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에너지 세계대전, 승전국은 어디일까?” 에너지∙ 자원 안보의 복합지정학
기후위기와 그로 인해 도래한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은 화석연료와는 또 다른 국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에너지의 날을 맞아 친환경 에너지로 새롭게 재편된 국제 관계와 그 속에서 갖춰야 할 필수 역량에 대해 살펴보자.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09년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는 지구에서 에너지가 고갈되자 새로운 자원을 찾아 떠난 인간들이 판도라라는 외계 행성에서 벌이는 파괴적인 행태를 소재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그리고 2022년에 개봉한 속편 <아바타-물의 길> 역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으로 초래된 파괴와 갈등을 다루고 있다. 비록 영화적 허구이기는 하지만, 결국 아바타 시리즈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분명하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에너지 자원의 고갈’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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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등장시키다
인간의 생산 및 소비 활동은 필연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을 수반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수준을 넘어서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여 탈탄소 경제를 이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기후 기술(climate technology)’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각종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기후 기술의 적용은 다각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은 물론 수력,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 수소와 같은 신에너지의 보급, 화력 발전의 청정기술 도입 등 에너지 공급 차원에서 종합적인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송배전망의 혁신, 수요 부문의 효율화와 함께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Carbon dioxide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과 같은 온실가스 고정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이런 여러 기후기술들조차 에너지나 자원의 사용을 수반한다는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화석연료와는 또 다른 지정학·*지경학적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경학(地經學, Geoeconomics): 지리경제학. 지리적 특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에너지 및 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등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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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경쟁 구도 양상
원자력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혹은 재활용이라는 난제가 남아있지만, 한번 연료가 장착되면 안정적으로,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매우 중요한 발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 World Nuclear Association)는 30여 개국이 원전 도입을 고려, 계획하거나, 이미 시작했다고 분석했는데, 이러한 원자력 신흥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입지는 미국에 비해 확고하다. 러시아의 국영원자력공사이자 세계 최대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Rosatom)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재정 지원, 우라늄 농축, 운영 및 유지보수, 사용후핵연료 회수까지도 패키지로 제안하며 전 세계 신규 원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중국 역시 자국 내 원전 건설 확대와 더불어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탄탄한 국내 제조 능력 및 공급망을 기반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신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기술은 군사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이중성이 있으며, 러시아산 및 중국산 원자로의 보급 확대가 기존 미국 주도의 핵물질 비확산 체제에 도전이 되고 있다는 점,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자포리자 원전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원전의 안전과 사이버 공격 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원자력을 둘러싼 지정학·지경학적 판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종합 원자력 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Electric Company)가 폴란드 정부로부터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게 된 배경에도 원전이라는 특수 시설이 에너지 안보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향후 중동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의 원전 수출 시장에서 어느 국가가 더 우위에 서게 될지, 치열한 경쟁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자연으로부터 얻는 전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을뿐더러 자국의 영토 내에서 전력을 생산함으로 에너지 안보에도 긍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설비를 제작·건설하는 데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원이 소비된다. 태양광 발전을 위한 패널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금속자원인 갈륨과 텔루륨이 필요하며, 풍력 발전을 위한 터빈에는 니켈과 망간이,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제조를 위해서는 코발트와 리튬이 필요하다. 이런 광물들 역시 땅에서 얻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의 편재성이 존재하며, 그 편재성의 정도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능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세계 갈륨 매장량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은 세계 갈륨 생산의 95% 이상, 게르마늄 생산의 약 60%를 감당하고 있다. 