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준다?” 일회용 봉투 금지 후 한 달 리뷰
편의점, 슈퍼마켓 등의 소형매장에서 ‘공식적으로’ 일회용 비닐봉투를 제공하지 않은 지 한 달여가 흘렀다. 정책 시행 후 우리의 현재 모습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난 2022년 11월 24일.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우루과이전을 기다리던 그날. 들뜬 마음으로 편의점에 들러 치킨과 함께 먹을 맥주를 사려던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 있었다. 바로 ‘일회용 비닐봉투 판매 금지’가 시행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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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드릴게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진짜 안 돼요!”
2021년 12월 31일, 정부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따른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을 개정∙공포하며, 그동안 대규모 점포에서만 금지되었던 일회용 비닐봉투의 판매를 올해 11월 24일부터 편의점, 슈퍼마켓(33㎡ 초과), 제과점 등에서도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11월 24일이 한 달 지난 현재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 듯 여전히 편의점에서 비닐봉투에 물건을 담아주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물론 일회용 비닐봉투를 일체 판매하지 않는 가게들도 있지만.) 금지이지만 금지 아닌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왜 생겨나게 된 걸까?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아니 현재에도 원칙상으로 일회용 비닐봉투는 ‘전면 금지’가 맞다. 자원재활용법 규정에 해당하는 점포에서는 종이봉투나 종량제봉투, 다회용 장바구니만 판매할 수 있으며, 일회용 비닐봉투를 판매∙무상으로 제공할 경우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긴 건 규제 시행 20여 일 전인 지난 11월 1일, 환경부에서 ‘일회용품 규제 확대 세부 시행방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국민들의 적응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비닐봉투 금지를 포함한 일회용품 규제 내용에 대해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계도기간 동안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게 되었고, 당초 일회용 비닐봉투와 함께 금지되었던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2024년까지 판매가 가능해지는 등의 예외 조항도 생겨났다.
이에 이미 9~10월부터 일회용 비닐봉투 발주를 제한하는 등 제도 시행에 대비하던 가게들도 ‘지금 있는 봉투를 소진할 때까지만’, ‘다시 일회용 비닐봉투 주문’, ‘생분해성 비닐봉투로 교체’ 등 제각각 다른 방법들을 선택하며 지금의 혼란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게들의 선택에는 물건을 소량으로 사는 편의점과 소형 매장의 특성상 몇 백 원에서 몇 천 원까지 하는 대체 봉투를 사기 꺼려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의도도 배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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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비닐봉투, 진정성 있는 ‘참여’로 줄인다!
발표 시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번 계도기간에 대한 정부의 의도에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에 대한 완벽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의 시행보다는 자율적인 참여를 늘려 더 큰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계도는 그간의 방치형 계도와는 달리 비닐봉투를 포함한 일회용품 사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사업자의 ‘행동변화 유도형 감량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해 자율 감량을 유도하는 조치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SNS를 적극 활용해 국민들의 참여와 행동 변화도 이끌 계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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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 물고기망까지 동원!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에 성공한 이 나라
캠페인을 통한 자발적인 참여로 일회용 비닐봉투를 줄이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답에 대한 힌트로(혹은 간절한 바람으로) 우리보다 먼저 유사한 방법으로 일회용 비닐봉투를 금지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나라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태국이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태국은 여러 번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받았다. 2018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국가 6위의 자리에 나라 이름을 올렸고(그린피스 발표), 태국 바다 인근에서는 배에 비닐봉투가 가득한 고래와 거북이, 아기 듀공이 죽은 채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었고, 곧 강도 높은 정책이 이어졌다. 2018년부터 태국 당국은 우선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 로드맵(2018~2030)을 수립함과 동시에, 기업들과 함께 ‘Plastic Waste Killer’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에 태국 최대 백화점 그룹 등 주요 유통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비닐봉투 배포를 자제했고, 그렇게 1차 캠페인 기간(2019년 7~12월) 동안에만 태국에서는 약 20억 장의 비닐봉투(5,765톤)이 절약되었다고 한다.(2020, 태국 천연자원환경부)
이러한 과도기간을 거쳐 2020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태국의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 정책(백화점, 대형마트, 일부 소매점 대상)은 많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금지 정책이 시행된 이후 펼쳐진 태국 편의점의 놀라운 광경 때문. 장바구니는 기본, 일회용봉투를 대신할 수레, 어망, 항아리 등 기상천외한 아이템을 장착한 태국 사람들이 편의점에 등장한 것이다. 다소 불편할 법도 했지만, 시행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80%가 넘는 태국 국민들이 일회용 비닐봉투 배포 중지에 대해 찬성(2020, 태국 국가개발관리연구소)의 의사를 보였고, SNS를 통해 ‘매일 플라스틱을 반대한다(Everyday Say No to Plastic)’라는 캠페인이 태국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즉, 태국의 성공적인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 정책은 적극적인 시민들의 협업으로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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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비닐봉투 전면 금지 후 우리의 모습은?
