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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반도체 소재 기술

작은 물질 하나가 반도체 산업 전체를 멈추게 할 수 있다. 포토레지스트와 식각 가스 같은 첨단 소재가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이유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공급망 안정성 확보이며, SK에코플랜트는 자회사 편입을 통해 이 과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화학 산업 위기론 속에서 부상하는 정밀화학의 가능성과, SK에코플랜트가 만들어갈 반도체 소재 생태계를 살펴본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화학 산업 위기론과 그 배경

최근 언론에서는 한국 화학 산업의 위기론을 자주 다룬다. 하지만 이 흐름은 사실 십여 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기초 유분(석유를 가공해 얻는 화학 원료)이라 불리는 화학 물질의 생산 경쟁은 결국 물량 싸움인데, 막대한 설비를 갖춘 중국 업체와 석유를 대량 보유한 중동 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다. 기초 유분을 만드는 산업의 구조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문제였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최근 제기되는 화학 산업 위기론은 어쩌면 이제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실 ‘기초 유분’이나 ‘기초 석유화학 제품’이 무엇인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외로 이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점차 주목받고 있다. 플라스틱, 섬유 등 화학 산업 전반을 포함하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화학 제품은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한국의 3대 수출 품목이었다. 결국 한국 경제는 화학 산업이라는 토대 위에서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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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는 다른 길, 정밀화학의 가능성

그런데 흥미롭게도 화학 산업 위기론과는 정반대로 미래 성장 가능성이 더욱 높게 평가되는 분야도 있다. 바로 정밀화학, 그 중에서도 다른 제품을 가공하는 데 쓰이는 화학 물질을 만드는 산업이다. 특히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같은 물질을 생산하는 산업은 단순히 경쟁할 만한 수준을 넘어 이제는 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화학 산업은 크게 석유화학과 정밀화학으로 구분된다. 석유화학은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를 가공해 플라스틱 같은 기초 제품을 만드는 분야로, 대표적인 생산물이 에틸렌이다. 에틸렌은 비닐봉지 같은 일상 용품의 원료로 쓰일 뿐 아니라 다른 화학 반응을 통해 플라스틱과 합성섬유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한 나라의 화학 산업 규모는 종종 에틸렌 생산량으로 평가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에틸렌 생산 용량은 연간 약 1,280만 톤으로 세계 4위 수준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이만큼의 생산력을 갖췄다는 점은 놀라운 성취다. 하지만 최근 거론되는 ‘위기’란 이처럼 한때 경이로웠던 석유화학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밀화학은 석유화학이 생산한 기초 물질을 원료 삼아 새로운 기능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산업이다. 소비재 관점에서 보면 비누, 샴푸, 화장품 원료도 정밀화학의 범주에 속한다. 이름과는 다르게 정밀화학이라고 해서 항상 무엇인가 더 정밀하고 더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소규모 설비와 참신한 아이디어만으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는 해도 정밀화학의 꽃은 결국, 깊은 연구 끝에 탄생한 다른 업체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첨단 기능성 소재다. 이런 물질은 국제 시세에 따라 가격이 좌우되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품질만 확보된다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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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레지스트, 반도체 공정의 보이지 않는 열쇠

대표적인 사례가 포토레지스트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만 쓰이는 특수 물질이다. 반도체 제조의 포토 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질로, 반도체 기판 위에 얇게 한 겹 바르는 것이 전부지만 그 품질은 반도체 생산의 성패를 좌우한다. 비유하자면, 포토레지스트는 스프레이 페인트 작업에서 글자 모양 판(스텐실)의 역할을 한다. 원하는 회로 모양대로 빛에 반응해 패턴을 형성하고, 이후 식각 공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보호해줘야 한다. 반도체 회로는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 분의 1에 불과한 미세 단위로 새겨져야 하므로 포토레지스트는 빛에 정밀하게 반응해 미세 패턴을 선명하게 구현해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 기판 위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작은 거품 하나, 미세한 결함 하나만 발생해도 불량품이 나오기 때문에 우수한 포토레지스트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빛을 이용하여 반도체에 회로를 그리는 포토리소그래피 기법 (출처: YTN사이언스 공식 유튜브 채널)

이처럼 복잡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포토레지스트 개발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2019년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잠시 무역 분쟁의 기류가 흘렀던 일 때문에 포토레지스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반도체는 한국의 주력 산업으로 제1의 수출품인데 반도체를 정밀하게 잘 만들 수 있는 공장을 한국에서 아무리 잘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 공장을 운영하는 중간 과정에서 필요한 포토레지스트를 일본에서 판매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첨단 화학 기술을 갖춘 일본 업체들이 협조해 주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한국 반도체 공장은 놀게 되고 반도체 산업이 큰 침체를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생길 정도였다.

이렇듯 한국은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당시 큰 위기를 경험했다. 반도체는 한국의 대표 수출 산업이지만 그 핵심 소재를 일본이 공급하지 않으면 공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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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의 부상과 국산화 노력

이 사건을 계기로 대중에게 각인된 단어가 바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다. 소재, 부품, 장비의 앞 글자를 딴 말인데 한국 제조업에서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영역이면서 동시에 일본 산업에 많이 매달리고 있던 분야를 일컫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완제품 조립과 설계에는 강점을 가졌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 그리고 이를 가공하는 장비는 일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포토레지스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례였다. 공정 과정에서 사용되지만 최종 제품에는 남지 않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업 전체에서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물질이었다.

꾸준하고도 폭넓은 화학 기술의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은 이런 ‘보이지 않는 기술’을 축적해왔고, 이것이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끌어 올렸던 저력이기도 했다. 다행히 2019년의 소동 이후 한국에서도 이러한 영역을 반드시 국내에서 개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국산화에 나섰고, 일부 분야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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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협력, 그리고 SK에코플랜트

화학 산업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공급망 안정성과 첨단 소재 역량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기술 난이도 상승으로 인해 주요 소재의 확보와 내재화에 막대한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일본의 포토레지스트 사례처럼 특정 국가 의존이 드러난 이후, 미국·EU·일본 모두 자국 내 소재 기술 육성과 투자 확대를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SK트리켐의 프리커서 생산 공정, SK레조낙의 식각 가스 생산 설비,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의 제품 분석실,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의 블루 도판트 연구실.

SK에코플랜트 역시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읽고, 최근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을 새롭게 편입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반도체 핵심 소재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 중 SK레조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식각 가스를 합성 기반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 기업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SK에코플랜트가 소재 기업 편입을 추진하는 것은 반도체 종합 서비스 포트폴리오 안에서 핵심 소재의 안정적 확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전략적 행보로 볼 수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재 기술을 내재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룹 내 반도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한다면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SK에코플랜트가 만들어갈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와 한국 소재 산업의 도약을 기대해 본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인간적으로〉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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