코발트의 경우, 세계 매장량은 대략 710만 톤 규모인데, 그중 절반 정도인 350만 톤이 콩고민주공화국에 매장되어 있다. 이렇게 특정 지역에 핵심 광물들이 몰려 있고, 제련이나 처리 능력의 편재성도 심각하다 보니,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경쟁과 갈등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미국은 2022년 6월, 호주,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유럽연합(EU)과 함께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MSP, Minerals Security Partnership)을 출범시켰는데, 한편으로는 자국의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자원보유국의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 적인 조치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멕시코는 남미 국가 중 가장 앞서서 리튬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칠레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리튬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도 국부(國富)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리튬을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70년대 석유위기를 거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가 출범한 것 같이, 핵심광물을 둘러싼 공급국과 수요국 사이의 줄다리기가 새로운 조직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수소와 같은 신에너지 역시 지정학·지경학적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다른 색깔이 부여되어 불리는데, 브라운수소(Brown Hydrogen)는 석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해 추출한 수소를, 그레이수소(Gray Hydrogen)는 천연가스의 메탄을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추출한 수소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런 생산 방식은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선호되는 방식은 아니다. 한편 블루수소(Blue Hydrogen)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만들어 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해 탄소 배출을 줄인 수소를 말하며, 청록수소(Turquoise Hydrogen)는 천연가스를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열분해 기술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얻는다. 그러나 결국 수소 제조에 있어서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하는 그린수소(Green Hydrogen)나 원자력에너지를 통해 생산하는 핑크수소(Pink Hydrogen)가 궁극적으로 가장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각각의 수소 생산 방식은 저마다의 지정학·지경학적 계산을 수반한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은 자국 내 풍부한 가스를 활용한 블루수소 제조에 적극적이며, 장기적으로는 그린수소의 확대에 정책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중동의 산유국들이나 아프리카 국가들도 블루수소 및 그린수소 생산과 수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생산에 유리한 기후조건을 가진 중동 및 북아프리카, 남미 지역도 그린수소의 새로운 공급처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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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에너지 대전의 최고 무기, 복합지정학
이렇듯 다양한 기후기술이 저마다의 지정학·지경학적 게임을 유발하기 때문에, 정책 당국은 물론 기업들도 이른바 ‘복합지정학’적 사고를 요구받고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김상배 교수는 사이버 공간의 등장으로 지리적인 공간을 초월하는 ‘복합 네트워크의 공간’이 생겨나면서 위험을 촉발하는 주체의 범주에 인간은 물론 수많은 사물 변수까지 포함해야 하는 상황을 ‘복합지정학’이라는 개념으로 해설한 바 있다. 예컨대 자연재해는 물론, 사이버 공격과 같은 기술 분야에서의 리스크,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 위험, 인구 감소나 난민과 같은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변화 등 매우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이른바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차원에서의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신흥안보는 전혀 다른 범주에 있는 리스크들의 연결과 결합을 만들어내므로, 신흥안보의 부상은 기존 전통 안보의 구분을 넘어서는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복합지정학이나 신흥안보와 같은 학술적 개념을 상술한 기후기술 분야에 대입시키면 매우 다양한 종류의 위험 상황을 상정할 수 있게 된다. 가정컨대 원자력 시설에의 사이버 공격이 발생하여 정전 사태가 벌어지거나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시설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기후위기 상황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시설의 파괴로 인해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 수소 생산·수출국에서의 분쟁 상황이 발생하여 수소 공급망의 교란되고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상황, 자원민족주의와 자원 무기화 양상이 과열되어 핵심광물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상황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리스크가 다양한 경로로 창발할 수 있다. 결국 일일이 상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리스크가 넥서스(Nexus, 결합)를 만들며 또 다른 리스크를 키우는 상황을 상정해 볼 때, 국가는 물론 기업도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SK에코플랜트는 재생에너지 분야는 물론, 그린수소 공급망 구축, 친환경 소재 개발 부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으며, 사업 간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술한 바와 같이 에너지·자원 안보의 복합지정학이 다양한 신흥안보의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도 SK에코플랜트가 기후기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업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조성하는 데 적극적이길 바라며, 아울러 복합지정학 시대가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신흥안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인 대안 및 종합적인 솔루션을 고안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를 기대해 본다.
