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000 km2의 면적(서울의 약 25배)을 자랑하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초식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동물로 누 떼를 꼽을 수 있다. 대략 150만 마리 정도의 규모로 구성돼 있는 누 떼는 신선한 먹이를 찾아 세렝게티 초원 이곳, 저곳을 누비며 대이동을 하기에 방문 시기가 엇갈리면 그 많은 누 떼를 구경조차 못 하고 허탕을 칠 수도 있다고 한다.
약 100-300 kg의 체구를 가지고 있는 누 떼도 서울 면적(600 km2)의 25배나 되는 큰 면적의 초원을 시시때때로 옮겨 다녀야 비로소 먹이활동(생산과 소비의 균형)과 자연정화(분해)가 가능하다는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서울에 인구 천 만 가량이 정주해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지극히 비자연적이다. 쉬운 예로, 태국식 소고기 아보카도 샐러드를 요리할 요량으로 스마트폰으로 호주산 소고기와 페루산 아보카도를 주문하는 간단한 일조차 반도체 소재와 정보통신기술, 집약적인 농업 기술과 배송을 위한 에너지원 및 교통 인프라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자연적, 즉, 인위적이다. 이처럼 문명의 건설과 발전까지 논하진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쉽게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인위적인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류의 과학기술 덕분일 것이다.
인류 생존의 키를 쥐고 있는 최첨단 수처리 기술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과유불급인 경우도 많다. 일례로, 산업화 이후 도시의 비대화로 인해 하·폐수 발생량이 급증하게 된 결과, 토지를 활용하는 19세기 하수처리방식으로는 온전히 처리할 수 없는 허용한계에 이르게 됐고, 종국에는 미처리 방류수에 기인하는 수인성 질병으로 누차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루마니아의 금 제련소에서 시안화물이 유출돼, 헝가리로 유입되는 티서강은 물론, 중부 유럽 전체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까지 오염되어 어류 수백 톤과 기타 수중생물들이 다량 폐사했던 사고와 같은 대규모 인재도 적잖게 발생돼 왔다.
이처럼, 인간 문명의 요체인 과학기술은 우리로 하여금 환경수용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하·폐수를 배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는 발생될 수 없는 오염원들을 환경으로 유출시킴으로써 인명 및 자연의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술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방류수 수질 기준을 확립하고, 나아가 해당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하·폐수처리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온 것이 과거 수처리 기술이 발전해온 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기후 위기의 현실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과거의 수처리 기술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는 생존을 사수하기 위한 최첨단의 수처리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이상 기후로 인한 물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로 심각하기에 오늘날의 수처리 기술은 자연과의 공존을 넘어 우리 모두의 생존을 사수하기 위한 최전선에 서게 됐을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최근 67개국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IPCC 6차 보고서를 통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전 지구 평균 온도 대비 1.5도 높아지게 되면 재앙이 잇따를 것이라고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하지만,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1도 상승한 상태(World Resource Institute, 2022)인 점을 감안했을 때, 위기는 목전에 와 있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홍수와 가뭄,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해가 임박한 위기를 방증한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에서는 수자원 안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傾注)하고 있다. 독특한 예로, 2030년이면 대수층의 담수가 고갈되는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기존의 증발법이나 역삼투 공정 기반 해수담수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극지방에서 1억 톤에 육박하는 빙하를 약 9달에 걸쳐 끌고 오는 일명 ‘Iceberg Project’가 아랍에미리트의 물부족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물망에 올랐던 바 있다. 한 번의 시도에 약 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 추산됐음에도 이와 같은 시도가 진지하게 고려됐던 이유는 한 번만 성공하면 5년간 100만여 명의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담수가 확보되기 때문인데, 이는 다른 한 편으로 아랍에미리트를 덮친 물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고?
