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간혹 던지는 질문이 있다. ESG에 있어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 투명경영) 중 굳이 하나를 꼽는다면 어떤 것의 비중이 가장 크냐는 것이다. ESG는 기존의 경제, 경영, 기업윤리 아젠다와 비슷한 점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모습 뿐만 아니라, ESG는 답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ESG에 대한 질문과 모색
필자에게 위의 질문을 던진다면, 우답(遇答)을 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여 있고 셋 다 주요한 리스크 요인이지만 속성이 다르기에 비교가 무의미하다고 말이다. 여러 전문가가 ESG를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설명하는 사람의 경험과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된다. 환경이든 안전이든 공정거래이든 아니면 회사법이든 본인의 활동 분야가 은연중 강조되기 때문이다. 세 분야 모두에 깊은 전문성을 쌓기가 쉽지 않기에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ESG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ESG는 금융산업의 투자의사 결정에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권고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UN이 골드만삭스, 도이치뱅크, 크레딧스위스그룹 등 유수의 금융∙투자기관과 공동 발간한 보고서 ‘Who Cares Win’에서 권고한 내용이 일반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런 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일견 비슷한 듯해도 배경과 주체에 차이가 있다. ESG 투자가 대세가 되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ESG 요소를 고려한 경영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SG 투자가 ESG 경영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탄소중립은 ESG 아젠다의 대표 개념
필자는 환경정책 수립과 집행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왔다.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사회정책 전반을 다루는 부서에서도 근무한 바 있고, 국가나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하거나 지원하는 업무도 담당하였다. 지금 일하는 법무법인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도 간혹 다룬다. 한마디로 ESG 전반을 자문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런데도 ESG를 설명할 때 환경 이슈를 맨 앞에 세우고 있다. ESG 경영의 근본 목적이 기업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탄소중립은 여러 면에서 지속가능성과 ESG 아젠다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이로 인해 추진되는 탄소중립이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은 물론이고 여타의 많은 기업에 단기∙장기적으로 거대한 리스크로 다가오는 것은 명백하다. 일례로 한국은행은 지난 3월 금융안정보고서에 금융기관들이 철강, 석유화학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고탄소 업종에 무려 411조 원의 대출∙투자를 하고 있어 위험 대비가 시급하다는 이례적인 지적을 담기도 하였다.
국가 차원도 다를 바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랜 작업을 거쳐 ‘에너지 부문 2050 탄소중립 로드맵 특별보고서’를 지난 5월 발간하였다. 보고서에 포함된 수많은 표와 그림 중 유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산유국들이 석유와 천연가스로부터 얻는 수입(收入)의 변동 그래프였다. 화석연료 수요의 급락으로 2010년대 역대 최고인 연간 9,000억 달러를 웃돌던 산유국 수입은 2020년대는 반 토막 이하로, 2050년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 토막 이하인 연간 2,0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진다는 전망이다.
이로 인해 석유 이외는 별다른 자원이 없는 중동의 산유 부국들이 받을 충격이 짐작이 간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벤츠를 탄다. 나의 아들과 손자는 랜드로버를 탈 것이다. 그러나 증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것이다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라시드가 한 말로 전해진다).’라는 그들의 우려가 새삼스럽다.
피할 수 없는 요구, 저탄소∙탈탄소로의 강력한 압박
장기적인 도전으로 생각했던 저탄소∙탈탄소로의 압박은 최근 더욱 강해지고 있다. 2021년 4월 미 바이든 대통령 주관으로 40개국 정상이 참여한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해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앞다투어 발표하였다. 화상으로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도 2030년 감축 목표를 올해 내 상향하겠다고 공식 천명하였다. 2017년 대비 24.4%를 줄여야 하는 현재의 감축 목표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가야 할 길인 것이 분명하지만 산업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파도가 더 빠른 속도로 온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결정이다. 이토록 중요한 정책이 전격적으로 발표된 것에 대해 언론 등 외부의 비판이 별로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아마도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을 비전으로 제시한 당시 정부의 전략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 자동차 온실가스 기준 설정, 녹색건축물 의무화 등 지속적인 흐름이 우리 사회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수용력을 높여 놓았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
한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7월 이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소속 그룹을 A(아시아∙아프리카 그룹)에서 B(서유럽 그룹)로 변경하였다. 그룹의 변경은 동 기구 57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B그룹은 형식적으론 대륙별 구분에 따라 분류되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속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선진국 그룹이다. 유엔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교토의정서 후속 협상 과정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애써 유지하며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피하려 했던 시절이 불과 10여 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한 걸음 먼저 나아가 대비하는 기업의 탄소중립
기업은 ESG 시대의 탄소중립을 위해 무엇을 먼저 준비해야 할까? 업종, 기업마다 직면한 상황이 다를지라도 출발점은 ESG와 탄소중립이 잠시 유행하는 시류(時流)가 아니라는 점을 구성원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부 공감대가 탄탄할수록 기업의 경영 비전과 체질, 사업 분야를 탄소중립형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순조롭고 탄력을 받게 된다. 그 토대 위에 기업 특성에 맞는 탄소중립의 시나리오를 짜고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탄소중립은 ‘해 아래 새로운 것 (something new under the sun)’이라고도 불리는 환경문제의 해결과 궤를 같이한다. 기후변화의 속성 자체가 가장 거대한 차원의 지구환경 문제 아니던가? 환경 비즈니스는 탄소중립 시대에 적합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그린 빌딩 등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사업은 이미 주목을 받고 있다. 물, 폐기물, 자연환경의 보전∙복원 분야 또한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특히 폐기물 관리는 온실가스와 천연자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구축의 핵심으로서 역할이 더 막중해질 것이다.
탄소중립과 ESG 경영의 시대에 한 걸음 앞서 행동하여 선도자의 이점(first movers advantage)을 누리는 글로벌 스타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