중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단연 정부다.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아직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전 단계로, 산업의 체계와 관련한 법률적인 환경이 이제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차량 내 배터리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귀속시키느냐 역시 정부가 결정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부터 보급되는 전기차에 대해 전기차 소유주의 폐배터리 반납 의무를 폐지했다. 이전에는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반납해야 해 기업 입장에서 재활용할 폐배터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차량 내 배터리의 소유권을 차량 소유주에게 귀속시킴으로써 산업 형성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수직 성장세 ‘폐배터리’ 해외는 어떻게 준비하나(출처: YTN 사이언스 유튜브 공식 채널)

이에 이제는 민간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할 것이다. 완성차 업체, 배터리 제조 업체, 재활용 업체 중에는 현재 완성차 업체가 가장 유리하다. 차량을 판매할 때 소비자와 배터리에 대한 리스 계약을 체결하면, 향후 배터리를 회수할 수 있는 권한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폐배터리에 대한 권한을 넘기면서 저렴한 가격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어, 소비자를 설득하기도 쉽다.

배터리 제조 업체에도 기회는 있다. 배터리 제조 업체는 배터리에 대한 전문성을 토대로 ‘배터리 전 주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의 배터리 제조 업체 CATL이 2022년 배터리 교체 솔루션 브랜드 ‘에보고(EVOGO)’를 출시하는 등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회를 창출하려 노력하고 있다. ‘전기차를 오래 쓰기 위해서는 배터리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결국 완성차 업체들도 배터리 제조 업체와의 제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폐배터리 시장에 대한 주도권도 양분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를 리스 형태로 교체할 수 있는 서비스인 CATL의 에보고(출처 : CATL Official)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에게는 수직계열화가 핵심 생존전략이 될 것이다. 폐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추출한 광물을 공급받을 기업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주요 완성차 업체, 배터리 제조 업체와 제휴를 맺거나 이들에게 지분 투자를 받는 업체가 장기적으로 기회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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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생관계 구축이 관건

실제 분야별로 주요 기업의 동향을 살펴보면, 완성차 업체들의 폐배터리 산업에 진출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전기차(EV)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완성차 업체들이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굳이 진출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도 든다. 다만, 현대자동차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사업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와 협력하며 ‘배터리 회수 → 배터리 진단 → 재사용/재제조/재활용’의 사업 구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제조 업체의 경우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에 대한 지분 투자가 일차적인 접근 방법이다. 재활용 업체에 *스크랩(Scrap)을 제공해 주고, 추출된 광물자원을 공급받아 배터리 제조에 활용하는 방향이다. 국내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업체에도 지분 투자를 하며 자원 조달의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모회사인 LG화학과 함께 캐나다 폐배터리 재활용업체인 Li-Cycle의 지분을 확보해 자원 순환구조를 구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Li-Cyle에 배터리 스크랩을 공급하면 Li-Cycle은 스크랩을 재활용해 얻은 니켈을 LG화학에 양극재 원료로 제공하고, LG화학은 이를 활용해 만든 양극재를 LG에너지솔루션에 공급하는 구조다.

*스크랩: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잘못 만들어진 불량품 및 양극재 생산 시 발생하는 부산물.

재활용 업체들은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또는 이차전지 제조업체 중 시장점유율 상위 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시장 구조가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SK에코플랜트는 자회사인 TES와 함께 국내 친환경사업 및 이차전지 소재 선도 기업인 ‘에코프로’,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혁신기업인 ‘어센트 엘리먼츠’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폐배터리/스크랩 확보-재활용(자원회수)-배터리 제조로 이어지는 완결적 순환체계(Closed Loop)를 구축했다. 지난해부터는 SK온과 함께 국내 최초로 건설현장에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ESS를 구축하고 실증사업을 수행 중이며, 최근 어센드 엘리먼츠가 10억 달러(약 1조 2,750억 원) 규모의 미국 완성차 기업과 전구체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냈다.

탈세계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광물자원 민족주의가 태동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광물자원의 수요가 높아질수록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국가,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빠르게 움직여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인환 선임연구원은 SK증권, 메리츠증권을 거쳐 지금은 KB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주식시황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 매경이코노미, 조선일보-FnGuide 등 주요 언론으로부터 주식시황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바 있으며, 저서로는 ‘그린테크 트랜지션’가 있다. 특히 2022년 초부터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자료를 꾸준히 발간해 왔으며, 이와 관련해 ‘인터배터리2023’, ‘로보월드2023’ 등에 연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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