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LA에서 하와이까지 횡단하는 요트 대회에 참가하고 있던 찰스 무어는 평생 잊을 수 없을 일을 경험한다. 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름길로 항해하던 중 갑자기 거짓말처럼 바람이 멈췄고,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바다에서 엄청난 크기의 섬이 나타난 것. 지도 어디에도 없던 이 거대한 섬은 그 존재만으로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건, 이제껏 본 적 없는 섬의 끔찍한 형체였다.
우리가 무심코 쓴 플라스틱이 모여 아주 큰 나라가 됐다는 사실 (출처: 엠빅뉴스 유튜브 채널)
이는, 쓰레기섬이라 불리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가 최초로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인간이 바다에 배출한 온갖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떠돌다 북태평양에 모여 섬을 이룬 것인데, 그 면적이 한반도 면적의 7배에 이르고, 무게는 8만 톤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태평양관광기구, 2020).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제 인간이 섣불리 없앨 수도 없는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신대륙 발견만큼이나 놀라운 쓰레기섬의 발견 소식은 세계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거나, 몸이 상한 동물들이 많아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향한 걱정과 죄책감은 더욱 커졌다. 이렇게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걱정이 켜켜이 쌓여갈 때쯤 사람들은 마법 같은 존재에 주목했다. 바로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분해되고 사라지는, 착한 플라스틱

생분해 플라스틱은 미생물에 의해 수개월 내지 수년 이내에 완전히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말한다. 썩지 않는 일반 석유계 플라스틱과 달리, 버렸을 때 흙이나 물에 있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물과 이산화탄소로 변환된다.
플라스틱의 간편함을 유지하면서도, 버렸을 때 자연스레 분해돼 사라진다니! 일회용품을 쓰면서 찜찜했던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일회용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길든 사람들은 일반 플라스틱을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교체만 하면 된다는 희망에 젖었고, 생분해 플라스틱을 곳곳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생분해 플라스틱은 수지 원료부터 티백, 빨대, 비닐봉지, 칫솔, 마스크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으로까지 다양하게 적용, 생산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9월 말 기준으로 생분해성 수지 인증을 받은 제품은 1,410개(생분해성 수지 원료 73개, 식품용기 및 기구 692개, 생분해성 봉투 539개, 농업용 필름 25개, 기타 81개)에 이른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늘자, 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0년 104억 6,200만 달러에서 연평균 21.7%로 급격히 성장해 2025년에는 279억 69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는 2025년 2억 9,43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과학기술정보협의회(ASTI), 마켓 인사이트, 2021)
*바이오 플라스틱: 석유 대신 식물이나 다른 생물학적 물질로 만들어진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과 미생물에 의해 완전히 분해되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포함하는 개념.
생분해의 어두운 진실
하지만 생분해 플라스틱이 많은 이들의 기대처럼 친환경이 되려면 더 검증하고, 다듬어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 생분해 플라스틱에 맞는 제도와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본래의 목적대로 분해될 수가 없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 분류 체계에서 기타(other)로 분류돼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데, 이렇게 버려지는 쓰레기의 52%가 소각된다.(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환경부), 2017) 게다가 정부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매립보다 소각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매립돼야만 분해되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다른 폐기물처럼 타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지만 그냥 소각? (출처: 뉴스;트리 KOREA 유튜브 채널)
어쩌다 매립된다고 해도 생분해 플라스틱을 그냥 자연 상태의 흙에 묻으면 분해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개발, 상용화된 생분해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일정 조건에서만 자연 분해된다. 따라서 생분해 플라스틱이 분해될 수 있는 매립 시설이 갖춰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분해 플라스틱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수량이 늘면 오히려 분리수거를 방해한다는 우려도 생겼다. 생분해 플라스틱과 일반 플라스틱은 외관상 구분이 어려워 두 종류의 플라스틱이 섞여 배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만약 두 플라스틱이 마구 섞여 배출된다면 플라스틱 재활용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다 오히려 플라스틱 재활용까지 막는 셈이다.
법의 사각지대 놓인 생분해 플라스틱
이처럼 생분해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는 데 비해, 인프라가 미비한 상황이 이어지자, 생분해 플라스틱의 법의 사각지대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1회용품 사용에 관한 규정은 자원재활용법(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1회용품이란 같은 용도에 한 번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며, 대부분의 시설 또는 업종에서 그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 이는 생분해 플라스틱이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분해 플라스틱은 돈을 지불해야 받을 수 있는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일부 기업은 마치 생분해 플라스틱은 제한 없이 마음껏 사용해도 되는 것처럼 과장 홍보하기도 했다. 생분해 제품도 사용을 억제해야 하는 대상인 점은 동일한데, 생분해 제품을 도입하며 마치 친환경인 척 그린워싱을 한 것이다.
또한 생분해 플라스틱은 현행법상 폐기물 부담금 제외 대상이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배출해도 기업은 돈을 내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도 다른 폐기물과 다름없이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해도 쓰레기, 저렇게 해도 쓰레기
현재 사용되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친환경 소재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자연 분해되어도 그 자체로 쓰레기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 폐기물이 되는 순간, 자연에 부담을 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생분해 플라스틱의 생산 과정에서도 환경적 부담은 발생한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사탕수수, 옥수수와 같은 작물로 만들어진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일반 플라스틱을 생분해 플라스틱이 포함된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모두 대체하려면 전 세계 경작지의 5%를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즉, 바이오 플라스틱이 많이 만들어질수록 빈곤 국가의 식량난이 가중되고, 식량 가격이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또 대규모 농업에서 발생하는 농약과 비료로 인한 환경오염 등은 그대로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생분해 플라스틱 분해 과정에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메탄가스가 발생하고, 분해가 된 후에는 미세플라스틱이나 독성 잔류물이 남을 수 있다. 일례로, 석유계 플라스틱에 촉매를 넣어 만든 산화계 플라스틱은 햇빛에 노출되면 작게 분해되어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분류되었으나,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유럽을 중심으로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다.
지금의 최선은 적게 쓰고, 여러 번 쓰는 것
당장 일반 석유계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가 없다는 점에서 생분해 플라스틱은 분명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소재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런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고, 생산과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환경오염까지 막는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지 못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사용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생분해 플라스틱을 제대로 만들고, 적합하게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다소 늦긴 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2020년 ‘화이트 바이오 산업 활성화 전략’을 공개하며 바이오 플라스틱에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고 관련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기업은 환경오염 걱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생분해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친환경으로 성숙할 때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우리의 실천뿐이다. 설사 생분해 플라스틱이 친환경으로 온전히 자리 잡는다 해도, 폐기물 발생이라는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다. 어떠한 기술이 개발된다 한들, 환경 문제를 한방에 정리해주는 마법은 없다. 따라서 친환경의 기본 원칙인, 1회용품은 적게 쓰고, 다회용품은 최대한 여러 번 쓰는 것. 이 불편하고 번거로운 원칙이야말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완전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