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우리네 식탁이 아닐까 싶다. 신선한 제철 작물로 차려진 한 끼 식사야말로 과연 진미(珍味)라고 부를 수 있을 터. 음식에 담긴 농부의 정성과 구슬땀을 알기에 그 맛이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제 이 말도 옛말이 될지 모르겠다. 농부의 피땀눈물을 대신할 똑똑한 동반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작물의 맛과 영양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효율성과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오늘의 주인공, 바로 ‘스마트팜’이다. 오늘 Trend Insight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농법인 스마트팜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데이터로 짓는 농사, ‘스마트팜’
스마트팜(Smart Farm)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똑똑한 농장’ 정도로 직역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똑똑하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살펴보니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해 농작물은 물론이고 가축이나 수산물까지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과연 4차산업혁명 기술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IT용어사전에서는 스마트팜을 농·림·축·수산물의 생산, 가공, 유통 단계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여 지능화된 농업 시스템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마트팜의 핵심가치는 ICT 기술을 통한 데이터의 활용에 있다. 우선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빛, 토양 등의 환경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물이 자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환경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자는 작물의 품질과 수익성을 동시에 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생육 단계별 상세한 생산 정보 이력을 관리할 수 있어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작물에 대한 보다 확실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강도의 노동력을 필요로하는 농업 분야에서 스마트팜은 적은 힘으로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가령 기존 농장에서는 작물 관수 시 농부가 직접 밸브를 열고 모터를 작동시켜야 했지만, 스마트팜에서는 미리 설정해둔 값에 맞추어 전자밸브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사람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의 내일에 스마트팜이 필요한 이유
스마트 팜은 현재 스마트 농장, 스마트 온실, 스마트 축사, 스마트 양식장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광범위한 활용 분야, 편의성과 효율성, 생산량 증대 등 스마트팜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스마트팜이 우리에게 닥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식량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경작 양상의 변화와 이로 인한 식량위기는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꿀벌 집단 실종 사건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만 해도 올해 들어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졌다. 이상기후로 평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와 잦은 비로 꽃이 너무 빨리 폈다 져버리는 바람에 꿀벌의 먹이인 밀원이 감소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2035년엔 꿀벌이 멸종될 것으로 추측되는데, 꿀벌이 사라지면 한 해 전 세계 142만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 (랜싯, 2015) 인간이 재배해는 1500종의 작물 중 30%의 수분 작용을 꿀벌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꼭 꿀벌 때문이 아니어도, 온도나 습도, 일조량, 풍량 등의 조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농업은 기후 위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일 수밖에 없다. 미국 과학원회보(PNAS)에 따르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1℃만 상승해도 밀은 6.0%, 쌀은 3.2%, 옥수수는 7.4%, 콩은 3.1%가 감소한다고 한다. 그리고 늦어도 40년 후면 지구의 온도는 3℃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21, 국립기상과학원) 지금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식량들을 보기도 힘든 시기가 곧 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불러올 식량 위기와 농업의 변화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최적화된 경작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폐수처리 시설 동반 설치 등 환경 보호와 자원 절약 요소가 다분한 스마트팜이 주목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스마트 농업, ‘메트로팜’
이처럼 농업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핵심인 스마트팜.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는 스마트팜이 가져올 일상의 변화를 피부로 직접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일상에서 가장 쉽게 스마트팜을 만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지하철역에 방문하는 것이다.
지하철(Metro) 역사에 있는 스마트팜을 뜻하는 메트로팜은, 2019년 7호선 상도역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민들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5호선 답십리역, 7호선 천왕역, 2호선 충정로역, 을지로3가역까지 총 5곳의 지하철역에서 메트로팜을 만날 수 있다.
메트로팜에서는 주로 쉽게 볼 수 없는 유럽 품종의 채소와 허브를 재배하고 있다. (메트로팜 작물의 판매가 일반 농가에 피해를 끼치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이 채소들은 메트로팜 바로 앞 자판기를 통해 살 수도, 옆 카페에서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맛볼 수 있는데, 실제로 구매하는 이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인 편이다. 갓 수확한 신선한 채소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데다 농약과 GMO, 병충해로부터 안전하고, 게다가 모든 지하철 이용객들이 작물의 재배 과정을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어 더욱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트로팜은 어떻게 운영될까?
메트로팜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토양이 아닌 스펀지와 배양액으로, 햇빛 대신 LED광을 쬐며 자란다. 메트로팜은 사람이 아닌 로봇에 의해 작물이 관리되는데, 이를 ‘오토팜’ 방식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과 센서를 통해 로봇 농부 스스로 채소 재배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파종은 물론이고 생장 주기에 따라 내부 환경을 조절하고 최종적으로 수확하는 과정까지 로봇이 도맡는다. 인간은 컴퓨터에 온도, 습도 등의 재배조건만 입력하면 된다.
역사 내의 공간은 일반 농경지에 비해 면적이 훨씬 좁다는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메트로팜은 이 좁은 공간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작물을 층층이 쌓아 재배하는 ‘버티컬 인도어 팜’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메트로팜은 오히려 일반 노지 대비 면적당 40배 이상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상도역 메트로팜에서만 하루 생산되는 채소 수확량이 50kg. 한 달이면 무려 약 1톤에 달하는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많은 양의 작물들을 가까운 도시 내에서 소비할 수 있으니, 산지로부터 도심까지 농산물을 이동하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탄소배출을 최소화 한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우리 정부는 농업 분야 디지털 뉴딜 전략 달성을 위해 ‘스마트팜 혁신 밸리’를 전국 4개소에 구축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지속되는 팬데믹으로 안전한 먹거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요즘, 국민들의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농업 분야에서 들려온 기술 개발 소식이 사뭇 반갑다. 메트로팜을 비롯해 앞으로 더 다양한 장소와 분야에서 스마트팜 기술을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