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코플랜트는 더 이상 Internet Explorer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최적의 환경을 위해 다른 웹브라우저 사용을 권장합니다.

전기도 농산물처럼 수확해서 쓴다?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지구에서 미처 쓰지 못하고 버려지는 에너지를 수확한다? 이미 한번 쓴 에너지를 재활용한다? 청정 세상을 만드는 최선의 방식,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전승민

과학기술분야 전문 기자 및 저술가

에너지는 변신의 귀재다.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대부분 태양에너지, 즉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열이다. 이 에너지가 대자연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바뀌면서 우리가 사는 지구 환경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태양에너지로 지구 곳곳이 따뜻해지면서 대류의 흐름이 일어나고 바람이 분다. 땅에서는 지열이 생겨나고 바다에는 조류가 흐른다. 물이 태양열을 받아 수증기로 바뀌어야 비가 내리고 강물이 흐른다. 또한, 식물이 자라는 것 역시 태양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므로 가능한 것이다. 동물은 그런 식물을 먹어야 자라날 수 있다. 이런 동식물의 사체가 땅속에서 장기간 변성된 것이 바로 석탄, 석유와 같은 지하자원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가 현재까지 개발한 기술로는 이 다양한 에너지 중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21세기 중반을 코앞에 둔 지금도 인류가 활용하는 에너지 대부분은 화석연료에 근간을 두고 있다. 문제는 지하자원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최선의 ‘방식’은 있다. 에너지를 ‘채굴’ 하지 말고 ‘수확(Harvesting)’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이라고 부른다.

.

에너지 하베스팅의 시작은?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단순하다. 땅속에 묻혀 있던 각종 화석연료를 에너지로 사용하면서, 연료 속 탄소(C)가 산소와 반응해 대량의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대기 중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사용하기 편리한 지하자원만을 집중적으로 이용한 결과, 지금의 기후위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 셈이다. 올해 7월은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로 기록됐으며, 캘리포니아 데스밸리는 7월 중순 기온이 섭씨 56도까지 치솟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UN은 최근 기후현상에 대해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가 끓는 시대가 시작됐다”며 기후위기를 경고했다. (출처: KBS 유튜브 채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에너지는 얼마든지 그 얼굴을 바꿀 수 있다. 지구 어디에나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에너지를 갈무리(수확)해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나간다면, 지구 온난화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나갈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인류 최초의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아마 풍차나 물레방아일 것이다. 바람이나 물의 힘을 그대로 방향을 바꾸어 탈곡 등을 하는 데 활용했으니 말이다. 반면 최신의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주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형태는 대부분 전기로 통일돼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의 에너지 하베스팅은 물리학과 화학, 소재 공학을 총동원해 열이나 운동 에너지, 빛 에너지 등을 전기로 바꾸는 특수 소재 개발에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뜨거운 열이 발생하는 곳에서는 온도 차이를 전기로 즉시 바꾸는 ‘열전(熱電, Thermoelectric) 소자’를 붙여 둔다면, 그곳에서는 지속적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원리로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光電, Photovoltaic) 소자’를 이용하면 태양빛만 있어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유체(물이나 바람)의 흐름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터빈’ 방식도 있다.

 

인간이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대표적인 에너지인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은 에너지 하베스팅의 대표 사례다.

에너지 하베스팅에서 제일 먼저 주목할 것은 역시 ‘자연의 에너지’다. 지구의 에너지 중 가장 대표적으로 인간이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자연의 에너지를 수확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에너지 하베스팅에 포함된다. 버려지는 자연의 에너지를 다시금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흔히 ‘재생에너지’라고 부른다. 풍력이나 태양광, 태양열, 조력, 파력, 지열, 수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 중 생산 방식의 효율 측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태양광 방식이다. 태양광 발전은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태양에너지를 다른 변환과정 없이 즉시 전기로 변환한다. 비교하자면 풍력발전은 태양에너지가 지구를 달구고, 그 달구어진 지구에서 다시 기압의 변화가 일어나 바람이 불어야 발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은 태양빛이 들어오는 그 즉시 전기로 변환해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중간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다른 재생에너지 방식에 비해 효율이 대단히 높다. 물론 풍력발전이나 조력, 지열발전 등이 쓸모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역에 따라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은 풍력발전이 더 유리할 수 있으며, 지열발전은 한 번 시공을 마치면 24시간 안전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

산업현장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잡아라!