이쯤에서 우린 몇 년 전 당연히 받아들던 비닐봉투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현실을 처음 맞닥뜨렸던 그때를 떠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원에서 50원. 그리 크지 않은 돈이었지만, 괜히 내기 아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계산대 앞에서 실갱이를 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비닐봉투 하나 주세요’라며 봉투 금액을 당연히 지불하고, 몇 개 안 되는 물건은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오는 것이 당연해지지 않았는가.
물론 앞으로도 일회용 비닐봉투가 사라지기까지 더 시행착오를 겪을지도 모른다. 앞서 성공 사례로 살펴보았던 태국 역시 코로나 이후 다시 플라스틱 쓰레기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지구가 우리의 시행착오를 기다려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 그 길의 끝에 하루 빨리 닿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과 합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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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드릴게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진짜 안 돼요!”
2021년 12월 31일, 정부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따른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을 개정∙공포하며, 그동안 대규모 점포에서만 금지되었던 일회용 비닐봉투의 판매를 올해 11월 24일부터 편의점, 슈퍼마켓(33㎡ 초과), 제과점 등에서도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11월 24일이 한 달 지난 현재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 듯 여전히 편의점에서 비닐봉투에 물건을 담아주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물론 일회용 비닐봉투를 일체 판매하지 않는 가게들도 있지만.) 금지이지만 금지 아닌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왜 생겨나게 된 걸까?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아니 현재에도 원칙상으로 일회용 비닐봉투는 ‘전면 금지’가 맞다. 자원재활용법 규정에 해당하는 점포에서는 종이봉투나 종량제봉투, 다회용 장바구니만 판매할 수 있으며, 일회용 비닐봉투를 판매∙무상으로 제공할 경우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긴 건 규제 시행 20여 일 전인 지난 11월 1일, 환경부에서 ‘일회용품 규제 확대 세부 시행방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국민들의 적응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비닐봉투 금지를 포함한 일회용품 규제 내용에 대해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계도기간 동안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게 되었고, 당초 일회용 비닐봉투와 함께 금지되었던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2024년까지 판매가 가능해지는 등의 예외 조항도 생겨났다.
이에 이미 9~10월부터 일회용 비닐봉투 발주를 제한하는 등 제도 시행에 대비하던 가게들도 ‘지금 있는 봉투를 소진할 때까지만’, ‘다시 일회용 비닐봉투 주문’, ‘생분해성 비닐봉투로 교체’ 등 제각각 다른 방법들을 선택하며 지금의 혼란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게들의 선택에는 물건을 소량으로 사는 편의점과 소형 매장의 특성상 몇 백 원에서 몇 천 원까지 하는 대체 봉투를 사기 꺼려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의도도 배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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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비닐봉투, 진정성 있는 ‘참여’로 줄인다!
발표 시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번 계도기간에 대한 정부의 의도에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에 대한 완벽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의 시행보다는 자율적인 참여를 늘려 더 큰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계도는 그간의 방치형 계도와는 달리 비닐봉투를 포함한 일회용품 사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사업자의 ‘행동변화 유도형 감량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해 자율 감량을 유도하는 조치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SNS를 적극 활용해 국민들의 참여와 행동 변화도 이끌 계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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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 물고기망까지 동원!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에 성공한 이 나라
캠페인을 통한 자발적인 참여로 일회용 비닐봉투를 줄이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답에 대한 힌트로(혹은 간절한 바람으로) 우리보다 먼저 유사한 방법으로 일회용 비닐봉투를 금지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나라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태국이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태국은 여러 번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받았다. 2018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국가 6위의 자리에 나라 이름을 올렸고(그린피스 발표), 태국 바다 인근에서는 배에 비닐봉투가 가득한 고래와 거북이, 아기 듀공이 죽은 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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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비닐봉투 전면 금지 후 우리의 모습은?
이쯤에서 우린 몇 년 전 당연히 받아들던 비닐봉투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현실을 처음 맞닥뜨렸던 그때를 떠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원에서 50원. 그리 크지 않은 돈이었지만, 괜히 내기 아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계산대 앞에서 실갱이를 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비닐봉투 하나 주세요’라며 봉투 금액을 당연히 지불하고, 몇 개 안 되는 물건은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오는 것이 당연해지지 않았는가.
물론 앞으로도 일회용 비닐봉투가 사라지기까지 더 시행착오를 겪을지도 모른다. 앞서 성공 사례로 살펴보았던 태국 역시 코로나 이후 다시 플라스틱 쓰레기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지구가 우리의 시행착오를 기다려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 그 길의 끝에 하루 빨리 닿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과 합심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