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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 절반이 개점휴업? 안정적인 폐배터리 수급 방안은?

전세계적으로 전기차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가운데, 쏟아질 폐배터리 처리를 위한 재활용 설비 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설비를 가동할 폐배터리 수급은 원활하지 못한 것이 현실. 이에 안정적인 폐배터리 수급 방안을 모색해봤다.

(출처: 셔터스톡)

김희영

한국무역협회 글로벌협력본부 팀장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요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배터리 핵심 원료 확보를 위해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2년 80억 달러(약 10조 원)에서 2025년 208억 달러(약 27조 원)로 성장한 후, 연평균 17%씩 증가해 2040년에는 2,089억 달러(약 274조 원)를 상회할 전망이다.

2023년 말 기준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50만 톤 이상의 설비 용량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 투자를 늘리고 있는 유럽과 미국은 각각 20만 톤 가량의 설비 용량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Statista). 하지만 폐배터리(Waste Battery)나 *스크랩(Scrap) 등의 원료 발생량이 아직 그 설비 용량에 미치지 못해, 기껏 구축해둔 설비들이 제 용량대로 가동되지 못한 채 현재 상당 부분 멈춰 있는 상황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이 경제성을 갖추고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들 원료의 글로벌 수급 현황과 함께 국내 기업의 안정적인 원료 확보 방안을 모색해 보자.

*스크랩: 배터리 및 양극재 생산 시 발생하는 부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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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 투자는 급증, 원료 확보는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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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 용량은 *전처리 120만 톤, *후처리 125만 톤으로 추산된다. 이에 더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과 EU 배터리 규정(EU Battery Regulation)의 영향을 받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대규모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증설될 계획이다. 용량 기준으로 2023년까지 미국 6.3만 톤, 유럽 4.1만 톤, 아시아태평양(중국 제외) 지역 2.2만 톤 등 총 12.6만 톤 규모의 증설이 예정돼 있으며, 2024년 이후에도 유럽 4만 톤, 아시아태평양 지역 2.6만 톤이 추가로 생겨날 전망이다.

*전처리: 폐배터리를 방전한 후 분쇄해 검은색 가루 형태의 중간가공품인 블랙매스(Black mass)를 얻는 과정.
*후처리: 블랙매스에서 습식, 건식 등 재활용 공정을 통해 배터리 핵심 원료를 추출하는 과정. 아직은 전처리 설비와 후처리 설비의 규모상 큰 차이가 없으나, 2027년부터는 후처리 설비 용량이 급격히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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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폐배터리 재활용 원료는 폐배터리 발생량이 급증하는 2040년 620만 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2023년 기준으로 보면 폐배터리와 스크랩 발생량은 모두 합쳐도 44만 톤 수준으로, 현재 재활용 설비 용량(약 120만 톤)과 비교해 약 1/3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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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수출물량 확보, 관건은 ‘후처리 기술 고도화’와 ‘현지 협력 강화’

싱가포르 SK tes 폐배터리 후처리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설비를 점검하는 모습.

이러한 상황 속 우리나라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원료를 확보하는 방안은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해외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현재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들은 운송비 절감을 위해 전처리 공장을 유럽에 설치하고, 이를 통해 얻은 블랙매스를 후처리 공장이 있는 국가로 수출해 배터리 핵심 원료를 추출하고 있다. 유럽 내 후처리 공정 설비는 대체로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한창 신설되고 있어, 이 설비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전까지는 이미 후처리 공정 기술력을 갖춘 한국 재활용 기업이 물량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용 후 배터리는 바젤 협약에 따라 ‘유해 폐기물 목록A’로 분류돼 수출입 시 *규제 대상이다. 또한 최근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블랙매스를 폐기물 리스트에 포함시켜 역외로 쉽게 유출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SK테스가 이미 획득한 30여 개의 *바젤 퍼밋(Basel Permit)을 통해 배터리 및 전자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지만, 이제 막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에게는 바젤 협약이 원료 확보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바젤 협약에 의거해 폐배터리는 유해 폐기물에 해당하므로 수출 시 수출자와 수입자 모두 폐기물 수출 및 수입에 대해 해당 국가 관할부서의 사전 동의를 거쳐야 하며, 수입자는 해당 폐기물 재활용 후 남은 폐기물에 대한 처리 과정과 결과를 수출자와 수출국에 통보해야 함.
*바젤 퍼밋: 바젤 협약에 따라 유해 폐기물 및 기타 폐기물 수출할 때 사전에 수입국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서면 동의.

