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 반도체 패턴 조각의 핵심 ‘식각가스’
수많은 전기 회로가 정밀하게 새겨지는 반도체 생성과정의 중심에는 ‘식각’이라는 공정이 있다. 말그대로 조각하듯이 반도체를 미세 가공한다는 의미다. 최근 SK에코플랜트가 식각 공정의 핵심 소재 전문기업 SK레조낙을 자회사로 편입 추진하며 반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한층 더 강화해 나가고 있다. 식각이란 무엇인지, 식각 공정이 반도체 제조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정인성
IT 전문 저술가
반도체 제조 공정과 정밀한 조각술 ‘식각’
첨단 반도체 안에는 수십억 개의 작은 전자 부품과 미세한 금속배선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회로를 구성하는 부품인 각 소자의 크기는 수십 나노미터 수준으로 매우 미세하며, 총 길이가 4,000km가 넘는 금속배선으로 오밀조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고작 가로 1~2cm 정도 되는 작은 공간 안에, 심지어 여러 층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이와 같이 미세한 소자와 배선을 인간이나 기계가 일일이 배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반도체를 한 층씩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과정은 크게 보면 *웨이퍼(Wafer) 위에 빛과 *포토마스크(Photomask),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감광액)라는 재료를 이용해 제거해야 할 부위와 남길 부위를 그려주는 노광(露光, Exposure), 노광으로 새겨진 모양대로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식각(蝕刻, Etching), 제거된 부위에 원하는 물질을 추가하는 증착(蒸着, Deposition) 총 3단계로 구성되며 각 공정 사이에 세척 등의 공정이 추가된다. 반도체 회사들은 이 과정을 반복하여 여러 층의 금속배선층을 가진 첨단 반도체를 제조한다. 이 세 가지 공정 중 오늘 알아볼 공정은 식각이다.
*웨이퍼: 실리콘 등을 얇게 썬 원판으로, 반도체는 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포토마스크: 반도체의 미세회로가 형상화된 유리기판.
*포토레지스트: 빛을 받으면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액체의 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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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교하게, 식각 기술이 진화하는 이유
앞서 간략히 살펴보았듯, 식각은 반도체 표면의 물질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노광 공정이 끝나면, 반도체 표면은 글자 마킹판이 씌워진 간판과 비슷한 모습이 된다. 물질을 제거해야 할 부위는 드러나고, 물질이 남아있어야 하는 부위는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 반도체 전체에 반응성 액체나 기체(가스)를 뿌려주면, 드러난 부위의 물질만 제거된다. 물질이 선택적으로 제거되고 나면, 비로소 증착 공정을 통해 소자 구성물질이나, 금속배선 등 필요한 물질을 반도체 표면에 도포할 수 있게 된다.

위 설명만 들어 보면 식각은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굉장히 간단한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공정이다. 제거해야 하는 물질의 종류도 다양하며, 식각 깊이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미세화 초기에는 ‘습식(wet) 식각’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노광 처리된 웨이퍼를 제거하고자 하는 물질과의 반응성이 높은 액체에 담가 제거하는 방법인데, 액체가 웨이퍼 표면과 직접 만나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미세한 패턴을 식각 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액체는 특정한 방향성을 띄지 않기 때문에, 감광액 아랫부분까지 식각이 일어나는 ‘언더컷(undercut)’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식각을 깊게 할 수도 없다. 식각을 깊게 하기 위해서는 웨이퍼를 오랫동안 액체에 담가 두어야 하는데, 이 경우 언더컷 현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사탕 한 개에 구멍을 뚫기 위해, 포장지에 작은 구멍을 뚫고 물에 담그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구멍 근처의 사탕만 녹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탕 전부 물에 녹아 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반도체 공정에서의 세밀한 작업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식각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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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식각, 해답은 ‘기체’에 있다.

그래서 등장한 기술이 기체를 사용하는 ‘건식(dry) 식각’이다. 기체는 액체와 달리 반응 시간 조절도 쉽고, 입자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거나 물체가 전기를 갖도록 함으로써 방향을 조절하기도 쉽다. 덕분에 언더컷 현상도 액체에 비해서 적어, 더욱 미세한 패턴도 식각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체의 조성과 식각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할 경우 언더컷 현상을 최소화하면서도 깊은 구멍을 형성할 수 있다.
