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정밀한 공사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술
에피AI 요약
SK에코플랜트의 생성형 AI를 활용해 요약·편집한 내용입니다
AI 경쟁은 이제 알고리즘의 정교함을 넘어 인프라의 완성도로 확장되고 있다. 10nm(나노미터) 단위를 다루는 반도체 제조가 진동과 공기, 물, 전력까지 극도로 통제된 환경 위에서만 가능하듯,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과 냉각, 운영과 재활용을 포함한 전 생애주기 관리가 전제돼야 한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 구축 경험을 확장해온 SK에코플랜트의 사례를 통해 AI 시대 인프라 경쟁의 조건을 살펴본다.
(출처: 셔터스톡)
보이지 않는 진동, 보이지 않는 인프라
2013년에 영국의 맨체스터에 있는 한 박물관에서 신비로운 소식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박물관에 4천 년쯤 전에 만든 고대 이집트의 조각상 하나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저절로 관객으로부터 고개를 돌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돌덩어리가 살아나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각상을 전시해 둔 방향이 관객을 보는 방향에서 관객에게 등을 돌리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었다. 영상 촬영을 해 놓은 자료를 보아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조각상은 마치 고개를 돌리듯 돌아갔다.
Spinning Statuette in Manchester Museum (출처: Manchester Museum 공식 유튜브 채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 신의 분노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영국 박물관에는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으로 건너온 약탈 문화재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고대 이집트 유물도 적지 않았다. 이집트를 약탈한 영국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 신이 고개를 돌렸다고 상상해 본다면 그럴듯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차분히 자료 영상을 분석해 보니 이 현상이 일어난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조각상은 한 번에 휙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박물관 주변에서는 자동차나 기차 운행, 각종 공사 작업 등으로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조각상도 약 0.1mm씩 흔들렸다. 게다가 조각상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난 상태였다. 진동이 반복될 때마다 조각상은 한쪽으로 살짝 기울었다가 다시 서기를 반복했고, 그 작은 움직임이 쌓여 결국 방향이 바뀌었다.
수수께끼의 범인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어긋난 균형과 미세한 진동이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AI 산업은 화려한 서비스와 거대한 데이터센터로 인식되지만, 그 기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 조건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극도로 정밀한 ‘제조 현장’이다.
AI 경쟁의 출발점, 반도체 제조 현장
박물관은 공교로운 일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수평을 잡고 진동을 막는 데 실패한다면 이집트의 신이 내리는 벌 못지않은 산업적 피해가 나타난다.
최근 글로벌 AI 빅테크 기업들이 반도체 확보와 전력 선점을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연산 능력의 차이는 결국 고성능·고집적 반도체의 확보 여부에서 갈리고, 이러한 반도체는 바로 안정적인 제조 현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출처: 셔터스톡)
우리는 일을 매우 정확하게 처리한다는 뜻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다”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한 치는 대략 3.33cm다. 그런데 현대의 첨단 반도체는 10nm(나노미터) 즉 1밀리미터의 10만 분의 1 단위까지 정밀하게 가공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 치의 오차”는 사실 엄청난 오차다. 한 치는 커녕 “삼백삼십삼만 분의 1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21세기 반도체 생산 공정의 세계다.
그 말은 곧, 반도체 공장 주변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 하나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큰 소리에 문이 미세하게 흔들리거나,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며 생기는 진동 때문에 장비 위치가 0.1mm만 어긋나도 생산 중이던 반도체는 불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장비를 다시 정밀하게 교정하기 전까지 그 영향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는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이처럼 극도로 엄격한 조건을 유지하는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시작된다. 결국 AI 인프라 경쟁은 이러한 제조 환경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기·물·전력까지, ‘통합 인프라’의 문제
반도체 공장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도시와 맞먹는 인프라 체계다. 진동을 제어하는 구조 설계뿐 아니라, 공기·물·전력·화학물질·폐수 처리까지 모든 요소가 동시에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단일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 시스템의 문제다.
그 중에서도 공기와 물은 특히 민감한 변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PM(초미세먼지)10은 지름 10μm(마이크로미터), 즉 0.01mm 크기의 입자다.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10만 분의 1mm 단위를 다루는 반도체 공정에서는 이런 먼지 한 톨도 거대한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공장 내부는 철저히 먼지를 차단하도록 설계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공기 정화 설비를 더 자주 가동하고 점검하고, 주요 작업 공간에는 내부 기압을 외부보다 높이는 ‘양압’ 설비를 설치해 외부 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한다.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공기의 특성을 이용해 먼지가 자연스럽게 외부로 밀려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정에는 극도로 순수한 물, 즉 초순수(Ultra pure water)가 필요하다. 사람이 마시는 생수에는 몸에 유익한 미네랄이 들어 있지만 반도체 공정에서는 이런 성분조차 제거해야 한다. 초순수를 대량 생산하고 재활용하는 설비, 그리고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시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2025년 5월 환경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하루 107만 2천 톤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총 2.2조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500cc 물병 40병 이상을 나눠 줄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반도체 공장은 그만큼 도시 규모의 거대한 기반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산업임을 보여준다.
