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순환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 중에서도 물은 삶을 이어가고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액체, 기체, 고체의 다양한 형태로 순환하며 스스로 정화한 물은 삶을 유지하고 문명을 발달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물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문명은 물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물 사용의 명암을 경험하면서 또 다른 문명을 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굳이 물을 관리할 필요가 없었던 사회는 문명에서 뒤쳐졌고, 지배당했다.
인구가 증가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가 물을 남용하기 시작하자 물의 자연 순환은 균형을 잃었다. 인류는 물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전에 물을 오염시켰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물, 자본과 기계의 생산에 쓰인 물이 오수, 폐수라는 이름으로 정화 여부와 상관없이 버려졌다. 그리고 물의 복수가 시작됐다. 오수와 폐수가 환경을 오염시켰고 인류는 물을 가려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수처리, 왜 중요한가?
수자원 관리와 수처리는 우리의 모든 일상. 식량 자원의 생산, 생활용수의 공급, 에너지의 생산, 산업 그리고 생태계 기능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기업과 사회의 필수 시스템으로 등장한 ESG 경영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 경영(Social), 지배구조 개선(Governance) 등을 말하고 있다.
환경을 뜻하는 Environment의 머릿글자인 E가 맨 앞에 온 것만으로도 환경의 회복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오수와 폐수를 처리하는 수처리 산업이 E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산업, 경제의 성장 및 도시화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물 사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해 왔고, 그만큼 배출되는 하∙폐수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수질오염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구의 기후변화에 따라 수자원 부족 문제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수자원의 확보는 중요한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지구의 한정적인 수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물의 효율적인 관리와 사용이 필요하다.
물 관리의 핵심은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깨끗한 물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것이며, 한정된 수자원을 고려하여 이미 사용한 물도 적절하게 처리하여 재사용함으로써 원활한 자원의 순환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즉, 수처리는 우리가 사용한 물을 깨끗한 물로 처리하여 수환경계에 재순환 시키거나 또는 적절한 수질로 처리하여 재사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물 관리 방안이며, 특히 기후변화 및 지속적인 물 사용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물 재이용을 통한 수자원의 효율적 관리가 필요하다.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민간은 법과 수처리 시설, 환경 교육 같은 여러 방안들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어쨌든 물은 써야 하고, 쓴 물은 어떤 장치를 거치든지, 방류해야만 했다.
방류가 없으면 오염도 없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생각을 했다. “오∙폐수의 방류가 문제라면 방류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생각은 쉽지만, 방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저장해 놓고 자연적으로 없어지게 만들라고? 이렇게 반문하겠지만 의외로 답은 여기에 있었다. 증발이다. 오∙폐수를 방류하는 대신 처리 시설을 통해 수분을 증발하고, 이렇게 증발한 수증기를 냉각해 물로 만들어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마치 술을 증류하는 것과 비슷하다. 술은 알콜을 잡고 수분을 날리지만.)
무방류 시스템은 증발과 냉각을 이용해 외부로 물 한 방울 방류하지 않고 내부에서 순환해 사용한다. 방류하지 않으므로 수질 오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증발시켰다고 해서 오∙폐수 속에 들어 있던 부유 물질, 유해 물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런 물질들은 없어지지 않고 반고체 형태의 찌꺼기로 남는데, 이를 슬러지라고 한다. 일종의 배설물인 셈이다. 오∙폐수의 슬러지는 해양투기 금지, 매립∙소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연탄재를 혼합하는 방식의 재처리 과정을 거쳐 매립되거나, 비료, 혹은 고체연료나 바이오매스 등의 연료로 재사용된다.
무방류가 가능한 과학적 원리
무방류 시스템(Zero Liquid Discharge, ZLD)는 공장 등에서 사용한 모든 물을 회수해 깨끗한 물을 기화 후 냉각시켜 추출하고 나머지 오염물은 슬러지로 만들어 배출하는 시스템이다.
무방류 시스템은 크게 ‘전처리 단계’와 ‘농축수 처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위의 무방류 시스템 구성도 상에서 윗 부분이 전처리 단계이다. 전처리 단계에서는 중화, 응집, 침전, 연수화 등의 공정을 통해 오∙폐수 속에 포함된 부유물질과 유해물질 및 경도성 이온들을 제거한다.
전처리한 폐수는 막분리 공정과 증발 농축 및 결정화 공정을 통해 물과 슬러지를 배출하는 농축수 처리 단계를 거쳐 물 한 방울 방류없이 무방류를 완성하게 된다. 우선, 막분리 공정에서는 약 60 bar 정도 압력 조건에서 역삼투막(RO)을 이용하여 폐수를 *총용존고형물(TDS, Total Dissolved Solids) 기준으로 대략 70,000 mg/L 정도까지 농축한 후 다음 단계인 증발 농축/결정화로 보내게 된다. 최근에는 124 bar까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RO막이 적용 가능하며 130,000 mg/L까지 더 농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발생된 농축수는 증발농축기(Evaporator)에서 스케일 및 부식 방지를 위해 감압상태(기체의 압력이 대기압 이하)로 끓는점 이상 가열하여 수분을 증발시킨 후 응축시켜 재이용수로 만든다. 그리고 염 농도가 160,000 ~ 250,000 mg/L으로 더 농축된 고농도 농축수는 다음 단계인 결정화기(Crystallizer)에서 과포화조건에 도달하여 고형물 형태로 물속에 녹아 있는 용질이 슬러지 형태로 석출된다. 이 슬러지는 탈수기로 이송이 되어 염 형태로 분리된 후 건조기를 통해 수분을 더욱 제거하여 최종적으로 고형화되어 배출이 된다. 결정화기에서 증발된 증기는 증발농축기와 동일하게 응축시켜 재이용수로 사용한다.
무방류 시스템의 최대 단점은 높은 비용,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바에 따르면 무방류 시스템 ZLD는 오∙폐수로부터 수질 오염을 방지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솔루션이다. 게다가 최근에 등장한 신기술도 아니다. 도입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다. 우선 날로 강화되는 정부의 규제와 환경 단체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폐수 속에서 리튬, 황산나트륨, 가성소다 등 귀중한 자원을 얻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환경에 유익하다.
무방류 시스템의 처리 성능은 굉장히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농축증발 및 결정화기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보통 증발압축기는 원수 1톤 당 20~25kWh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결정화기에서는 염분 농도와 점도가 높은 고농도 농축수 1톤 당 52~66kWh 정도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에너지 저감을 위한 노력이 상당히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부식방지를 위해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기에 설치 비용 역시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ESG 시대에 들어서면서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이점들이 높은 비용을 상쇄하기 시작했다. 무방류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 늘어나는 폐수 처리 비용과 깨끗한 용수 사용료, 규제와 감시에 대처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적다고 기업들이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SK에코플랜트 워터사이클테크(Water Cycle Tech)팀은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수자원의 순환과 수자원 보호에 대비하고 있다. 워터사이클테크팀 이영근 프로를 만나 코 앞에 떨어진 무방류 시스템의 역사와 현황, 철학을 들어본다.
Interview
물은 생명이다
SK에코플랜트 Water Cycle Tech팀 이영근 프로
ESG 시대에 수자원을 보호한다는 것은, 법을 지키고 제도에 따라 설비를 갖추는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에 앞서 자발적인 투자와 관심, 실천이 필요하다. SK에코플랜트는 무방류 시스템과 같이 원천적 오염 발생을 막는 기술이 지구를 살린다는 마음으로 더 수자원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