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내 소득 20%가 증발된다” 기후위기는 경제위기?
기후위기는 단순히 비가 많이 오고 더워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밥상머리 물가와 일터 등 경제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입은 손실 규모만 수백 조원에 달한다는데, 기후위기는 앞으로 우리의 살림살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후위기는 지금 당장 해결이 필요한, 우리 모두가 직면한 문제다. 하지만 여전히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상기후로 많은 사람이 죽고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한 번씩 들려오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지금 여기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처지는 발밑의 얼음이 점점 녹아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북극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기후변화가 지금 여기 우리 일상에도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스페인에서 발생한 가뭄으로 올리브유 가격이 폭등해, 치킨 한 마리 가격은 2만 원을 넘어 3만 원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 전엔 미국을 덮친 한파의 영향으로 부품을 제때 받지 못 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공장이 가동을 멈춰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알고 보면 경제위기다. 손을 놓고 있다간 먹고살 일부터 걱정해야 할 날이 조만간 다가온다는 뜻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상기후로 내 지갑에 들어와야 할 돈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지금처럼 계속 뒷짐만 지고 서 있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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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 도대체 얼마일까?
일단 내 지갑에 들어와야 할 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줄어든 건지부터 살펴보자.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를 가장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실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금액을 확인하는 것이다.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 리(Swiss Re)에 따르면, 지난해 자연재해 피해보상을 위해 각국의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 액수는 1,080억 달러(약 149조 원)로, 직전 10년(2013~2022년) 평균치인 890억 달러(약 123조 원)를 크게 웃돌았다. 최근 들어 이상기후로 자연재해가 빈발해진 탓이다.
발생한 모든 피해에 보험금이 지급되진 않는다. 다시 말해 실제 피해 규모는 보상금액보다 훨씬 더 크다. 독일의 재보험사 뮤닉 리(Munich Re)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국토 전역을 휩쓴 대형 허리케인들을 비롯해 폭우, 강풍, 우박 등으로 500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여기 더해 이탈리아에서 우박으로 80억 달러(약 10조 원), 튀르키예와 시리아 등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500억 달러(약 66조 원)의 손실이 각각 발생했다. 하지만 발생한 전체 1,080억 달러의 피해 중 보험으로 보상받은 금액은 55억 달러(약 7조 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으킨 경제적 손실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뮤닉 리가 보험 보상액을 근거로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경제적 손실 규모는 2,500억 달러(약 330조 원)에 달한다.
학계에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최근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레베카 뉴먼(Rebecca Newman) 연구원과 빅토리아 대학(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의 일란 노이(Ilan noy) 교수의 연구성과가 <네이처(Nature)>에 게재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의 여파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총 2조 8,000억 달러(약 3,769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20년 동안 한 시간마다 약 1,600만 달러(약 217억 원)가 증발한 셈이다. 연간 피해 규모는 2000년 600억 달러(약 81조 원)에서 2022년 2,800억 달러(약 377조 원)로 20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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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전망은 더 암울해…“2050년엔 기후변화로 소득 20% 감소”
이처럼 지금까지 입은 피해 규모도 심각하지만, 미래 전망은 더 어둡다. 금융컨설팅기업 올리버와이만(Oliver Wyman)과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지난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누적 기준 세계 인구 중 1,450만 명이 사망하고 12조 5,000억 달러(약 1경 6,818조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예측은 205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5~2.9도 상승할 것으로 가정한 상황에서 작성됐는데, 이에 앞서 유엔환경계획(UNEP,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은 극적인 조치 없이는 205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5도 이상 상승할 확률이 66%에 달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Emission Gap Report, 2023).
지난 4월에는 지금까지 배출된 온실가스의 영향만으로도 2049년까지 전 세계 소득이 평균 19%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레오니 웬츠(Leonie Wenz) 박사팀은 앞으로 25년간 세계 소득이 연평균 38조 달러(약 5경 2,190조 원)씩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심지어 이는 보수적으로 계산한 수치다. 극심한 기상이변과 생물다양성 손실 등을 가정하면 같은 기간 세계 소득의 연평균 손실 폭이 최대 59조 달러(약 8경 2,600조 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소득이 3분의 1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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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생필품, 원자재 가격 급등…현실이 된 ‘기후플레이션’
기후변화로 우리 지갑에서 돈이 새고 있다는 것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무언가를 살 때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식량, 에너지 등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제품들까지 가격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묶어 만든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엘니뇨(El Niño)로 최근 초콜릿, 쌀 등 주요 식품의 가격이 급등한 것이 기후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엘니뇨: 열대 태평양의 지표수가 방향을 바꾸고 가열될 때 몇 년마다 발생하는 기상 현상.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약 0.5도 상승해 지구 전체 기온을 약 0.2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콜릿의 원재료 코코아의 경우 가나,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등 주요 생산국이 모여 있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잦은 이상기후로 지난해 카카오나무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아 수확량이 급감했다. 여기 더해 앞으로의 공급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가격이 치솟아, 지난 10년간 가장 비쌀 때도 톤당 3,000달러(약 404만 원) 수준에 머물던 코코아 가격은 올해 4월과 6월 두 차례나 톤당 1만 달러(약 1,346만 원)를 넘겼다. 국제 쌀 가격도 엘니뇨의 영향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급등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쌀 가격지수(FAO All Rice Price Index)는 전년(108.8p) 대비 약 21% 증가한 132.0p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5월까지 130~140p 사이에 머물고 있다.