SK하이닉스 M14(이천) (출처: SK하이닉스 공식 홈페이지)
반도체 공장의 기본 규모 자체도 압도적이다. 2015년에 준공된 SK하이닉스 M14 공장은 길이 333m, 폭 160m, 높이 77m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단일 생산 시설이지만, 길이만 놓고 보면 에펠탑 높이(330m)에 맞먹는 수준이며, 그 크기는 마치 항공모함 한 척을 그대로 육지 위에 올려놓은 규모와 맞먹는다.
최근 용인 원삼면에서 건설 중인 반도체 단지 역시 단순한 공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변전소와 지하 전력 터널, 장거리 용수 공급관 등 외부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고 있다. 동시에 초정밀 장비를 안전하게 수용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처럼 반도체 공장은 단일 설비나 특정 공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구조 설계부터 진동 제어, 공조 시스템, 수처리 설비, 전력 인프라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반도체 인프라는 개별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이 복합 시스템을 설계하고 시공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통합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체계를 얼마나 정밀하고 신속하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
AI 시대, 인프라를 짓는 기술이 경쟁력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한국 산업계가 건설업의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건설 현장이 기술보다 힘에 의존하는 공간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한국 건설 산업은 전혀 다르다. 반도체 공장처럼 고도의 정밀성과 속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현장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공장을 제때 완공하지 못하면 그 안에서 생산되는 제품 역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건설 산업의 역량은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라 할 만하다.
SK에코플랜트가 수행하고 있는 반도체 인프라 구축 역시 이러한 축적의 과정 위에 있다. SK하이닉스의 M14, M15, M16 등 초대형 반도체 팹을 구축하며 축적한 초정밀 클린룸 시공 경험은 첨단 제조 환경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AI 데이터센터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울산과 인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고효율 냉각 설루션, 그리고 운영까지 고려한 통합 인프라 역량을 입증해왔다.
SK에코플랜트가 개발한 연료전지 기반 냉각 설루션. 연료전지에서 발생한 열을 냉각수 생산에 이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생산부터 냉각까지 하나의 체계로 설계하는 접근은 주목할 만하다. 연료전지와 폐열 회수 기술을 결합해 전력과 냉각을 동시에 해결하는 설루션은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AI 인프라의 요구에 부합한다. 여기에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포토소재와 식각가스 등 핵심 소재 영역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설계–시공–에너지–소재를 아우르는 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SK에코플랜트의 소재 전문 기업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직원이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소재를 관리하는 모습.
대체로 한국 반도체 사업의 시초로 이야기하는 공장은 1965년 군용천막 두 개를 치고 그 안에서 여공들이 트랜지스터를 조립하던 마포의 사업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시절의 산업을 오늘날과 같은 놀라운 도전으로 발전시킨 기술인들의 노력은 고대의 신들이 일으키는 기적보다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도전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AI가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있는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하고 구축하며, 운영과 순환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결국 AI 시대의 승부는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인프라의 완성도에서 갈릴 것이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 〈인간적으로〉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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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차분히 자료 영상을 분석해 보니 이 현상이 일어난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조각상은 한 번에 휙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박물관 주변에서는 자동차나 기차 운행, 각종 공사 작업 등으로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조각상도 약 0.1mm씩 흔들렸다. 게다가 조각상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난 상태였다. 진동이 반복될 때마다 조각상은 한쪽으로 살짝 기울었다가 다시 서기를 반복했고, 그 작은 움직임이 쌓여 결국 방향이 바뀌었다.
수수께끼의 범인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어긋난 균형과 미세한 진동이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AI 산업은 화려한 서비스와 거대한 데이터센터로 인식되지만, 그 기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 조건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극도로 정밀한 ‘제조 현장’이다.
AI 경쟁의 출발점, 반도체 제조 현장
박물관은 공교로운 일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수평을 잡고 진동을 막는 데 실패한다면 이집트의 신이 내리는 벌 못지않은 산업적 피해가 나타난다.
최근 글로벌 AI 빅테크 기업들이 반도체 확보와 전력 선점을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연산 능력의 차이는 결국 고성능·고집적 반도체의 확보 여부에서 갈리고, 이러한 반도체는 바로 안정적인 제조 현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출처: 셔터스톡)
우리는 일을 매우 정확하게 처리한다는 뜻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다”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한 치는 대략 3.33cm다. 그런데 현대의 첨단 반도체는 10nm(나노미터) 즉 1밀리미터의 10만 분의 1 단위까지 정밀하게 가공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 치의 오차”는 사실 엄청난 오차다. 한 치는 커녕 “삼백삼십삼만 분의 1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21세기 반도체 생산 공정의 세계다.
