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한 문제 의식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개최된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정식 출범한 이후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었으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책임론,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분법적 역할론에 관한 첨예한 대립으로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을 소모한 것이 사실이다.
넷 제로(Net Zero),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대세
1992년 리우 협약에 이어,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Paris agreement)은 과거 다(多)배출 책임국가 중심의 의무감축체제를 철저히 외면했던 중국과 미국이 유럽연합(EU)과 다른 진영에서 주도를 했다는 점, 197개 국에 달하는 협정 당사국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2021년, 6년 전 체결된 파리 협정에 기반한 신 기후체제 출범을 앞두고 각국 정부는 기존과 다른 차원의 국가 전략과 기술 혁신을 발빠르게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미 192개 국가가 파리 협정 이행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UN에 제출하였으며 EU, 미국, 한국을 포함한 기후대응 선도국가에서 관련 목표와 이행계획을 상향,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움직임은 국제환경협약을 이행하고자 하는 기존의 행동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진다. 국가별 감축 목표의 적정성 등을 추적∙평가하는 범세계적 기후변화대응 행동 분석기관 클라이밋 액션 트래커(Climate Action Tracker, CAT)에 따르면 탄소중립(넷 제로, Net Zero)을 선언한 국가는 약 130여 개국, 기업은 약 400개가 넘는다.
저탄소를 넘어서 탈탄소로의 강력 드라이브
탄소중립은 기존의 온실가스 감축행동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탄소중립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자원, 경제, 금융시스템은 무엇일까? 최근 2~3년 사이 더욱 높아진 기후변화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기후변화는 다른 환경문제와 다르게 그 위험성과 가치가 정량적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탄소경제시스템을 기반으로 작동되고 있다. 쉽게 말해 일정량의 탄소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고 필요에 따라 국가 또는 기업간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월드뱅크의 ‘탄소가격 책정 현황(https://carbonpricingdashboard.worldbank.org)’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약 92개 국가 및 지역에서 이러한 탄소가격 책정 이니셔티브(carbon pricing initiatives)가 운영되고 있거나 도입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국가 차원의 제도 정비를 통하여 탄소중립에 적극 개입하는 사례도 있다. EU 집행위는 올해 7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법률 초안을 발표하였다. 이는 탄소규제가 느슨한 국가로부터 수입된 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로, 상품의 제작 및 이동 과정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에 따라 관세 부과, 배출 쿼터 구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EU 역내 기업 경쟁력 보호 및 탄소중립 관련 규제가 불충분한 국가를 향한 대책 촉구를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CBAM 제정의 주된 목적이다.
또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이후 9대 통상 의제를 담은 첫 번째 통상정책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는데, 이 보고서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탄소국경조정세(carbon border adjustment taxes)가 포함되어 있다. EU 및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인 중국은 각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국제무역기구(WTO)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기후변화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언적이고 자발적인 약속이 있어야 하며, 점진적 변화가 아닌 강력한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것을 종국에는 모두가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남들보다 먼저 탈(脫)석탄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차근차근 준비해 온 국가들, 그리고 재생에너지, 배터리, 순환경제 기반의 새로운 미래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발 빠른 행보에 나선 글로벌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기회 삼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탄소중립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방법
우리나라 기업은 탄소중립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해야 되는가? 우선적으로는 기업이 속한 산업 및 생산 제품, 공급망(고객 및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의 특성에 따라 고민해 나가야 하겠지만, 큰 틀에서 짚어 봐야 할 것들 또한 있다. 이에, 글로벌 무역환경 및 금융 분야에 있어 탄소중립에 대한 방향성과 요구를 바탕으로 기업의 대응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TCFD는 우리나라에서 환경부를 비롯한 26개 금융유관기관이 참여∙지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 정부 및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 美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 및 기관이 연관되어 있는 협의체다. TCFD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 및 정부 기관은 약 2,100개소에 달한다. TCFD는 거버넌스, 전략, 리스크 관리, 매트릭스와 목표를 4가지 핵심요소로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전략 측면에서 기후변화 시나리오 기반의 리스크 및 기회 평가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국제결재은행(BIS) 등 국제 금융∙재정기관은 탄소중립을 위한 금융의 역할을 강조하는 가운데, TCFD가 중요한 의사결정 프레임이라며 지지하고 있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투자 기업에 TCFD 기반의 기후리스크 공시를 요구하고 있으며, 석탄 관련 매출 비중 및 지분 여부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블랙록은 지난 7월 발표한 지속가능성 리포트를 통해 자사의 244개 투자 대상 기업 중 기후변화 대응이 부족한 53개 기업의 이사선임을 반대하였다고 밝히는 등, 기후 리스크 기반 ESG 투자정책을 강력하게 이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온실가스를 포함한 환경관리는 사업장 중심의 규제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수반되는 비용이나 그로 인한 편익은 제품 원가에 반영되지 못하며, 기업의 생산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과도 연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내부탄소가격제도를 시설(장비) 신설이나 증설, 개선 등 투자 관련 의사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후변화 문제는 탄소세 등의 새로운 무역장벽을 야기하거나 탄소배출정보 공개 및 개선과 같은 새로운 거래조건을 생성할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 단위의 탄소경쟁력이 관리되지 못한다면 매출을 비롯한 기업의 표면적 성장과는 무관하게 수익성 악화가 초래되며, 지속적 성장을 위한 자금 확보에도 리스크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환경∙기후변화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기구인 CDP(Carbone Disclosure Project), UNGC(United Nations Global Compact), WRI(World Resources Institute), WWF(WorldWide Fund for Nature)가 공동 설립한 과학 기반 목표 설정 이니셔티브 SBT(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에 따르면, 5°C 또는 2°C 시나리오 기반 감축목표를 설정한 기업의 약 75%가 협력사를 포함한 Scope3 감축목표를 선언하고 있다.
즉 기업의 기후 리스크 관리 및 탄소중립의 범위를 규정할 때, 사업장 내부 배출 외에도 제품 구매(협력사), 자본재, 수송, 제품 사용 및 폐기, 출장 등 비즈니스 전 밸류체인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다. 인게이지먼트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Scope3에 대한 배출관리는 GHG Protocol Value Chain standard, PAS 2050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침을 활용할 수 있다. 기후 인게이지먼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 밸류체인의 기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 공급, 폐기물 자원화 등 탄소중립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저탄소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개발 필요
앞서 거론된 세 가지 과제 외에도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순환경제 등 탄소중립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한 저탄소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개발 또한 매우 중요한 목표다. 이를 위해서 기업은 기존 비즈니스와의 시너지 및 확장성을 바탕으로 접근하거나 공급망 기반의 협력체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법 개정을 통해 국내 도입된 정책으로 화석연료 기반의 전기를 재생에너지 전기로 전환하는 RE100 활동 지원 정책인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처럼, 저탄소 비즈니스 관련 기술 및 서비스 수요 증가 전망에 따른 정책이 속속 나오고 있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기업은 이 흐름을 눈 여겨 봐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의 실체와 진정성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 우리 모두는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영 환경과 금융 메커니즘이 탄소중립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의 인식, 이는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