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대체 뭔데 전 세계가 난리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법)이 국내 업계 간 희비를 엇갈리게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란 미국 내 급등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킨다는 명분하에 마련된 법으로,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생산’과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등 기회 요인이 많지만, 미국 내 조립공장을 가동할 때까지 대당 약 천만 원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전기차 업체는 미국 시장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IRA법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10년에 걸쳐 3,69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중고차 등 그린생태계 전반에 걸쳐 세액공제 및 산업보조금을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IRA법은 4차 산업 분야인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屈起 : 떨쳐 일어남, 여기서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최고가 되겠다’는 의미)를 막고, 미국이 기술 패권을 갖겠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해야 하고, 중국산 핵심 광물과 부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이들 산업의 미국 공급망에 중국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설치한 이 두꺼운 차단막이 우리 기업에게 독소조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K-배터리 없이는 미국 전기차도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 있기에 분명 IRA법은 국내 업체에 기회요인이 되나, 중국산 핵심 소재를 북미 혹은 우방국 조달로 변경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희토류 광구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대체 조달선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논란 덩어리, IRA
IRA법은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법안 통과부터 쉽지 않았다. 미국 하원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상원에서는 여야가 각각 50명인데, IRA법에 대해 2명의 민주당 상원의원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중 한 명인 조 맨친 의원은 미국의 대표적인 석탄 생산지인 웨스트버지니아주 의원으로, 선거구 특성상 특히 신재생에너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조 맨친 등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과 비밀 협상을 통해 결과적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비밀을 유지하면서 업계의 로비를 철저하게 차단했으며, 또한 예산조정 절차를 이용하여 야당의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회피하고 상원 의장(부통령)의 캐스팅보트로 51:50을 만들어 상원을 통과시켰다(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 2022).
지난 7월 중순만 하더라도 IRA법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했다. 소문은 있었지만, 법안 논의 정보가 언론이든 업계에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협상을 거친 IRA법은 7월 27일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전통적으로 미 의회는 이 시점에 하계휴가에 돌입하는데, IRA법 공개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휴가 중인 의원들을 비상소집해 대응했다. 그렇게 IRA법은 민주당의 전략에 따라 8월 7일 상원의 문턱을 넘고, 12일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전례 없는 속전속결로 법이 만들어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도 서둘러 서명했다. 통상 한 달 이상의 시간을 갖는 대통령의 법안 서명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지 4일 만에 서명하고 예외적으로 즉시 발효를 지시했다.
통상적으로 법이 제정되면 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발효시킨다. 6개월도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드는데 빠듯하다. 그야말로 상정·의회 통과·대통령 서명·법 발효가 각본대로 진행되었다. 미국 업계는 물론이고 국내 전기차 업계도 법이 의회를 통과할 시점에 내용을 파악했을 정도였다.
지난 9월 2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이 IRA 대응 미흡을 지적하자 국무총리는 송구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미국 업계도 IRA 입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참고로 700 페이지로 구성된 IRA법은 노령층에 대한 약값 한도를 설정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로비력이 으뜸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제약협회(PhRMA)조차도 대의회 로비가 차단되며 손을 쓰지 못했다.
IRA법은 2021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착수했던 BBB(Build Back Better, 더 나은 재건) 법안의 축소판이다. BBB 법안 역시 현지 생산, 미국산 부품을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가 포함되어 있었다. 3조 5,000억 달러의 예산을 수반하고 있어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은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공화당은 수용 불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우방국들 역시 법안의 문제점을 표명하기도 했다(에너지경제연구원, 2022).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하여 미국 국민들이 우려하는 인플레이션과 연관지어 법안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7천억 달러를 증세하고 4천억 달러를 지출하는 형태로 법안의 큰 틀을 바꾸었고, 이를 예산조정이라는 약식입법 절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출보다 증세가 많으니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올해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다가설 방법
9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IRA법 발효 기념식에는 바이든 대통령,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민주당 유력 정치인 등 현재 미국을 이끌고 있는 최고 실력자들이 참여해 ‘역사를 진전시킨 법’, ‘삶을 바꿔놓을 법’ 등 찬사를 쏟아냈다. 이 법 발효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도가 40%대 중반으로 올라 과거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져온 징크스를 이번에는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출처: Reuters, Ipsos).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출하는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를 시정해 달라’는 우리나라의 요청에 대해 미국은 ‘협의 채널에서 논의하자’는 원론적인 선에서 대응하다가 9월 말 해리스 부통령 방한 이후 일부 진전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IRA법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와 중국 견제 관련 미국의 입법 기조는 명확하다. 중국과 깊고도 다양한 공급망을 형성해 온 우리나라는 야속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이 미국의 입법 기조이다. 광물을 포함한 소재와 중간재를 중국산에서 우방국산으로 전환해야만 미국 시장에 접근하고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단기적으로 보면 국내 전기자동차 업계에는 불리하지만,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업계는 도약의 날개를 달게 되었다. 태양광 패널 제조시설 건설을 위한 투자와 세액공제, 인센티브, 여기 더해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의 미국 내 제조에 대한 세액 공제도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이슈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업계가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 적지 않다. 또한 미국이 노리는 IRA 공급망 정책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해야만 미국 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는 산업통상 전쟁 시대이고 미국의 통상정책에 대한 정보의 조기 입수와 기민한 대응이 중요하다. 미 의회 및 산업통상당국에 대한 로비도 유연하면서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IRA법은 연말까지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 중간선거 판도를 예의주시하면서 시행령에 우리 기업의 관심 사항이 반영될 수 있도록 다층적으로 미국과 협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