건식 식각의 중요성은 최근 더욱 커지고 있다. 식각을 통해 반도체 미세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력 반도체 제품은 *D램과 *낸드 플래시라는 두 반도체인데, 두 제품 모두 식각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D램의 경우, 미세화가 진행되자 단위 데이터 저장소인 *커패시터(Capacitor)의 부피 감소로 인해 전하 저장 용량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커패시터의 전하가 너무 적어지면 D램 회로가 저장된 데이터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반도체 회사들은 커패시터를 더 높게 제조함으로써 전하 저장 용량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는 기존보다 더욱 깊게 식각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즉, 커패시터를 컵이라고 보면 미세화는 컵의 아랫면의 넓이를 줄이는 과정이다. 이 상황에서 컵의 부피를 유지하려면 컵의 높이를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경우, 소자를 10나노미터급으로 미세화하자 수명이 지나치게 짧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반도체 회사들은 크기 소자의 축소를 포기하고, 마치 일반 주택을 아파트로 바꾸듯 3차원 방향으로 쌓는 방식으로 밀도를 높여 가기로 하였다.
*D램(DRAM): 동적 메모리, 용량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컴퓨터의 주력 메모리로 사용되는 램이다. D램은 전원 차단 시 저장된 데이터가 소멸되는 휘발성 메모리의 성격을 지닌다.
*낸드 플래시(Nand Flash): 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이다. D램과는 다르게 비휘발성 메모리라는 특징이 있다.
*커패시터: 전자회로에서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장치.

3차원 낸드 플래시는 2차원 낸드 플래시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구조다. 저장 용량을 늘리기 위해 반도체의 면적을 넓히는 대신, 층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이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사는 반도체 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씌운 얇은 막인 산화막과 질화막을 수십에서 수백 겹까지 교대로 쌓은 뒤, 적층 구조에 구멍을 뚫고 식각 공정을 거쳐 그 자리에 금속과 저장소를 채워 넣는다. 이 일련의 과정이 바로 3차원 낸드 플래시의 기본 제조방식이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단계는 ‘채널 홀 식각(Channel Hole Etch)’ 공정이다. 채널 홀은 3차원 낸드 플래시에 수직으로 뚫는 깊은 구멍을 의미한다. 이 구멍은 낸드 플래시 제조 과정에서 질화막을 제거하고 단위 저장소를 채워 넣는 통로로 사용되며, 낸드 플래시 완성 이후에는 전류와 데이터가 이동하는 경로로도 활용된다. 식각이 더 깊게 가능할수록 더 많은 산화막과 질화막 층을 쌓아 올릴 수 있으며, 이는 곧 고용량 낸드 플래시 구현으로 이어진다. 3차원 낸드 플래시의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의 본질은 노광이 아니라 식각에 있다는 말도 이 때문이다. 채널 홀 외에도, 계단 형성(staircase) 공정 등 산화막과 질화막을 정밀하게 식각해야 하는 공정은 3D 낸드 플래시 제조 전반에 걸쳐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처럼 건식 식각은 미세화의 파트너에서, 나아가 미세화의 대안으로까지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건식 식각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식각 기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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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각 기체 전문기업 ‘SK레조낙’
국내에 이런 식각 기체 공급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SK레조낙이 있다. SK레조낙은 산화막 식각에 사용되는 C4F6(육불화부타디엔)과 질화막 식각에도 사용되는 CH3F(모노플루오르메탄), CH2F2(디플루오르메탄)을 공급한다. 특히 국내에서 CH3F을 양산한 것은 SK레조낙이 최초다.
이런 기체 없이, 수백층으로 구성된 고용량 3차원 낸드 플래시를 제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현재 200~300단 정도 되는 낸드 플래시는 2030년이 되면 1,000단 이상으로 그 층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D램은 미세화를 진행함에 따라 커패시터 높이를 계속 높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즉, 한국의 핵심 반도체 제품 두 종류 모두 식각 의존도가 계속 높아질 것이란 의미이다.
