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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로 열릴 새로운 세계, 주도권 가져올 마지막 열쇠는?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의 정세에 세계가 흔들리는 이유, 바로 ‘배터리’다. 배터리 생태계 안에서 새롭게 전 세계가 연결될 미래 시대, 그 판도를 뒤바꿀 마지막 변수로 주목받고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콩고민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이름이 더 단순한 콩고와는 다른 나라다. 과거에는 자이르라는 이름을 쓴 적도 있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 당시 사용한 이름도 자이르여서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어느정도 있을 듯싶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벨기에가 과거 제국주의 침략 시절 이 지역에 대단히 혹독한 침략과 수탈을 자행해 심한 국제적 비난을 받았던 것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최근의 큰 사건을 꼽아 보자면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격변하던 국제 정세 속에서 ‘콩고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에 휘말린 일도 있다.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져 비교적 덜 알려진 전쟁이지만, 규모가 크고 사상자가 수백만 명 단위로 발생해 아프리카의 세계대전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쟁이기도 했다.

그런데 2020년대가 되면서 이 낯선 나라의 정세는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됐다. 바로 배터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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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어떻게 대세가 되었나

현재 가장 유용한 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다. 앞으로 기후 변화 문제 때문에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의 비중이 늘어나면 배터리를 쓰려는 사람들은 더욱더 많아질 것이다. 우선 가까운 미래에는 현재 석유나 석탄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대체될 테니, 그 전기를 담아 둘 배터리가 필요해진다.

SK에코플랜트가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설치한 에너지 저장장치

게다가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은 햇빛이 약하거나 바람이 약할 때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용량 배터리에 미리미리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쓰는 에너지 저장장치도 같이 발전돼야 한다. 만약 어떤 도시에서 100% 태양광만으로 전기를 충당하도록 한다면, 밤에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 수 없을 테니, 도시의 야경을 만들어내는 그 많은 불빛들을 배터리에 담아 둔 전기만으로 밝힐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세상이 실제로 온다면 얼마나 많은 배터리가 필요하겠는가?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 배터리 관련 회사가 항상 화제가 되고, 한국, 중국, 일본 등지의 나라에 투자하려는 금융 회사들이 항상 배터리 관련 산업을 투자 대상으로 눈여겨보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전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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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로 연결되는 세계 경제

리튬이온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튬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재료들이 필요하다. 특히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오래 동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금속 원소들을 꼭 사용해야 한다. 특히 한국 회사들이 지금까지 잘 개발해 온 방식으로는 니켈(Nickel), 코발트(Cobalt), 망간(Manganese) 이 세 가지 금속을 리튬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 잘 알려져 있다. 흔히 업계에서는 니켈, 코발트, 망간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NCM 배터리’라고도 부른다.

지금까지 NCM 배터리에 들어가는 금속 재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재료는 코발트였다. 코발트의 가격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발트 생산량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다름 아닌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 세계 코발트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이에 콩고민주공화국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코발트 가격은 항상 널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산 근처에서 갑자기 전투가 벌어지면 코발트 가격이 높아지고, 코발트를 재료로 써야 하는 NCM 배터리의 생산 비용도 자연히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NCM 배터리를 만들어 파는 한국 배터리 업계는 돈을 벌기가 어려워진다. 주식 시장이 어려워지고 환율이 오르며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진다. 머나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무장 세력들의 전투 결과가 인도양을 건너 한국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2020년대의 세계 경제가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처럼 배터리로 인해 세계 경제는 새롭게 연결되고 있으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중에 누벨칼레도니라는 나라가 있다. 과거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이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누벨칼레도니는 뉴칼레도니아라는 영어식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남태평양의 아름답고 한가로운 관광지나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오지 탐사에 나서는 지역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금융 시장, 그중에서도 주식 시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정세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누벨칼레도니에는 NCM 배터리에 코발트와 함께 꼭 필요한 니켈이 대량 생산되는 광산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터리 재료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이 누벨칼레도니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종종 신문기사에 실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배터리 재료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 대표가 누벨칼레도니 대통령과 면담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누벨칼레도니의 니켈 생산 공장. 누벨칼레도니는 전 세계 니켈 매장량의 4분의 1 가량인 710만 톤의 니켈을 보유해 니켈을 둘러싼 패권 경쟁의 주요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 변화와 같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중요한 기술이 광물 자원 문제와 엮여 세계 경제를 바꾸는 과정은 상상외로 복잡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혼란 때문에 코발트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코발트를 안 쓰면서 리튬이온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LFP(리튬인산철, LiFePO4) 배터리 같은 분야에 뛰어난 회사가 갑자기 유망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콩고민주공화국에 평화가 찾아오면 코발트를 많이 사용하는 배터리 회사와 계약을 맺은 자동차 회사의 주가가 같이 뛰기도 하는 것이 요즘 세계 경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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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세 바꿀 마지막 변수는 ‘배터리 재활용’

이런 상황에서 미국, 중국과 같이 자원과 기술을 함께 갖춘 나라들의 잠재력이 더 강하게 발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기 나라에서 여러 광물을 캐 가공해 본 적이 있고 그에 대한 경험과 기술이 충분한 나라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여러 나라의 광산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전기자동차 산업에서 앞서 나가고 있고, 중국은 배터리 생산 1위 국가여서 광물 산업과 배터리 산업을 연결해서 키워 가기에도 유리하다.

