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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덮친 인플레이션 삼각지대

우리를 점점 더 힘들게 하는 세 가지 인플레이션을 알아보자.

에너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전환 비용을 두고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라 한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을 뜻하는 ‘녹색(Green)’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가져온 인플레이션은 그린플레이션뿐만이 아니다. 올해 3월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의 집행위원인 이사벨 슈나벨(Isabel Schnabel)은 최근 인플레이션 현상을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해 설명했다. 그린플레이션과 화석연료플레이션(Fossilflation), 그리고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3대 인플레이션 현상

그린플레이션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원자재 가격, 그 이유는?

먼저, 그린플레이션은 탈탄소 설비에 필요한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다. 현재 원자재 중에서도 특히 광물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급등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그린플레이션의 사례다. 일례로 전기차 차체에는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알루미늄이 사용되고, 전기차 배터리에도 많은 양의 리튬과 망간, 마그네슘이 필요하다. 또한 태양광 및 풍력발전을 위한 설비를 짓는 데도 알루미늄, 희토류, 니켈, 코발트 등 다양한 종류의 금속 원자재가 필요하다.

친환경 설비의 수요 급증으로 금속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이차전지와 태양광 모듈을 제조할 때 드는 비용 중 광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이상이며, 풍력 터빈은 약 20%에 달하는데, 이 설비들의 수요가 늘어날수록 광물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일례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지난 2년간 리튬 가격은 거의 1,000%나 치솟았고, 구리와 니켈 가격도 같은 기간 동안 각각 200%와 300% 올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광물을 캐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새 광산을 개발하는 데에는 5~10년이 걸리는데, 그 시간도 시간이지만 매장량 역시 한정적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시기에는 원자재 공급의 부족으로 그린플레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플레이션 – 줄여야 할수록 더 늘어나는 화석연료의 모순

최근 인플레이션은 15년간 이어져 온 전 세계적 통화완화정책과 코로나19 긴급재정지출로 시민의 구매력이 향상되면서 수요 과잉이 이어져 벌어진 현상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화석연료 가격이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는데,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축했던 경기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에너지와 식량 공급을 제한해 인플레이션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화석연료플레이션이다.

화석연료 옹호자들은 탈탄소 기술 비용이 그린플레이션으로 인해 오히려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현재의 인플레이션도 기후위기 대응으로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탈탄소 산업에 투자하면서 높은 비용을 치렀기 때문으로 보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늦추거나 중단하고 화석연료를 다시 도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을 위해 기후위기 대응을 보류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눈앞에 경제는 살릴 수 있어도 다가올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코앞에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기후위기가 다가오는 시간을 앞당기게 된다.

기후플레이션 – 지구가 인류에게 청구할 막대한 비용

자원이 유한한 지구에서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넘어서려고 하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식량과 삶의 거주지를 지구로부터 위협받게 된다. 인간은 지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지구 반격은 피할 수 없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물 부족 현상 등의 사회 혼란은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는데, 이를 기후플레이션이라 한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고온 현상, 가뭄, 산불, 열대성 폭우와 태풍 등이 잦아지면서 소비재의 원재료들이 파괴되고, 그로 인해 제조 원가가 높아지면서 소비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지 않고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피해를 막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져 경제 성장이 무의미해진다. 지난 6월,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은 ‘최근 인플레이션과 가스 가격 상승이 화석연료와 기후변화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그린플레이션을 불러와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친환경 에너지를 도입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화석연료는 기술이 아닌 상품이다. 화석연료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어들 때, 이를 이용해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화석연료에 의존하면 가격 불안정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에 더 빠져들 수 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처럼 호황과 불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분야는 기술 혁신이 급격히 일어나 대량 생산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광물 등의 원자재 가격 인상은 급속한 성장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가격 상승으로 기업이 더 많은 생산 능력을 구축하면 가격은 다시 내려간다. 예를 들어, 폴리실리콘(태양광 패널 제조의 핵심인 고순도 실리콘)의 공급 부족은 최근 태양광 패널 가격 상승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태양광 기업들은 2022년 예상 수요의 3배 이상인 연간 900GW의 태양광 패널을 2023년에 생산하도록 설비를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태양광 패널 가격은 다시 정상 범주에 속할 것이다.

 

2022년 발간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6차 저감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 제한할 경우, 기업과 국가가 지출해야 하는 톤당 탄소 비용 가격은 2030년에 약 90달러, 2050년에는 210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온 상승을 1.5℃로 유지할 경우, 탄소 가격은 2030년에 약 220달러, 2050년에는 630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았다. 탄소 비용은 기온 상승을 낮출수록(탄소 중립을 엄격하게 진행할수록) 많이 증가한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신규 투자와 보조금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화석연료의 사용은 점점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기업들은 탄소 배출로 인한 경제적 비용으로 발생하는 재무 리스크를 피하고 싶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은 85%, 육상풍력은 55%, 그리고 배터리는 85%나 가격이 하락했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태양열과 풍력은 이미 전 세계의 90%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 생산 수단이 되었다. 2021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이 생산한 전력이 핵 발전량을 넘어섰다. 태양광과 풍력의 설비는 4~5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는데, 2030에는 전 세계 발전 수요의 절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엄청난 재앙과 그 대처에 들어갈 경제·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은 가장 안전하고 비용이 적은 선택지가 된다. 세계 2위 규모의 재보험사인 스위스재보험컴퍼니(Swiss Reinsurance Company)는 2022년 경제 전망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줄여 결국 기후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고 분석했다.

친환경 정책이 물가를 상승시킨다?! 그린플레이션 (출처: 한국은행)

기후위기가 일어나면 사회가 무너진다. 사회가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진다. 병든 지구에서 얻는 이윤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사회∙도덕적 책무의 영역만이 아니다.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지 도태할 것인지 결정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린플레이션은 기후플레이션과 화석연료플레이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부담이 적다. 이 부담을 넘어서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보다 쾌적한 환경과 안정적인 경제 체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

조천호 교수는 경희사이버대학 미래인간과학스쿨 특임교수로,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전공했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원장으로 퇴임했다. 기후위기를 다룬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썼고 한겨례 신문에 ‘조천호의 파란하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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