SK레조낙은 HBr(수소화브롬) 가스도 공급하고 있는데, 이 가스는 에너지 분포 폭이 좁아 매우 미세한 패턴을 수직에 가깝게 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도체 최하부의 소자층 크기가 지속적으로 미세화되는 상황이기에 이 또한 중요한 기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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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재를 품다” SK에코플랜트의 확장되는 반도체 종합서비스 영역
식각용 기체, 즉 고순도 식각 가스 시장은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QY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약 8억 달러(약 1.1조 원)이었던 고순도 식각 가스 시장은 2029년이 되면 14.3억 달러(약 2조 원)로, 연 평균 약 8.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예상 성장 속도인 연 6.8% 보다 높은 수치로, 이 역시 식각 공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속에서 SK에코플랜트가 SK레조낙을 새로운 가족으로 편입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발표됐다. 두 회사의 결합은 생산과 공급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반도체 종합 서비스 사업을 펼치고 있는 SK에코플랜트에게 이번 편입은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다. 그동안 SK에코플랜트가 쌓아온 반도체 제조 인프라 구축, 반도체용 가스 공급, 반도체 메모리 생산 등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반도체 소재 사업 간의 시너지를 통해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최근 산업 전 분야에서 AI가 강조되는 흐름 속에서, 앞으로는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와 설비 전반에도 더 높은 수준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공정이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 속에서, SK에코플랜트의 이번 반도체 소재 회사 편입이 단순한 자회사 편입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적 행보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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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 저술가는 2019년 SK하이닉스에 재직 중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집필하면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거치며 얻은 경험으로 『AI 혁명의 미래』를 집필하였으며, 현재는 IT 분야 저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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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미세한 소자와 배선을 인간이나 기계가 일일이 배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반도체를 한 층씩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과정은 크게 보면 *웨이퍼(Wafer) 위에 빛과 *포토마스크(Photomask),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감광액)라는 재료를 이용해 제거해야 할 부위와 남길 부위를 그려주는 노광(露光, Exposure), 노광으로 새겨진 모양대로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식각(蝕刻, Etching), 제거된 부위에 원하는 물질을 추가하는 증착(蒸着, Deposition) 총 3단계로 구성되며 각 공정 사이에 세척 등의 공정이 추가된다. 반도체 회사들은 이 과정을 반복하여 여러 층의 금속배선층을 가진 첨단 반도체를 제조한다. 이 세 가지 공정 중 오늘 알아볼 공정은 식각이다.
*웨이퍼: 실리콘 등을 얇게 썬 원판으로, 반도체는 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포토마스크: 반도체의 미세회로가 형상화된 유리기판.
*포토레지스트: 빛을 받으면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액체의 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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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교하게, 식각 기술이 진화하는 이유
앞서 간략히 살펴보았듯, 식각은 반도체 표면의 물질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노광 공정이 끝나면, 반도체 표면은 글자 마킹판이 씌워진 간판과 비슷한 모습이 된다. 물질을 제거해야 할 부위는 드러나고, 물질이 남아있어야 하는 부위는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 반도체 전체에 반응성 액체나 기체(가스)를 뿌려주면, 드러난 부위의 물질만 제거된다. 물질이 선택적으로 제거되고 나면, 비로소 증착 공정을 통해 소자 구성물질이나, 금속배선 등 필요한 물질을 반도체 표면에 도포할 수 있게 된다.

위 설명만 들어 보면 식각은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굉장히 간단한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공정이다. 제거해야 하는 물질의 종류도 다양하며, 식각 깊이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미세화 초기에는 ‘습식(wet) 식각’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노광 처리된 웨이퍼를 제거하고자 하는 물질과의 반응성이 높은 액체에 담가 제거하는 방법인데, 액체가 웨이퍼 표면과 직접 만나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미세한 패턴을 식각 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액체는 특정한 방향성을 띄지 않기 때문에, 감광액 아랫부분까지 식각이 일어나는 ‘언더컷(undercut)’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식각을 깊게 할 수도 없다. 식각을 깊게 하기 위해서는 웨이퍼를 오랫동안 액체에 담가 두어야 하는데, 이 경우 언더컷 현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사탕 한 개에 구멍을 뚫기 위해, 포장지에 작은 구멍을 뚫고 물에 담그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구멍 근처의 사탕만 녹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탕 전부 물에 녹아 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반도체 공정에서의 세밀한 작업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식각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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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식각, 해답은 ‘기체’에 있다.