임은정 교수는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일본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학 석사,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의 국제관계학부에서 조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비상임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일본연구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일 간 에너지 관계”(2023), “미·중·러 삼극체제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에너지 안보”(2023),『탄소중립과 그린뉴딜』(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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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09년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는 지구에서 에너지가 고갈되자 새로운 자원을 찾아 떠난 인간들이 판도라라는 외계 행성에서 벌이는 파괴적인 행태를 소재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그리고 2022년에 개봉한 속편 <아바타-물의 길> 역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으로 초래된 파괴와 갈등을 다루고 있다. 비록 영화적 허구이기는 하지만, 결국 아바타 시리즈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분명하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에너지 자원의 고갈’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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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등장시키다
인간의 생산 및 소비 활동은 필연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을 수반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수준을 넘어서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여 탈탄소 경제를 이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기후 기술(climate technology)’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각종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기후 기술의 적용은 다각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은 물론 수력,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 수소와 같은 신에너지의 보급, 화력 발전의 청정기술 도입 등 에너지 공급 차원에서 종합적인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송배전망의 혁신, 수요 부문의 효율화와 함께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Carbon dioxide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과 같은 온실가스 고정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이런 여러 기후기술들조차 에너지나 자원의 사용을 수반한다는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화석연료와는 또 다른 지정학·*지경학적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경학(地經學, Geoeconomics): 지리경제학. 지리적 특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에너지 및 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등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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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경쟁 구도 양상
원자력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혹은 재활용이라는 난제가 남아있지만, 한번 연료가 장착되면 안정적으로,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매우 중요한 발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 World Nuclear Association)는 30여 개국이 원전 도입을 고려, 계획하거나, 이미 시작했다고 분석했는데, 이러한 원자력 신흥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입지는 미국에 비해 확고하다. 러시아의 국영원자력공사이자 세계 최대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Rosatom)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재정 지원, 우라늄 농축, 운영 및 유지보수, 사용후핵연료 회수까지도 패키지로 제안하며 전 세계 신규 원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중국 역시 자국 내 원전 건설 확대와 더불어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탄탄한 국내 제조 능력 및 공급망을 기반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신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기술은 군사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이중성이 있으며, 러시아산 및 중국산 원자로의 보급 확대가 기존 미국 주도의 핵물질 비확산 체제에 도전이 되고 있다는 점,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자포리자 원전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원전의 안전과 사이버 공격 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원자력을 둘러싼 지정학·지경학적 판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종합 원자력 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Electric Company)가 폴란드 정부로부터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게 된 배경에도 원전이라는 특수 시설이 에너지 안보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향후 중동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의 원전 수출 시장에서 어느 국가가 더 우위에 서게 될지, 치열한 경쟁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자연으로부터 얻는 전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을뿐더러 자국의 영토 내에서 전력을 생산함으로 에너지 안보에도 긍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설비를 제작·건설하는 데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원이 소비된다. 태양광 발전을 위한 패널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금속자원인 갈륨과 텔루륨이 필요하며, 풍력 발전을 위한 터빈에는 니켈과 망간이,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제조를 위해서는 코발트와 리튬이 필요하다. 이런 광물들 역시 땅에서 얻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의 편재성이 존재하며, 그 편재성의 정도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능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세계 갈륨 매장량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은 세계 갈륨 생산의 95% 이상, 게르마늄 생산의 약 60%를 감당하고 있다. 코발트의 경우, 세계 매장량은 대략 710만 톤 규모인데, 그중 절반 정도인 350만 톤이 콩고민주공화국에 매장되어 있다. 