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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코미디인 줄 알았지? 현실과 똑 닮은 극사실주의 영화 <돈 룩 업>

재난 상황을 블랙 코미디로 표현한 비현실적인 영화? 혜성 충돌 위기를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 <돈 룩 업>은 사실 지구의 기후변화를 다룬 지독히 현실적인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본 생각. ‘지구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 <돈 룩 업>은 지구로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자들이 충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장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급한 상황에 다급한 주인공들과 달리 세상은 왜 이렇게 관심이 없는 건지. 역사상 최악의 지구 위기를 방관하는 영화 속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나다가도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진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상황인데?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구 멸망 D-180, 인류는 이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돈 룩 업> 공식 예고편(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밤에 홀로 천체를 연구하던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태양계를 돌고 있던 혜성이 지구 충돌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이에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정부에 이 사실을 전하지만,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다가올 대선에 신경 쓰느라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에는 관심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직접 알리자!’는 생각으로 언론 투어에 나선 두 사람. 어렵게 출연한 인기 TV 쇼에서 이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혜성이 얼마나 큰가요? 제 전처의 집을 박살 낼 수도 있나요?’라는 진행자의 우스갯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심지어 한 빅테크 기업가는 혜성에 30조 달러 가치의 광물이 매장돼 있으니 분해해 활용하자는 의견을 정부에 제안해 혜성 궤도 수정의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6개월. 24시간 내내 새로운 뉴스와 정보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로 어떤 소식이든 접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혜성에 관한 이야기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더 늦기 전에 혜성 궤도를 바꿔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혜성 충돌=기후변화’로 치환하면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

영화 <돈 룩 업> 포스터(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돈 룩 업>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다. 시종일관 혜성 충돌에 관해 다루고 있지만, 사실 <돈 룩 업>은 기후변화를 풍자한 작품이기 때문. 감독 애덤 매케이는 <2050 거주 불능 지구>라는 책에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접한 후 이 이야기를 반드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써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영화의 메시지에 더욱 주목하게 하려면 폭소가 터질 정도의 황당한 은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혜성 충돌로 소재를 전환한 후 블랙 코미디로 표현했다고.

위기 상황을 아무리 강조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영화 속 사람들. 기후 위기에 놓인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죄송한데, 우리 이야기가 어렵나요? 지구 전체가 곧 파괴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요. 지구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미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혜성 충돌의 위급한 상황을 호소한 케이트의 대사는 기후변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후과학자들이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하지 않으면 지구 환경을 돌이킬 수 없다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오염보다 개발, 그리고 안락한 생활이 더 관심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혜성 궤도와 충돌 시기를 계산하며 대응책을 고심하는 랜들 민디 박사(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영화에서도 혜성 충돌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재앙이 아니다. 6개월 이상 혜성 궤도를 수정할 여지가 있었지만, 힘 있는 사람들과 대중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한날한시에 지구 멸망을 맞이하게 된다. 혜성 충돌을 기후변화로 치환하면 이 영화는 포스터에 적힌 대로 실화에 가까워진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묵인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하지 않은 결과, 지구는 폭염, 한파, 대형 산불, 물 부족, 긴 장마 등의 이상 기후로 그 대가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다.

심각한 알프스 빙하 상황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출처: YTN 유튜브 채널)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구촌 곳곳은 유례없는 이상 고온을 겪고 있다. 올 여름, 영국과 프랑스는 기온이 40℃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했고, 인도는 이미 4월부터 50℃에 육박하는 때이른 폭염이 시작됐다.

 

지난 7월, 스위스 알프스산맥 최대 규모 빙하인 모테라치 빙하의 양을 분석한 결과, 하루에 5cm씩 경계선이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올해 6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 온도 상승이 계속된다면 알프스의 빙하 80%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해결책을 알고 있다

혜성 충돌 D-1.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인공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돈 룩 업> 속 사람들은 혜성 충돌을 걷잡을 수 없는 시점에 와서야 다급하게 방법을 찾아 나선다. 가진 자들은 우주 비행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혜성을 바라본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무섭게 쏟아지는 혜성의 잔재 속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최후의 밤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을 보는 순간,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경각심이 일깨워진다.

영화 속 현실 풍자 요소와 결말의 의미를 해석해주는 <돈 룩 업> 스페셜 코멘터리 영상.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돈 룩 업> 스페셜 코멘터리 영상을 보면 영화 속 풍자와 결말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실제로 범세계적인 차원의 환경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을 결심했다고. 그는 10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영화와 같은 결말을 맞을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랜들 민디 박사와 케이트가 그랬듯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에 대응할 해결책을 알고 있다. 친환경 제품 사용하기, 에너지 소비량 줄이기 등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세계 각국이 환경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물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정책 중 에너지 정책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온실가스의 90%가 에너지 부문에서 배출되기 때문. 탄소중립에 다가가려면 화석연료 에너지를 무탄소 에너지로 전환하고, 그린 수소 등의 대체 에너지원 개발, 빅데이터를 활용한 에너지 수요 관리 등 신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많이 진행됐지만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 모두 힘을 합쳐 궤도 수정 없이 계획대로만 실천한다면 뜨겁게 달궈진 지구를 조금씩 식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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