가뭄으로 강과 운하 등의 수위가 낮아지면, 수로를 이용한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며 물류비가 올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전 세계 물동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파나마 운하가 지난해 가뭄에 따른 수량 부족으로 통행 선박 수를 제한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일조하기도 했다.
첨단 산업과 미래 에너지 분야에 쓰이는 핵심광물의 가격도 기후플레이션에서 자유롭지 않다. 글로벌 회계기업 PwC가 지난 5월 발표한 ‘9가지 주요 원자재에 대한 기후 위험(Climate Risks to Nine Key Commodities)’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주요 핵심광물 중 코발트, 구리, 리튬의 생산이 극심한 가뭄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 가지 핵심광물 모두 생산량 중 대부분이 호주, 콩고민주공화국, 칠레, 페루 등 특정 국가에서 생산되는데, 이들 국가 모두 *물 스트레스가 높은 지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PwC는 “코발트와 리튬 생산량 중 74%, 구리 생산량 중 54%가 생산 중단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맥킨지(McKinsey) 역시 ‘기후위기와 탈탄소화(Climate Risk & Decarbonization)’ 보고서에서 “구리, 금, 철, 아연 생산량 중 30~50%가 물 스트레스에 취약한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채굴 과정에서 물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 스트레스: 가용 담수 자원 대비 담수 취수량. 수요와 공급의 격차가 적을수록 물 스트레스에 취약한 국가 또는 지역으로 분류하며, 가뭄에 취약하다고 평가한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발간한 ‘기후변화가 미국 가계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Climate Change on American Household Finances)’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가 앞으로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꿔 갈지 미리 살펴볼 수 있다. 잦은 이상기후로 주요 기업의 사업장이 문을 닫으면서 노동자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악천후로 휴교가 늘면서 가정의 보육 부담은 커질 것이다. 각종 보험료가 인상되고 생필품의 가격이 올라 가계 지출이 늘면서 실질 소득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늘수록 기존 취약계층이 겪는 불평등은 가중돼 점점 더 곤경에 처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후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주머니 속 지갑의 안위를 위해, 이제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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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우리의 처지는 발밑의 얼음이 점점 녹아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북극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기후변화가 지금 여기 우리 일상에도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스페인에서 발생한 가뭄으로 올리브유 가격이 폭등해, 치킨 한 마리 가격은 2만 원을 넘어 3만 원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 전엔 미국을 덮친 한파의 영향으로 부품을 제때 받지 못 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공장이 가동을 멈춰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알고 보면 경제위기다. 손을 놓고 있다간 먹고살 일부터 걱정해야 할 날이 조만간 다가온다는 뜻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상기후로 내 지갑에 들어와야 할 돈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지금처럼 계속 뒷짐만 지고 서 있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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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 도대체 얼마일까?
일단 내 지갑에 들어와야 할 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줄어든 건지부터 살펴보자.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를 가장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실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금액을 확인하는 것이다.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 리(Swiss Re)에 따르면, 지난해 자연재해 피해보상을 위해 각국의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 액수는 1,080억 달러(약 149조 원)로, 직전 10년(2013~2022년) 평균치인 890억 달러(약 123조 원)를 크게 웃돌았다. 최근 들어 이상기후로 자연재해가 빈발해진 탓이다.
발생한 모든 피해에 보험금이 지급되진 않는다. 다시 말해 실제 피해 규모는 보상금액보다 훨씬 더 크다. 독일의 재보험사 뮤닉 리(Munich Re)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국토 전역을 휩쓴 대형 허리케인들을 비롯해 폭우, 강풍, 우박 등으로 500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여기 더해 이탈리아에서 우박으로 80억 달러(약 10조 원), 튀르키예와 시리아 등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500억 달러(약 66조 원)의 손실이 각각 발생했다. 하지만 발생한 전체 1,080억 달러의 피해 중 보험으로 보상받은 금액은 55억 달러(약 7조 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으킨 경제적 손실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뮤닉 리가 보험 보상액을 근거로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경제적 손실 규모는 2,500억 달러(약 330조 원)에 달한다.