이렇게 특정 지역에 핵심 광물들이 몰려 있고, 제련이나 처리 능력의 편재성도 심각하다 보니,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경쟁과 갈등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미국은 2022년 6월, 호주,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유럽연합(EU)과 함께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MSP, Minerals Security Partnership)을 출범시켰는데, 한편으로는 자국의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자원보유국의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 적인 조치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멕시코는 남미 국가 중 가장 앞서서 리튬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칠레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리튬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도 국부(國富)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리튬을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70년대 석유위기를 거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가 출범한 것 같이, 핵심광물을 둘러싼 공급국과 수요국 사이의 줄다리기가 새로운 조직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수소와 같은 신에너지 역시 지정학·지경학적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다른 색깔이 부여되어 불리는데, 브라운수소(Brown Hydrogen)는 석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해 추출한 수소를, 그레이수소(Gray Hydrogen)는 천연가스의 메탄을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추출한 수소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런 생산 방식은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선호되는 방식은 아니다. 한편 블루수소(Blue Hydrogen)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만들어 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해 탄소 배출을 줄인 수소를 말하며, 청록수소(Turquoise Hydrogen)는 천연가스를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열분해 기술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얻는다. 그러나 결국 수소 제조에 있어서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하는 그린수소(Green Hydrogen)나 원자력에너지를 통해 생산하는 핑크수소(Pink Hydrogen)가 궁극적으로 가장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각각의 수소 생산 방식은 저마다의 지정학·지경학적 계산을 수반한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은 자국 내 풍부한 가스를 활용한 블루수소 제조에 적극적이며, 장기적으로는 그린수소의 확대에 정책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중동의 산유국들이나 아프리카 국가들도 블루수소 및 그린수소 생산과 수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생산에 유리한 기후조건을 가진 중동 및 북아프리카, 남미 지역도 그린수소의 새로운 공급처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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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다양한 기후기술이 저마다의 지정학·지경학적 게임을 유발하기 때문에, 정책 당국은 물론 기업들도 이른바 ‘복합지정학’적 사고를 요구받고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김상배 교수는 사이버 공간의 등장으로 지리적인 공간을 초월하는 ‘복합 네트워크의 공간’이 생겨나면서 위험을 촉발하는 주체의 범주에 인간은 물론 수많은 사물 변수까지 포함해야 하는 상황을 ‘복합지정학’이라는 개념으로 해설한 바 있다. 예컨대 자연재해는 물론, 사이버 공격과 같은 기술 분야에서의 리스크,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 위험, 인구 감소나 난민과 같은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변화 등 매우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이른바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차원에서의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신흥안보는 전혀 다른 범주에 있는 리스크들의 연결과 결합을 만들어내므로, 신흥안보의 부상은 기존 전통 안보의 구분을 넘어서는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복합지정학이나 신흥안보와 같은 학술적 개념을 상술한 기후기술 분야에 대입시키면 매우 다양한 종류의 위험 상황을 상정할 수 있게 된다. 가정컨대 원자력 시설에의 사이버 공격이 발생하여 정전 사태가 벌어지거나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시설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기후위기 상황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시설의 파괴로 인해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 수소 생산·수출국에서의 분쟁 상황이 발생하여 수소 공급망의 교란되고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상황, 자원민족주의와 자원 무기화 양상이 과열되어 핵심광물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상황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리스크가 다양한 경로로 창발할 수 있다. 결국 일일이 상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리스크가 넥서스(Nexus, 결합)를 만들며 또 다른 리스크를 키우는 상황을 상정해 볼 때, 국가는 물론 기업도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SK에코플랜트는 재생에너지 분야는 물론, 그린수소 공급망 구축, 친환경 소재 개발 부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으며, 사업 간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술한 바와 같이 에너지·자원 안보의 복합지정학이 다양한 신흥안보의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도 SK에코플랜트가 기후기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업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조성하는 데 적극적이길 바라며, 아울러 복합지정학 시대가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신흥안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인 대안 및 종합적인 솔루션을 고안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를 기대해 본다.
임은정 교수는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일본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학 석사,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의 국제관계학부에서 조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비상임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일본연구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일 간 에너지 관계”(2023), “미·중·러 삼극체제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에너지 안보”(2023),『탄소중립과 그린뉴딜』(공저, 202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