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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보다 중요한 건 시스템… 주목받는 ‘컴퓨트 인프라’ 산업

반도체 ‘칩’의 성능 경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AI 시대의 승부처는 점차 데이터센터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운영하는 ‘컴퓨트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 전력, 냉각, 네트워크, 운영 역량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이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 SK에코플랜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짚어본다.

(출처: 셔터스톡)

전승민

과학기술분야 전문 기자 및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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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2021년 11월 ‘GPU 테크놀로지 컨퍼런스(GTC)’에서 “데이터센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The Data Center is the Computer)”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다. 챗GPT(ChatGPT)를 비롯한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학습하고 구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하고, 그 자원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통합·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AI 경쟁의 무대는 점점 반도체 ‘칩’ 단위에서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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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트’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

컴퓨트(Compute)는 본래 ‘계산하다’라는 뜻의 동사다. 컴퓨터(Computer) 역시 문자 그대로는 ‘계산 장치’를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단어는 새로운 쓰임을 얻었다. ‘컴퓨트 파워(Compute Power)’, ‘컴퓨트 노드(Compute Node)’처럼 명사 앞에 붙어, 일종의 형용사처럼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기존의 컴퓨터나 서버의 전산처리능력을 의미하는 ‘컴퓨팅 파워(Computing Power)’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뉘앙스는 다르다. ‘컴퓨트 파워’는 주로 원격에서 제공되는 연산 자원, 즉 외부 데이터센터 기반 컴퓨팅 환경을 전제로 사용된다. 구글이 클라우드 서비스에 ‘컴퓨트 엔진(Compute Engine)’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고, 삼성SSD가 ‘컴퓨트’라는 이름의 가상 공간 데이터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 역시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는 컴퓨터를 소유하는 기계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자원으로 인식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더 빠른 CPU(Central Processing Unit)와 GPU(Graphics Processing Unit)를 만드는 것이 성능 경쟁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LLM처럼 막대한 자원을 요구하는 AI를 활용하려면, 외부 원격 자원인 컴퓨트 자원을 끌어다 쓰는 구조가 전제가 된다. 성능의 정의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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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발목이 잡히는가’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대의 시스템을 하나의 컴퓨터처럼 묶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칩의 성능 향상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칩이 아무리 빨라도 데이터 전송이 지연되거나,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거나 발생하는 열을 제때 식히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은 병목에 걸릴 수밖에 없다.

최근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GPU ‘블랙웰(Blackwell)’이 주목받는 과정에서도, 개별 칩보다 72개의 GPU를 하나로 묶은 랙 단위 시스템 ‘NVL72’가 더 큰 관심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경쟁의 초점은 얼마나 빠른 칩인가보다, 얼마나 유기적으로 시스템을 구성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와 SK텔레콤이 지난 8월 울산광역시에서 AWS(아마존 웹 서비스), 울산광역시와 함께 AI 데이터센터인 ‘SK AI데이터센터 울산’의 기공식을 개최했다.

현대 AI 인프라는 냉각, 전력, 네트워크가 동시에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 전압을 높이면 열이 늘고, 열을 식히기 위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지며, 이는 다시 배선·변압기 증설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전체 효율은 떨어진다. 결국 이 상관관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운영하느냐가 AI 성능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여기에 전력 확보라는 또 하나의 현실적인 제약이 더해진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생성형 AI로 이미지 하나를 만들 때 스마트폰 한 대를 완충할 만큼의 에너지가 든다는 분석도 있다. 골드만삭스가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16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 이유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변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속도는 AI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 대안으로 연료전지 발전이 주목받는 배경도 분명하다. 연료전지는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에 맞춰 빠르게 설치할 수 있다. SK에코플랜트가 2022년 강원 동해시에 건설한 ‘북평레포츠센터 연료전지 발전소’는 약 1년 만에 준공됐다. 또한, 전력 효율이 높으며 도심에서도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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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부상하는 ‘컴퓨트 인프라’ 산업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산업 영역을 만들어 내고 있다. AI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센터 운영은 이제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적하는 수준의 기술적 노하우를 요구받는다. 반도체 제조시설 팹(Fab)이 나노미터 단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정적(Static) 제조 공간이라면, AI 데이터센터는 수 기가와트의 전력이 흐르고 수십 톤의 냉각수가 순환하며, 초 단위로 변하는 워크로드를 처리해야 하는 동적(Dynamic) 운영 공간이다.