그 말은 곧, 반도체 공장 주변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 하나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큰 소리에 문이 미세하게 흔들리거나,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며 생기는 진동 때문에 장비 위치가 0.1mm만 어긋나도 생산 중이던 반도체는 불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장비를 다시 정밀하게 교정하기 전까지 그 영향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는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이처럼 극도로 엄격한 조건을 유지하는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시작된다. 결국 AI 인프라 경쟁은 이러한 제조 환경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기·물·전력까지, ‘통합 인프라’의 문제
반도체 공장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도시와 맞먹는 인프라 체계다. 진동을 제어하는 구조 설계뿐 아니라, 공기·물·전력·화학물질·폐수 처리까지 모든 요소가 동시에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단일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 시스템의 문제다.
그 중에서도 공기와 물은 특히 민감한 변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PM(초미세먼지)10은 지름 10μm(마이크로미터), 즉 0.01mm 크기의 입자다.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10만 분의 1mm 단위를 다루는 반도체 공정에서는 이런 먼지 한 톨도 거대한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공장 내부는 철저히 먼지를 차단하도록 설계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공기 정화 설비를 더 자주 가동하고 점검하고, 주요 작업 공간에는 내부 기압을 외부보다 높이는 ‘양압’ 설비를 설치해 외부 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한다.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공기의 특성을 이용해 먼지가 자연스럽게 외부로 밀려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정에는 극도로 순수한 물, 즉 초순수(Ultra pure water)가 필요하다. 사람이 마시는 생수에는 몸에 유익한 미네랄이 들어 있지만 반도체 공정에서는 이런 성분조차 제거해야 한다. 초순수를 대량 생산하고 재활용하는 설비, 그리고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시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2025년 5월 환경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하루 107만 2천 톤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총 2.2조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500cc 물병 40병 이상을 나눠 줄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반도체 공장은 그만큼 도시 규모의 거대한 기반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산업임을 보여준다.
SK하이닉스 M14(이천) (출처: SK하이닉스 공식 홈페이지)
반도체 공장의 기본 규모 자체도 압도적이다. 2015년에 준공된 SK하이닉스 M14 공장은 길이 333m, 폭 160m, 높이 77m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단일 생산 시설이지만, 길이만 놓고 보면 에펠탑 높이(330m)에 맞먹는 수준이며, 그 크기는 마치 항공모함 한 척을 그대로 육지 위에 올려놓은 규모와 맞먹는다.
최근 용인 원삼면에서 건설 중인 반도체 단지 역시 단순한 공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변전소와 지하 전력 터널, 장거리 용수 공급관 등 외부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고 있다. 동시에 초정밀 장비를 안전하게 수용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처럼 반도체 공장은 단일 설비나 특정 공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구조 설계부터 진동 제어, 공조 시스템, 수처리 설비, 전력 인프라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반도체 인프라는 개별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이 복합 시스템을 설계하고 시공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통합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체계를 얼마나 정밀하고 신속하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
AI 시대, 인프라를 짓는 기술이 경쟁력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한국 산업계가 건설업의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건설 현장이 기술보다 힘에 의존하는 공간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한국 건설 산업은 전혀 다르다. 반도체 공장처럼 고도의 정밀성과 속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현장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공장을 제때 완공하지 못하면 그 안에서 생산되는 제품 역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건설 산업의 역량은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라 할 만하다.
SK에코플랜트가 수행하고 있는 반도체 인프라 구축 역시 이러한 축적의 과정 위에 있다. SK하이닉스의 M14, M15, M16 등 초대형 반도체 팹을 구축하며 축적한 초정밀 클린룸 시공 경험은 첨단 제조 환경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AI 데이터센터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울산과 인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고효율 냉각 설루션, 그리고 운영까지 고려한 통합 인프라 역량을 입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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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에너지 생산부터 냉각까지 하나의 체계로 설계하는 접근은 주목할 만하다. 연료전지와 폐열 회수 기술을 결합해 전력과 냉각을 동시에 해결하는 설루션은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AI 인프라의 요구에 부합한다. 여기에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포토소재와 식각가스 등 핵심 소재 영역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설계–시공–에너지–소재를 아우르는 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SK에코플랜트의 소재 전문 기업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직원이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소재를 관리하는 모습.
대체로 한국 반도체 사업의 시초로 이야기하는 공장은 1965년 군용천막 두 개를 치고 그 안에서 여공들이 트랜지스터를 조립하던 마포의 사업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시절의 산업을 오늘날과 같은 놀라운 도전으로 발전시킨 기술인들의 노력은 고대의 신들이 일으키는 기적보다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도전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AI가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있는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하고 구축하며, 운영과 순환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결국 AI 시대의 승부는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인프라의 완성도에서 갈릴 것이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 〈인간적으로〉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