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옷은 자신을 보호하는 철갑 같은 외피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옷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기소개서 같은 존재다. 일 년 내내 입을 옷이 등에 맨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집 한 채가 온통 옷으로 가득 찼음에도 공간이 모자라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패션 테러리스트부터 패셔니스타까지, 그리고 미니멀리스트부터 맥시멀리스트까지,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옷을 안 입고는 살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옷은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세대의 패션 패러다임 변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MZ세대의 대표적인 소비 양상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MZ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만의 취향과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라는 오랜 격언은 이제 MZ세대에게 있어 ‘당신이 소비하는 것은 곧 당신 자신이다’라고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생활 속에서 체감되는 기후변화의 위기가 더욱 선명해지면서 MZ세대 소비의 가치 중심이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각이 MZ세대의 소비를 환경중심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패션 트렌드가 바로 컨셔스(conscious, 의식하는∙자각하는) 패션이다. 소재 선정부터 제조 고정까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된 의류와 그것을 입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한마디로 컨셔스 패션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패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환경에 이로운 것이 곧 멋있는 것, 컨셔스 패션의 핵심
2000년대 이후 패션의 대세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반영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옷들 덕분에 대중들에게 의류는 ‘일회용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졌다.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하기보다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 결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남아시아 등지의 저개발 국가들에는 옷의 무덤, 즉 의류폐기물이 쌓여 이룬 거대한 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패스트 패션의 악영향으로 의류 폐기물 문제는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됐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은 폐기물로 매립을 해도 잘 썩지 않는다. 섬유가 낡아지며 뿜어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을 오염시키고, 낡은 옷조각을 해초류와 혼동해 먹어버린 해양 동물들은 뱃속에 옷 무더기가 가득찬 채 죽어가고 있다.
컨셔스 패션은 이와 같은 패션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움직임이다. 소비자들은 무작정 옷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기 전에, 이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환경적인 악영향이나 윤리적인 문제는 없었는지 한번 더 생각한다. 옷을 만든 브랜드의 ESG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리 예쁘고 저렴한 옷이라 해도, 생산 기업이 환경오염, 동물 학대, 또는 갑질 등의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면 소비를 거부하는 것이다.
옷을 산 이후에도 컨셔스 패션은 계속된다. 옷이 낡아져서 버릴 때 이 옷이 환경적으로 어떤 부담을 가져올지 생각해 보고, 최대한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해체하여 폐기하거나 리사이클링 스토어에 기증한다. 또는 옷을 생산한 브랜드에 헌옷을 다시 가져다줌으로써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파인애플 껍질 가죽, 페트병 청바지… 멋도 기능도 Good
의식 있는 소비자가 주도하는 컨셔스 패션 트렌드에 따라 기업들도 친환경적 의류 생산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겨울철 국민교복으로 자리잡은 패딩점퍼의 충전재를 재활용한 깃털로 사용하거나, 깃털이 아닌 따뜻하고 가벼운 신소재를 도입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리사이클 다운 컬렉션’ 상품에 비인도적으로 채취된 동물 깃털이 아니라 이불, 베개 등 재생 가능한 침구류에서 추출한 깃털을 재가공해 사용했다. 또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도 자체 개발한 친환경 폴리에스터 소재를 충전재로 사용하여 동물 깃털을 사용하지 않고도 보온성 및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선보였다.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소재인 파인애플, 포도 등의 과일껍질 부산물을 이용하여 인조가죽을 생산하는 브랜드도 있다. 스페인의 가죽 전문가 카르멘 이요사는 파인애플 잎사귀로 만든 인조가죽 ‘피냐텍스’를 생산했고, 이는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시트 가죽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죽 수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오래 일했던 카르멘 이요사는, 천연가죽을 얻기 위해 공장형 사육장에서 동물들을 비인도적으로 사육하고 잔혹하게 죽이는 것에 큰 회의감을 느끼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인조가죽 생산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인조가죽은 석유 부산물인 PVC로 만들어 생산 및 폐기 과정에서 환경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다른 소재를 찾았고, 그 끝에 발견한 것이 파인애플의 잎사귀였다. 파인애플 잎사귀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직조해 만드는 필리핀의 전통 섬유 바롱 타갈로그를 모티브로 개발된 피냐텍스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와 브랜드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누구에게나 몇 개씩은 옷장에 있을 청바지. 하지만 청바지가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은 상당하다. 특히 청바지의 튼튼한 품질과 독특한 색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약품을 바르고 헹궈내는 워싱(washing) 과정은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청바지 한 벌을 워싱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은 약 7,000L이며, 청바지 총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32.5kg에 달한다.
이런 청바지 생산에 따르는 환경적 부담을 덜기 위해 청바지 브랜드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 예로, 물이 아닌 오존, 레이저 등을 이용해 청바지의 색과 무늬를 만드는 ‘에코 워싱’ 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는 에코 워싱을 사용한 청바지를 ‘워터리스 진(waterless jean)’으로 명명하여 판매하고 있는데, 이 바지 한 벌에 사용되는 물의 양은 1.4L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리바이스는 음료수, 맥주 페트병을 재활용한 소재로 만든 ‘웨이스트리스 진(wasteless jean)’을 선보이기도 했다.
컨셔스 패션을 주도하는 소비자들은 환경중심적인 가치 소비를 위하여 라벨을 꼼꼼히 따져 읽는 것은 물론, 브랜드에 직접 생산과정에 대한 문의글을 남기기도 한다. 환경을 위하여 이 정도의 수고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소비라는 행위, 그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의∙식∙주를 통해 환경에 대한 책임을 실천하는 소비자에게 이제 더 많은 브랜드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응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