AI 학습은 한번 시작되면 수 주, 길게는 수 개월간 중단 없이 진행돼야 한다. 전력이나 냉각 문제로 시스템이 멈추는 순간, 수천억 원대 프로젝트가 흔들릴 수 있다.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OT)이 팹의 공정 관리 기술만큼이나 고도화되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변화 속도는 인프라 쪽이 훨씬 빠르다. 반도체 공정이 2~3년 주기로 진화하는 반면, AI 모델과 그에 따른 시스템 요구 사항은 반년 단위로 바뀐다. 유연하고 확장 가능한 모듈형(Modular & Scalable) 인프라 설계 역량이 필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산업 개념으로 ‘컴퓨트 인프라(Compute Infrastructure)’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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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에 열리는 기회

컴퓨트 인프라는 단일 기술이 아닌 종합 산업이다. 입지 선정과 건설 역량에서 시작해, 전력 공급, 설계∙조달∙시공(EPC), 특수 구조 설계, 기계∙전기∙배관(MEP) 기술, 운영·유지보수(O&M), 그리고 노후 IT 자산의 안전한 폐기와 재활용을 위한 IT자산처분(ITAD, IT Asset Disposition) 역량까지 요구된다.

한국은 ICT(정보통신기술), 에너지, 화학, 건설 분야에서 이미 탄탄한 산업 기반을 갖춘 국가다. 컴퓨트 인프라 산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비교적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모습.

이 가운데 SK에코플랜트는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다수의 요소를 수직적으로 결합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팹,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 역량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인 부평 데이터센터 개발사업과 AI 데이터센터인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사업에 참여 중이다.

독보적인 연료전지 기반의 전력 공급도 가능하다. 연료전지를 통해 대규모 전력망이 확보되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전원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데, 실제로 2023년 싱가포르 GDS 데이터센터에 전력 공급용 연료전지를 구축한 바 있다.

여기에 흡수식 냉동기 원리를 이용한 냉수 생산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전력을 생산하며 연료전지에서 발생한 열을 회수해 흡수식 냉동 장치를 거쳐 차가운 물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이를 활용한다면 냉각을 위한 막대한 전력 소비 없이 냉각 자원 확보가 가능하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SK테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ITAD 시설 전경.

빠질 수 없는 요소가 ITAD 역량이다. AI 서버는 3~5년 주기로 교체되며, 그 안에는 희소금속과 민감한 데이터가 동시에 담겨 있다. 안전한 파기와 자원 회수 없이는 지속 가능한 컴퓨트 인프라를 논하기 어렵다. 자회사 SK테스는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사업장을 운영 중인데,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에 ITAD 공장을 구축하며 글로벌 빅테크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컴퓨트 인프라는 더 이상 ‘건물’을 짓는 산업이 아니다. 이제 데이터센터는 거대한 컴퓨터의 ‘케이스(Case)’가 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전력·열·네트워크·운영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반도체 ‘칩’의 성능만으로 경쟁력을 논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시스템 전반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곧 컴퓨트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이 지점에서 SK에코플랜트의 역할은 뚜렷하다. 전력 공급과 열 관리, 데이터센터 EPC와 운영, 서버 장비의 자원순환까지 이어지는 통합적 포트폴리오는 컴퓨트 인프라가 요구하는 복합 조건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칩을 넘어서, 그 칩이 작동하는 환경 전체를 책임지는 기업. AI 시대의 컴퓨트 경쟁은 결국 인프라의 완성도로 귀결되며, 그 무대에서 SK에코플랜트의 가능성은 가히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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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 대중서를 15권 이상 발간했다. 현재는 과학기술분야 전문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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