또한 EU 배터리협회(RECHARGE)와 유럽재활용산업연맹(European Recycling industries’ confederation, EuRIC)은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스크랩을 폐기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적극 피력한 바 있으며, 지난해 가결돼 3차 협상 중인 EU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CRMA) 수정안에는 리튬이온(Li-ion) 폐배터리와 블랙매스에 폐기물 코드를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EU는 이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원료의 역외 유출을 엄격히 관리하고 보다 많은 자원을 역내에 확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럽 현지에 후처리 공장 진출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국내 기업의 현지 단독 진출 시 공장 설립 및 운영을 위한 각종 인허가 획득, 까다로운 환경규제 대응 등 운영상 어려움을 고려하면 현지 기업과의 JV(Joint Venture, 합작법인) 형식으로 진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정리하면, 해외에서 발생하는 배터리 재활용 원료 확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국내에 폐기물 처리시설을 갖춰 EU 블랙매스 수입을 촉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해외 협력을 통해 현지 진출을 강화하는 한편, 전자기기 폐기물 수입 기준을 완화해 폐자원 유입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 그 외에도 폐배터리와 블랙매스의 교역 동향을 면밀히 살피면서 바젤 협약 등 폐기물 관련 국제협약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보다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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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쏟아질 폐배터리,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체계적인 회수 시스템 구축 필요

국내에서 배터리 원료를 확보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직접 회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1월 1일 이후 등록된 전기차의 배터리는 정부에 반납할 의무가 없는 개인 소유이나, 이에 대한 체계적인 회수 및 관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게다가 현재 폐배터리는 전자기기 폐기물과 함께 *HS 코드(8549)를 공동으로 사용 중이어서 폐배터리의 정확한 수출입 흐름을 알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폐배터리가 중고 전기차 형태로 해외로 수출될 가능성이 높은데, 국가 공급망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을 확대할 수 있어 체계적인 배터리 회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HS 코드(HS code):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에 따라 대외 무역거래 상품을 총괄적으로 분류한 품목분류 코드.

EU,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출처: YTN 사이언스 유튜브 채널)

유럽의 국가들은 자국의 폐배터리를 효과적으로 수거하고 재사용·재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폐배터리를 바로 재활용하기보다 재제조해 전기차 배터리로 다시 사용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로 재사용하는 등 수명을 늘리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지난해 8월 17일 발효된 EU 배터리 규정에 따라 모든 EU 회원국은 2025년 8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산업용 배터리 등을 포함한 모든 배터리에 대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EU에서는 전기차, 산업용 폐배터리를 안전하게 수거·운송해 해체·보관·재활용까지 서비스하는 폐배터리 전문 회수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운송 시 폭발 위험이 있어 안전한 보관, 운송, 해체가 매우 중요한데, 유럽배터리재활용협회(European Battery Recycling Association, EBRA)와 관련 기관은 폐배터리 운송업체가 지켜야 할 운송 및 포장 규정을 ‘Batteries Transport’라는 웹사이트에 담아 상세히 안내하고 있으며, 노르웨이 정부는 ‘폐배터리 취급 및 화재방지 지침서(Risk assessment and handling of fire in lithium-ion batteries)’를 배포하기도 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제품 생산자에게 그 제품의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활용에 드는 비용 이상의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내도록 하는 제도.

우리나라 역시 2021년부터 폐배터리 회수와 관련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추진해 왔으나, 체계적인 폐배터리 회수 시스템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재활용 가치가 낮아 재활용되기 어려운 리튬인산철(Li-FePO4, LFP) 배터리 등에 대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시행을 검토하고, 폐배터리 성능 및 안전성 검사 기술 개발 및 기술 인증 국제 표준화를 도모해야 한다. 또한 폐배터리 수리 전문 기술인력 양성을 통해 다가올 폐배터리 급증 시기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블랙매스, 재사용·재활용 폐배터리에 대한 세분화된 HS 코드를 신설하고, 엄격한 폐배터리 관리 지침을 마련해 준수하게 함으로써 폐배터리의 안전한 수집, 보관, 운송, 해체 등 선진화된 회수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 강국으로서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에서도 앞서 있다. 국내 폐배터리 회수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해외 재활용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지속가능한 배터리 산업 가치사슬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배터리 강국으로서 입지를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김희영 연구위원은 2006년 한국무역협회에 입사했고, 2019년부터 3년간 중국 쓰촨성 청두지부 주재원을 거쳐 2022년부터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공급망분석팀에서 근무하며 우리나라 공급망 리스크 완화 정책 중 하나인 폐배터리 재활용 정책에 대해 연구했다. 올해부터는 국제사업본부 중국팀장으로서 관련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대표 보고서로는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산업 동향 및 시사점_중국 사례 중심으로>, <전기차 배터리 스왑핑의 도입과 시사점>, <글로벌 배터리의 최대 격전지 EU 배터리 시장동향과 시사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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