그렇다면 한국 같은 자원 빈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나가면 힘겹게 개발해 놓은 배터리 기술로 얻은 수익을 결국 자원 문제, 재료 문제 때문에 다른 나라에 다 넘겨주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런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배터리 재료가 세계 경제를 움직여 나가는 판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아직 한 가지 남아 있다. 다름 아닌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다.

배터리는 수명을 갖고 있는 제품이다. 휴대전화나 휴대용 컴퓨터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다 배터리의 용량이 점점 줄어드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배터리는 사용하다 보면 언젠가는 버릴 수밖에 없다. 특히 전기자동차는 한 번 충전해서 100㎞를 차다가 배터리 용량이 부족해져서 50㎞밖에 달릴 수가 없게 되면 운전자는 원래 자신이 원하는 용도로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아직 절반이나 되는 용량이 남아 있는 배터리라고 하더라도 제품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전기의 상당량을 배터리에 담아 놓고 써야 하는 미래 사회라면 수명을 다해 버려지는 폐배터리의 양도 막대할 것이다. 이 폐배터리를 모두 포기해 버린다면, 기후변화를 막는 재생 에너지 기술이 있다 한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활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무리 콩고민주공화국에 코발트가 많고, 누벨칼레도니에 니켈이 많다고 해도 전 세계에서 쓰고 버리는 배터리를 모두 충당하려면 광산이 바닥나는 것은 금방이다.

SK에코플랜트 자회사 테스(TES)의 작업자들이 폐배터리로부터 금속을 추출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결국 폐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해 다시 쓸 수 있게 고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폐배터리에 들어 있는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성분을 다시 뽑아내 쓸 수 있는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바꿔 말해 보면 만약 효율적인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누군가 개발한다면, 그 사람은 코발트 광산이나 니켈 광산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광산은 광물을 다 캐내면 바닥이 나서 텅 빈 굴만 남게 되지만, 재활용 공장은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폐배터리를 계속 받아와 끝없이 새 배터리를 위한 재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향후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충분히 성숙하면 배터리 재료 광물의 가격이 널뛰지 않고 안정화될 것이고, 그러면 광물, 광산을 두고 목숨 걸고 싸우는 몇몇 나라들의 정치적 혼란이 안정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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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는 ‘미래의 금광’…지속적인 관심 필요

폐배터리에서 새로운 배터리 재료를 얻는 기술을 개발하기에는 이미 배터리 생산 기술이 발달해 있는 나라가 유리하다. 또한 재활용 제품을 처리하기 위한 각종 화학 기술이 발달해 있는 나라가 폐배터리 재활용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해 볼 수 있다. 한국처럼 재활용품 분리수거가 발달해 있고 여러 분야의 재활용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역도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장점을 갖춘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도시 광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일본의 도시에서 버려지는 전자 제품을 재활용하면 그 기술이 자원이 많은 나라의 광산처럼 유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한국도 배터리 산업이 나라 경제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상당한 만큼, 이미 주식시장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에 대한 소식으로 몇몇 종목들의 주가가 출렁인 적이 있다.

산업과 환경 문제가 얽혀 경제와 연결되는 현장의 상황을 보면, 이러한 재활용 문제를 좀 더 교묘하게 활용하는 나라도 눈에 띈다. 유럽 국가들은 환경 산업의 수준이 높고 화학 기술이 발달해 있는데, 배터리 산업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전기자동차는 미국 회사가 강세고,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배터리는 아시아 회사들이 강세인 상황에서 자칫 유럽 기업들은 미래에 쇠퇴할 수도 있다.

EU, 리튬 등 전기차배터리 원료 재활용 의무화…2031년 시행 유력(출처: YTN 사이언스 투데이 유튜브 채널)

이런 상황에서 마침 유럽에서는 강력한 폐배터리 재활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용된 배터리를 수거해 처리하고 재활용하는 작업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는 법과 제도를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환경 분야에서 앞서 있는 유럽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일이 잘 풀린다면 이런 제도를 기회로 재활용 기술에 저력이 있는 유럽 기업의 손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버려지는 폐배터리 속에서 마치 금광, 은광을 발견해 내는 것과 같은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와 환경보호 문제는 얽혀 있는 원인과 영향 관계를 따져 보면 볼수록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나라나 지역을 기후 악당이라고 몰아붙여 그 나라만 핍박하면 된다는 식으로 쉽게 결론을 내기도 어렵고, 한 가지 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오늘 전망이 좋았던 방안이 내일 암담해 보이는 일도 있다. 그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결국 서서히 진보를 이뤄 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이 처한 입장에서는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에 대해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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