이외에도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할 수 있다. 공장이나 발전소 등 대형 생산시설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수확해 재활용할 경우 사회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전소의 경우, 대량의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을 이용해 물을 끓이고 그 물이 수증기로 바뀌면서 팽창하는 에너지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투입된 열에너지가 100%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데 쓰일 리 없다. 버려지는 에너지가 생긴다는 뜻이다.

SK에코플랜트가 준공한 ‘북평레포츠센터 연료전지 발전소’. 이곳 연료전지에서 발생한 열은 북평레포츠센터 수영장의 난방과 온수 공급에 사용된다.

낭비되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따뜻한 물(온배수)을 지역 및 농업 ·양식업용 난방용수 등으로 공급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앞서 언급한 열전 소자를 이용해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도 자주 쓰이고 있다. 국내기업 SK에코플랜트는 부산 에코델타스마트시트 국가시범도시(2025년 완공 예정) 내 신재생에너지 자립률 100% 달성을 목표로 연료전지, 지붕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프라를 구축 중인데, 그중 하나로 열전 신소재를 적용한 산업 폐열회수 실증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열을 즉시 전기로 변환, 발전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 발전 시스템에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이 추가로 들어가는 것은 이 경우가 국내 최초다.

산업현장의 노력도 눈에 띈다. 국내 사례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는 쇳물을 이송하는 ‘용선운반차’ 운행 시 사용하는 전기 조명의 에너지를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용선운반차가 뜨거운 쇳물을 담고 있다는 것에서 착안, 열전 소자를 활용해 이동 중에 버려지는 열에너지를 전기로 바꾸어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적인 사례다. 광양제철소는 물론이고 국내 제철소는 대부분 폐열 회수 및 활용 기능이 기본적으로 장착된 공기예열기(GAH, Gas Air Heater) 등을 장착하고 있다. 예를 들어 SK에너지의 경우 2009년부터 울산공장에서 시간당 약 40톤의 폐열 증기를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폐열 재활용 시스템은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산업시스템에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가고 있다.

.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에너지’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압전소자(壓電素子, piezoelectric element) 기술로, 압전 소자는 압력을 받으면 전기를 생산하는 특수 소재를 의미한다.

압전소자를 도로에 전체에 설치한 ‘발전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전기가 생산된다.

 

예를 들어 이 소재를 도로에 넓게 설치할 경우, 자동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도로’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발전도로는 이미 일본의 일부 지하철 통로와 개찰구에 설치돼 있고, 2021년에는 신 에노시마 수족관에도 도입되었다. 국내에선 201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진이 기존보다 충격에 강하고 발전효율이 높은 신개념 압전 발전장치를 개발,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 시험도로에서 실증 실험까지 마친 바 있다. 또한 부산항만공사도 이 같은 압력발전 시스템을 금년 내로 도입할 계획이다. 항만시설은 무겁고 커다란 트럭이 자주 드나들게 되는데, 이 트럭이 드나드는 문(게이트) 하단부에 압전발전 시스템을 설치해 차량 출입 시 발생하는 압력을 전기로 바꿔 활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필요한 작은 에너지를 만들어 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전기를 생산하게 만든다 거나(2014년 서울대-전자부품연구원), 체온으로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웨어러블 장치(2014년 KAIST), 체온으로 발전하는 열전소자(2023년, KAIST), 피부 전기장을 통해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기술(2023년, 중앙대-연세대) 등이 연구된 바 있다.

국내 연구팀이 체온으로 전력을 만들어내는 웨어러블 발전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출처: YTN 사이언스 채널)

이런 작은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냐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상상해 보자. 스마트폰을 충전기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용자 입장에서 꽤 큰 이점이지 않을까.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작은 에너지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을 생각한다면 막대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에너지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너지의 그 많은 얼굴 중 어떤 모습만을 보아온 것일까.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습의 에너지를 만나는 일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이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

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과학기술분야 전문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