학계에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최근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레베카 뉴먼(Rebecca Newman) 연구원과 빅토리아 대학(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의 일란 노이(Ilan noy) 교수의 연구성과가 <네이처(Nature)>에 게재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의 여파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총 2조 8,000억 달러(약 3,769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20년 동안 한 시간마다 약 1,600만 달러(약 217억 원)가 증발한 셈이다. 연간 피해 규모는 2000년 600억 달러(약 81조 원)에서 2022년 2,800억 달러(약 377조 원)로 20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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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금까지 입은 피해 규모도 심각하지만, 미래 전망은 더 어둡다. 금융컨설팅기업 올리버와이만(Oliver Wyman)과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지난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누적 기준 세계 인구 중 1,450만 명이 사망하고 12조 5,000억 달러(약 1경 6,818조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예측은 205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5~2.9도 상승할 것으로 가정한 상황에서 작성됐는데, 이에 앞서 유엔환경계획(UNEP,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은 극적인 조치 없이는 205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5도 이상 상승할 확률이 66%에 달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Emission Gap Report, 2023).
지난 4월에는 지금까지 배출된 온실가스의 영향만으로도 2049년까지 전 세계 소득이 평균 19%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레오니 웬츠(Leonie Wenz) 박사팀은 앞으로 25년간 세계 소득이 연평균 38조 달러(약 5경 2,190조 원)씩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심지어 이는 보수적으로 계산한 수치다. 극심한 기상이변과 생물다양성 손실 등을 가정하면 같은 기간 세계 소득의 연평균 손실 폭이 최대 59조 달러(약 8경 2,600조 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소득이 3분의 1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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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생필품, 원자재 가격 급등…현실이 된 ‘기후플레이션’
기후변화로 우리 지갑에서 돈이 새고 있다는 것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무언가를 살 때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식량, 에너지 등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제품들까지 가격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묶어 만든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엘니뇨(El Niño)로 최근 초콜릿, 쌀 등 주요 식품의 가격이 급등한 것이 기후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엘니뇨: 열대 태평양의 지표수가 방향을 바꾸고 가열될 때 몇 년마다 발생하는 기상 현상.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약 0.5도 상승해 지구 전체 기온을 약 0.2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콜릿의 원재료 코코아의 경우 가나,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등 주요 생산국이 모여 있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잦은 이상기후로 지난해 카카오나무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아 수확량이 급감했다. 여기 더해 앞으로의 공급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가격이 치솟아, 지난 10년간 가장 비쌀 때도 톤당 3,000달러(약 404만 원) 수준에 머물던 코코아 가격은 올해 4월과 6월 두 차례나 톤당 1만 달러(약 1,346만 원)를 넘겼다. 국제 쌀 가격도 엘니뇨의 영향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급등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쌀 가격지수(FAO All Rice Price Index)는 전년(108.8p) 대비 약 21% 증가한 132.0p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5월까지 130~140p 사이에 머물고 있다.
가뭄으로 강과 운하 등의 수위가 낮아지면, 수로를 이용한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며 물류비가 올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전 세계 물동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파나마 운하가 지난해 가뭄에 따른 수량 부족으로 통행 선박 수를 제한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일조하기도 했다.
첨단 산업과 미래 에너지 분야에 쓰이는 핵심광물의 가격도 기후플레이션에서 자유롭지 않다. 글로벌 회계기업 PwC가 지난 5월 발표한 ‘9가지 주요 원자재에 대한 기후 위험(Climate Risks to Nine Key Commodities)’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주요 핵심광물 중 코발트, 구리, 리튬의 생산이 극심한 가뭄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 가지 핵심광물 모두 생산량 중 대부분이 호주, 콩고민주공화국, 칠레, 페루 등 특정 국가에서 생산되는데, 이들 국가 모두 *물 스트레스가 높은 지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PwC는 “코발트와 리튬 생산량 중 74%, 구리 생산량 중 54%가 생산 중단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맥킨지(McKinsey) 역시 ‘기후위기와 탈탄소화(Climate Risk & Decarbonization)’ 보고서에서 “구리, 금, 철, 아연 생산량 중 30~50%가 물 스트레스에 취약한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채굴 과정에서 물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 스트레스: 가용 담수 자원 대비 담수 취수량. 수요와 공급의 격차가 적을수록 물 스트레스에 취약한 국가 또는 지역으로 분류하며, 가뭄에 취약하다고 평가한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발간한 ‘기후변화가 미국 가계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Climate Change on American Household Finances)’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가 앞으로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꿔 갈지 미리 살펴볼 수 있다. 잦은 이상기후로 주요 기업의 사업장이 문을 닫으면서 노동자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악천후로 휴교가 늘면서 가정의 보육 부담은 커질 것이다. 각종 보험료가 인상되고 생필품의 가격이 올라 가계 지출이 늘면서 실질 소득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늘수록 기존 취약계층이 겪는 불평등은 가중돼 점점 더 곤경에 처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후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주머니 속 지갑의 안위를 위해, 이제 행동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