그런데, 물 부족이 비단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사실 우리나라도 OECD 국가 중 심각한 물 부족을 겪을 나라로 분류된 지 오래다. 늘 물을 쓰고 싶을 때마다 구애받지 않고 사용해 온 우리 국민들에게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사실이 다소 생경할지 모르겠으나, 물 부족 국가의 개념을 살펴보면 그 연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가용 수자원의 40%를 초과하는 수자원을 소비하는 국가를 심각한 물부족을 겪는 것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하계에 집중돼 있어 상당량의 물이 사용되지 못한 채 바다로 유실되는 비율이 높아 가용 수자원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반면, 밀집된 인구와 산업의 발달로 물의 사용량은 많기 때문에 앞의 분류 체계 기준으로 심각한 물부족을 겪는 나라로 분류돼 있는 실정이라 할 수 있다.
더 많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을 만드는 순환 경제 구조
작금의 물 부족과 다가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산업 전반이 추구하고 있는 ‘순환 경제’ 모델을 물 산업 분야에서도 채택하여 체질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물 산업 분야는 생산과 소비 이후 폐기하는 선형 경제 구조를 따라왔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단순 폐기가 아닌 높은 방류 수질 기준이 적용된 자연친화적 폐기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물산업 분야에서도 자연친화적 선형경제구조 수준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형태의 순환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요구된다. 순환경제구조의 골자는 기존에 소비 후 폐기돼 온 제품을 재활용함으로써 제품 생산과 폐기에 수반되는 탄소배출을 저감시키는 데 있다. 이 점을 물산업 분야에 대입해보면, 기존에 사용 후 방류 수질 기준을 충족시키는 수준으로 처리된 뒤 방류되던 물을, 조금 더 처리하여 재이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수질을 끌어올림으로써 방류수를 최소화하고 재활용을 극대화하는 수자원 순환경제구조를 모색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자원 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는 하수를 음용수 수준으로 정화시키는 뉴워터(NEWater, 새로 태어난 물) 플랜을 통해 현재 자국내 전체 물 수요의 30%를 공급하고 있고, 2060년까지 물 수요의 50%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관련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하수처리 및 재이용을 통해 전체 물 수요의 30%나 해결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지하 하수 터널(DTSS, Deep Tunnel Sewerage System)과 다중 여과 공법(Multi-barrier approach)의 역할이 크다.
지하 하수 터널은 싱가포르 전역(약 48km)에 걸쳐 지하 10m 깊이에 매설된 분류식 하수관거(Sewer Pipe) 시스템으로, 생활하수 및 산업폐수 등을 효율적으로 집수하여 하수처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지하 하수 터널을 통해 7개의 하수처리장으로 집수된 폐수들은 하수처리 후 4개의 NEWater 공장으로 전달돼, 한외여과(UF, Ultrafiltration), 역삼투(RO, Reverse Osmosis), 및 자외선(UV, Ultraviolet) 소독으로 구성된 다중 여과 공법을 거쳐 일 처리량 23만 톤 규모로 고도 처리된 뒤, 생활용수(10%), 산업용수(70%), 및 상업지역 냉각용수(20%)로 활용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앞서 말한 생활용수나 산업용수가 단순히 중수(Grey Water)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음용수나 반도체/LCD 제조에 쓰이는 초순수(Deionized Water : 무기질, 미립자, 박테리아, 미생물, 용존 가스 등을 제거해 고도로 정제된 물)를 의미하는 것으로, 처리수의 품질이 매우 우수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법적, 기술적으로 하·폐수 재이용률을 증진할 수 있는 저력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 재이용 촉진법’을 제정해 하·폐수의 재이용을 법으로 명문화했으나, 관련 법과 기술이 실효성을 가지고 산업 현장에 안착하기에는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다행히, 스마트 전기화학적 산화 시스템 및 MABR(Membrane Aerated Biofilm Reactor, 산기식 막분리 생물막) 등을 위시한 신기술들을 통해 수처리 분야의 기술 혁신을 이어 나가고 있는 SK에코플랜트를 필두로, 국내 여러 굴지의 대기업들이 수자원 순환 경제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 및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차세대 고도수처리 기술 개발 혁신을 끌어냄으로써 다가오는 수자원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나아가 이 위기를 지속 가능한 친환경 사회로 도약하기 위한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