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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갖고 있는 오늘 이 순간의 의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다방면의 의미를 가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진면목을 살펴보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속 가능이라는 표현은 사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척 희망적인 느낌을 담고 있는 말이다.

 

혹시 환경 문제라고 하면 지구가 오염되어 멸망하면서 세상이 종말을 맞는 장면부터 떠올리는가? 그러나 그런 상상과는 다르게, 지속 가능이라는 말은 굉장히 긍정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 한 모임에서 그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를 뒤흔든 새로운 유행어의 등장, ‘지속 가능 발전’

1992년,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각 나라가 모여 환경에 대해 논의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2년,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는 지구 정상 회의(Earth Summit)라고 불리는 국제 회의가 열렸다. 이름부터가 상징성이 대단히 강한 회의였다. 나는 환경과 관련된 여러 국제 회의와 행사 중에서 이때만큼 기대감이 컸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한 해 앞선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끝난 시점에 열린 회의였다. 수십 년간 이어지며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냉전 체제가 사라졌으니, 1992년은 이제는 무엇인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는 상상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기에 딱 적당했다.

 

지구 정상 회의라는 이름은 그 희망에 어울렸다.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는 이 나라가 저 나라와 다투고, 내 나라가 다른 나라 보다 앞서기 위해 겨루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식으로 나라나 진영의 수준에서 세상 일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행성 전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일을 다같이 함께 생각하자는 느낌을 주는 이름이 지구 정상 회의였다.

지구 정상 회의를 계기로 전세계에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 회의에서 언급되어 1992년의 유행어로 등장하며 전세계에 퍼진 말이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이라는 말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거위를 잘 관리하면 지속적으로 꾸준히 황금알을 얻을 수 있지만, 급하게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서 거위를 잡아 버리면 더 이상의 황금은 없다. 마찬가지로 당장 빨리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집중하여 즉각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들다가, 환경을 너무 심하게 파괴하면 나중에는 발전을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온다. 따라서 당장의 발전 이상으로 환경을 고려하며 발전을 긴 시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게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황금알이고, 지구의 환경이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CSR 보고서? ESG 보고서? 비슷한 듯 다른 보고서들의 등장

이런 사회 분위기에 따라 1990년대 이래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면서 그 유행이 변화하자 비슷한 목적으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보고서를 출간하는 곳이 생겨 났고, 또 최근에는 비슷한 이유로 ESG 보고서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출간하는 흐름도 이어져 왔다.

 

보고서의 제목이 바뀌는 것처럼 초점을 맞추는 대상이 바뀌어 온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변화이긴 하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애초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대를 담아, 환경에 대한 영향과 환경 보호를 위한 어느 한 기업의 노력을 표현하는 보고서를 발간하자는 데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CSR,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룬다는 보고서는 환경 문제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 문제나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어떤 기업이 어떻게 반응하여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같이 다루고자 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사회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는지, 사회에 필요한 기부 활동이나 공동체를 위한 공익 사업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를 같이 다루곤 했다.

 

얼마 전부터 자주 언급되는 ESG 보고서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를 세 가지 요소를 중심에 드러내고 있다. 환경에 대한 언급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통하고, 거기에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은 CSR 보고서와 닮았다. 제목에서 차이를 찾아보자면, ESG 보고서는 제목에서부터 지배구조를 언급한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기업 활동 그 자체뿐만 아니라,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 경영하는 사람들이나 소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도덕적인지도 보고서에 담고, 그것을 그 기업에 대한 평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CSR 보고서, 경영방식까지 포함한 ESG 보고서 등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유사한 개념의 보고서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초점이 바뀌는 중에도 보고서의 근본 목적은 불과 얼마전까지는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1990년 지구 정상 회의 이후로 이런 보고서의 배경에 깔려 있는 정서나 태도는 CSR, ESG로 이름이 바뀌는 가운데에서도 어느 정도는 비슷비슷하게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도덕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가치 지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CSR보고서, ESG보고서는 이익을 추구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기업의 핵심 활동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도덕의 문제를 다루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 가치를 떠나서 이상을 강조한 보고서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기업이 자기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다면, 거기에서 당장 기업의 제품이나 경쟁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에 그런 팍팍한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우리 회사가 얼마나 멋있는지, 우리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호감이 가는지를 치장하고 꾸미려고 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세계였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지속 가능 경영의 시대가 열린다!

그런데 나는 최근 몇 년 들어, 긴 세월 이어져 온 그 흐름이 바닥부터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2020년대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이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에 강하게 와닿는 이야기로 변화하고 있다. 멋진 말로 치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실제 기업의 성장과 가치를 직접 다루는 이야기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휘감고 있다. 보고서의 이름이 조금 바뀌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보고서의 가치와 목적부터가 새로워지고 있다. 이제 지속가능경영이야 말로, 진짜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며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그 무엇 못지 않게 지속가능경영은 팍팍한 현실의 문제다.

 

가장 큰 원인을 생각해 보자면 기후변화 문제와 그 문제를 둘러싸고 발전해 온 사회, 경제적인 상황의 급변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와 관련된 사건이나 소식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식물을 아끼는 운동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식 투자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기후변화 소식에 가장 밝다.

기업의 환경 관련 대응에 주목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어떤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수익을 올릴 기회가 있을 것이냐, 혹은 활동이 규제 당할 것이냐가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제도에 걸려 있는 사례가 대단히 많아지고 있다. 자연히 모든 투자가, 경쟁자,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환경에 대한 실적과 계획에 주목한다.

 

기업들의 경쟁 관계도 변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시가 총액이 높은 자동차 회사는 미국의 전기차 생산 회사다. 한국 최대 자동차 회사, 일본 최대 자동차 회사, 독일 최대 자동차 회사의 시가 총액을 합쳐도 이 전기차 회사보다 가치가 한참 낮을 때가 많다. 중국에서 태양광 전지 소재를 장악하고 있는 회사의 가치는 한국의 정상급 제조업 회사와 맞먹는다. 유럽에서는 풍력 발전 기술 기업이 나날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기후 변화 문제에 먼저 대응한 기업들이 경제와 경영을 서서히 장악해 나가고 있다.

기업의 기후 변화 대응은 이제 그들의 존폐를 결정하는 핵심 역량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그저 북극곰 몇 마리를 살린다, 만다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회사가 살아 남느냐 망하느냐의 절박한 문제다. 이런 세상에서는 기업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기후 변화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것도 옛날 이야기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더 큰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미국의 전기 자동차 회사, 중국의 태양광 회사, 유럽의 풍력 회사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오히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제도를 시행하라고 세상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실린 기업의 탄소배출권 거래 실적이나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계획은 미래를 위한 고상한 이야기 같은 것이 아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업의 핵심 역량에 관계된 이야기다. ESG의 영역 중 환경 분야에서 이렇게 급격한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을 보면,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나 지배구조에 관한 문제 중 일부에서 비슷한 변화가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내, 지속 가능 경영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막연한 미래의 지속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 당장 내년에 기업이 지속 가능한지를 따지는 문제로 부상했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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