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국제 메가 이벤트로 손꼽히는 엑스포(EXPO). 엑스포는 인류가 당면한 공동의 문제에 대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세계적 토론의 장이자, 경제·문화 올림픽이다. 그동안 엑스포가 지켜온 핵심 가치인 진보와 평화, 교육과 교류는 세상을 움직인 새로운 산물 그 자체였다.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수많은 발명품은 엑스포를 통해 세상의 빛을 봤다. 1889년 파리 엑스포 출입구 아치(Arch)이자 상징물인 에펠탑은 관람객을 숨죽이게 하였고, 수세식 화장실부터 축음기, 전화, 자동차, 탈곡기, 에스컬레이터, 컴퓨터 등의 당시 최신 발명품들은 엑스포 무대를 장식하며 경탄을 자아냈다.
엑스포가 지닌 막강한 위력
엑스포 또는 박람회란 상업적 목적의 무역 전시회와는 달리 정부 간 국제기구인 국제 박람회 기구(BIE, 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로부터 공인을 받아 개최하는 행사다. BIE 공인 엑스포는 ‘인정 엑스포(Recognised Exhibition)’와 ‘등록 엑스포(Registered Exhibition, 등록 박람회∙세계 박람회∙월드 엑스포로 혼용 사용됨, 이하 엑스포)’로 나뉜다. 앞서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대전과 여수 엑스포는 특정 전문 분야를 주제로 개최하는 인정 엑스포인 반면, 2030년 부산에 유치하려는 엑스포는 등록 엑스포로, 인류와 관련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거대 규모의 메가 이벤트다.
엑스포는 단순한 문화의 장 이상의 의미로, 막강한 파워를 지닌다. 국제사회 위상 제고, 다양한 국제 교류와 국제 교역 촉진 등 세계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트리거 역할을 한다. 또한 엑스포 사이트 개발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 구축에 따른 사회간접자본 확보, 지역 경제 활성화, 이미지 제고까지 장기적으로 지역과 국가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뿐만 아니다. 지역주민의 일체감 조성 및 자긍심 고취,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 효과 등 다양한 부문에서 긍정적인 발자취를 남긴다. 그 어떤 한계란 없는 엑스포야말로 전 세계를 호령하는 비밀 병기인 셈이다.
1990년대 이전 – 과학기술에서 인류의 진보로
최초의 엑스포인 1851년 런던 박람회의 초기 개최 목적은 ‘과학기술 발전’이었고, 그 이후 개최되는 나라별 시대상에 따라 엑스포의 주제는 변형됐다. 1867년에 개최된 파리 엑스포는 당시 프랑스의 철학적 사유가 담긴 ‘노동의 역사’를 필두로, 인간의 모든 생산활동을 대변하는 전 인류적 엑스포를 표방했다. 1933년 시카고 엑스포의 경우에는 ‘한 세기의 진보(A Century of Progress)’를 주제로 설정, 도시 성립 이래 100년간의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을 극적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엑스포의 주제는 점차 미래를 표방하며 100년 후 세계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지 않는 유일한 길로만 보던 사람들은 세계대전 이후 모습을 달리했다. 1958년 브뤼셀 엑스포는 ‘보다 인간적인 세계(A World View: A New Humanism)’를 주제로 내세웠다. 이는, 인간의 심층적인 문제를 꿰뚫는 방향으로 엑스포의 주제가 한층 고도되었음을 나타낸다. 1962년 시애틀 엑스포 ‘우주 시대의 인간(Man in the Space Age)’,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의 ‘인간과 그의 세계(Man and His World)’, 1970년 오사카 엑스포의 ‘인류의 진보와 조화(Progress and Harmony for Mankind)’ 역시 과거에서 한 발 나아가 인간성, 즉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문화 교류를 꾀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생태‧환경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1974년 스포캔 엑스포에서 처음 환경문제를 다루었으나 표면적일 뿐 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엑스포가 탄생한 이래 구가했던 산업 기술에 의한 문명의 진보는 생태를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기후 위기를 가속했기 때문. 그리고 인류문명의 성취가 인류의 절멸을 경고하고 있는 현실은 BIE의 엑스포에 대한 이념의 전환을 가져왔다.
2000년대 이후 – 지구와의 공존을 말하다
1994년 BIE 총회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시의성 있는 주제 즉, 엑스포가 ‘지구적 과제 해결에 공헌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이후 진행된 엑스포에서는 인류와 환경에 대한 관심, 삶의 질 향상 등의 주제에 집중했다.
2000년 하노버 엑스포는 ‘인간, 자연, 기술-새로운 세계의 개막(Humankind, Nature, Technology-A New World Arising)’을 주제로, 친환경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역점을 두고 인류와 자연이 공존 가능한 기술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주제는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Better City, Better Life)’로, 모든 인류의 동등한 정주 활동 권리, 도시를 인류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는 최초로 식량문제를 다루었다. ‘지구 식량 공급, 생명의 에너지(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를 주제로 선정, 인류의 영양공급 문제와 먹거리의 원천이 되는 지구환경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였다.
바로 직전에 우리들이 익히 본 2020년 두바이 엑스 포는 ‘마음의 연결, 미래의 창조(Connecting Minds, Creating the Future)’을 강조하며, 세부 주제였던 ‘기회’, ‘이동성’, ‘지속가능성’을 테마로 지구를 보호하고 개척할 영감을 제공했다. 다가올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기업이나 단체의 장벽을 허물고 이제껏 실현할 수 없었던 사업과 서비스를 창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이번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현재 화두에 오른 ESG 경영의 바탕인 지속가능,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두어 ‘스이타 스마트 시티(이하 스이타 SST)’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더 나은 미래로의 항해, 2030 부산 월드 엑스포
2030년 부산 월드 엑스포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Transforming Our World, Navigating Toward a Better Future)’로 선정됐다. 이는 팬데믹, 기후변화, 양극화, 인구 고령화,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인류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 기술 상호 관계에 근본적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지구적 현안 해결의 길은 ‘패러다임 전환’ 즉, 개인 역량과 글로벌의 연대 강화, 환경•물리•세대적 한계를 넘은 전 지구적 협력과 조화,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공존의 삶에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또한 기항 도시인 부산의 특성을 살려 모두 모여 더 나은 미래로 다시 출발하자는 뜻을 ‘항해’란 표현으로 담았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내에서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세계적 행사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멀지 않은 2030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부산의 엑스포를 기대하며, 서로 다른 자리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에 힘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이제는 낯선 긴장감을 풀고 진심을 다해 응원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