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인가, 테러인가? 명화를 인질로 삼은 에코 테러리즘 논란
반 고흐와 피카소의 명화, 새로 즉위한 영국 찰스 국왕의 밀랍 인형까지! 최근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미술관들의 예술 작품들이 위태롭다! 도난 위기나 위작 논란에 처했냐고? 아니, “죽은 지구에 예술은 없다”고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의 ‘테러’가 그 원인이다.
환경 시위를 떠올렸을 때, 클리셰처럼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툰 베리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의회나 광장에서 피켓 시위를 한다거나,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서명운동 벌이기, 좀 더 나아가 고래를 잡는 포경선에 맞선 해상시위 등등. 하지만 대체로 이런 시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짤막한 해외 토픽 면을 장식하고, 다른 단신 뉴스거리들처럼 대중에게 잠시 소비됐다가 사라진다는 것. 기후 변화로 인한 문제는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지속적인 이슈임에도, 그들의 메시지는 마치 15초 숏폼 영상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최근, 이러한 인류의 망각과 외면에 파격적인 경종을 울리고 나선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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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수난 시대, 유럽 미술관은 초비상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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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7월 22일 –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10월 9일 –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10월 14일 – 반 고흐의 <해바라기>
10월 23일 – 모네의 <건초 더미>
10월 28일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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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자리한 유명 미술 갤러리들은 비상이 걸렸다. ‘작품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문을 무시한 채,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적인 명화들이 환경운동가들의 시위에 수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영국 왕립예술원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웬 남성이 그림이 걸린 벽면에 “No New Oil(더 이상의 석유는 없다)”라는 글씨를 썼고, 이것도 모자라 손에 접착제를 바른 사람들이 액자의 아랫부분을 움켜쥔 것이다. 그밖에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토마토 수프를, 모네의 <건초더미>는 으깬 감자를 뒤집어 썼다. 시위를 주도한 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이라는 영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유럽 각지의 환경단체(독일과 이탈리아의 ‘라스트 제너레이션(Last Generation)’, 스페인의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 등)들이었다.
매일같이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며 독특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활동가들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유럽 각국 정부가 세계적 예술작품 보존에는 막대한 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면서도, 기후 변화 때문에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명화를 공격하며 이렇게 외친다. “예술이 생명, 식량, 정의보다 소중합니까? 당신들은 그림을 지키는 것이 지구와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접착제를 바른 제 손과 명화과 한몸이 된 것처럼, 지구와 인간도 한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공격한 활동가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다른 관람객들의 비난에 “아름답고 귀중한 무언가가 당신 눈앞에서 훼손되는 걸 보니 기분이 어떤가? 우리 행성이 훼손될 때 나도 바로 그런 기분을 느낀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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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유죄 VS 미술 작품이 무슨 죄?
활동가들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예술작품을 보존하는 것처럼 지구와 환경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으깬 감자나 토마토 수프처럼 명화 복원에 치명적이지 않은 음식물을 사용하며, 그림 액자나 조각상 받침대 등 작품의 주변부에만 해를 입힐 뿐 작품 자체를 훼손하는 건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한, 무차별적으로 명화를 훼손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엄선한다고도 밝혔다.
반대로 이런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 미술계는 격분하고 있다. 대의가 아무리 좋더라도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에 훼손을 가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품은 기후와 ‘함께’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지, 예술을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박한다.
시위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여론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은 언뜻 ‘극단적 상식’처럼 보이지만, ‘몰상식한 극단’에 불과하다는 것. 최근 독일의 슐츠 총리는 “솔직히 수프를 끼얹은 예술 작품을 보고 싶지는 않다”며 “환경운동가는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미국의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 또한 인스타그램에 환경운동가들의 시위를 비꼬며, 미술관 벽에 걸린 앤디 워홀의 <토마토 수프>를 향해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던지는 사진을 올렸다. <해바라기>가 토마토 수프 세례를 당하자, 반대로 역공하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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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과격해지는 기후 시위의 딜레마!
이렇듯 과격한 시위가 이어지던 중 사고가 일어난 건, 지난 10월 31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남서쪽이었다. 분데스 알리 도로에서 한 독일 여성이 자전거를 타던 중 대형 트럭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도로 입구는 독일의 환경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이 시위를 하던 터라 구조 차량의 진입이 불가능했고, 결국 제때 구조를 받지 못한 여성은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에 이르렀다. 그러자 화살은 활동가들에게 쏠렸다. 베를린 수사 당국은 과실치사와 테러 등 다양한 혐의를 염두에 두고 고강도 수사를 예고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전역에서 과격하고 때로는 법을 위반하는 이들의 시위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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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라는 작품을 지킬 방법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은 활동가 애나 홀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두 명의 젊은이가 수프를 던졌더니 갑자기 온 세상이 기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던 바입니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시위 방법의 득실을 지금 당장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이번 방법이 세상의 이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 듯 보인다. 이들이 수면 위로 올려놓은 다양한 논제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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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10월 14일 – 반 고흐의 <해바라기>
10월 23일 – 모네의 <건초 더미>
10월 28일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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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자리한 유명 미술 갤러리들은 비상이 걸렸다. ‘작품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문을 무시한 채,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적인 명화들이 환경운동가들의 시위에 수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영국 왕립예술원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웬 남성이 그림이 걸린 벽면에 “No New Oil(더 이상의 석유는 없다)”라는 글씨를 썼고, 이것도 모자라 손에 접착제를 바른 사람들이 액자의 아랫부분을 움켜쥔 것이다. 그밖에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토마토 수프를, 모네의 <건초더미>는 으깬 감자를 뒤집어 썼다. 시위를 주도한 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이라는 영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유럽 각지의 환경단체(독일과 이탈리아의 ‘라스트 제너레이션(Last Generation)’, 스페인의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 등)들이었다.
매일같이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며 독특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활동가들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유럽 각국 정부가 세계적 예술작품 보존에는 막대한 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면서도, 기후 변화 때문에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명화를 공격하며 이렇게 외친다. “예술이 생명, 식량, 정의보다 소중합니까? 당신들은 그림을 지키는 것이 지구와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접착제를 바른 제 손과 명화과 한몸이 된 것처럼, 지구와 인간도 한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공격한 활동가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다른 관람객들의 비난에 “아름답고 귀중한 무언가가 당신 눈앞에서 훼손되는 걸 보니 기분이 어떤가? 우리 행성이 훼손될 때 나도 바로 그런 기분을 느낀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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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유죄 VS 미술 작품이 무슨 죄?
활동가들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예술작품을 보존하는 것처럼 지구와 환경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으깬 감자나 토마토 수프처럼 명화 복원에 치명적이지 않은 음식물을 사용하며, 그림 액자나 조각상 받침대 등 작품의 주변부에만 해를 입힐 뿐 작품 자체를 훼손하는 건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한, 무차별적으로 명화를 훼손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엄선한다고도 밝혔다.
반대로 이런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 미술계는 격분하고 있다. 대의가 아무리 좋더라도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에 훼손을 가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품은 기후와 ‘함께’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지, 예술을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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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시위 방법의 득실을 지금 당장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이번 방법이 세상의 이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 듯 보인다. 이들이 수면 위로 올려놓은 다양한 논제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