그래서 등장한 기술이 기체를 사용하는 ‘건식(dry) 식각’이다. 기체는 액체와 달리 반응 시간 조절도 쉽고, 입자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거나 물체가 전기를 갖도록 함으로써 방향을 조절하기도 쉽다. 덕분에 언더컷 현상도 액체에 비해서 적어, 더욱 미세한 패턴도 식각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체의 조성과 식각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할 경우 언더컷 현상을 최소화하면서도 깊은 구멍을 형성할 수 있다.
건식 식각의 중요성은 최근 더욱 커지고 있다. 식각을 통해 반도체 미세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력 반도체 제품은 *D램과 *낸드 플래시라는 두 반도체인데, 두 제품 모두 식각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D램의 경우, 미세화가 진행되자 단위 데이터 저장소인 *커패시터(Capacitor)의 부피 감소로 인해 전하 저장 용량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커패시터의 전하가 너무 적어지면 D램 회로가 저장된 데이터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반도체 회사들은 커패시터를 더 높게 제조함으로써 전하 저장 용량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는 기존보다 더욱 깊게 식각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즉, 커패시터를 컵이라고 보면 미세화는 컵의 아랫면의 넓이를 줄이는 과정이다. 이 상황에서 컵의 부피를 유지하려면 컵의 높이를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경우, 소자를 10나노미터급으로 미세화하자 수명이 지나치게 짧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반도체 회사들은 크기 소자의 축소를 포기하고, 마치 일반 주택을 아파트로 바꾸듯 3차원 방향으로 쌓는 방식으로 밀도를 높여 가기로 하였다.
*D램(DRAM): 동적 메모리, 용량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컴퓨터의 주력 메모리로 사용되는 램이다. D램은 전원 차단 시 저장된 데이터가 소멸되는 휘발성 메모리의 성격을 지닌다.
*낸드 플래시(Nand Flash): 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이다. D램과는 다르게 비휘발성 메모리라는 특징이 있다.
*커패시터: 전자회로에서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장치.

3차원 낸드 플래시는 2차원 낸드 플래시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구조다. 저장 용량을 늘리기 위해 반도체의 면적을 넓히는 대신, 층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이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사는 반도체 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씌운 얇은 막인 산화막과 질화막을 수십에서 수백 겹까지 교대로 쌓은 뒤, 적층 구조에 구멍을 뚫고 식각 공정을 거쳐 그 자리에 금속과 저장소를 채워 넣는다. 이 일련의 과정이 바로 3차원 낸드 플래시의 기본 제조방식이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단계는 ‘채널 홀 식각(Channel Hole Etch)’ 공정이다. 채널 홀은 3차원 낸드 플래시에 수직으로 뚫는 깊은 구멍을 의미한다. 이 구멍은 낸드 플래시 제조 과정에서 질화막을 제거하고 단위 저장소를 채워 넣는 통로로 사용되며, 낸드 플래시 완성 이후에는 전류와 데이터가 이동하는 경로로도 활용된다. 식각이 더 깊게 가능할수록 더 많은 산화막과 질화막 층을 쌓아 올릴 수 있으며, 이는 곧 고용량 낸드 플래시 구현으로 이어진다. 3차원 낸드 플래시의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의 본질은 노광이 아니라 식각에 있다는 말도 이 때문이다. 채널 홀 외에도, 계단 형성(staircase) 공정 등 산화막과 질화막을 정밀하게 식각해야 하는 공정은 3D 낸드 플래시 제조 전반에 걸쳐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처럼 건식 식각은 미세화의 파트너에서, 나아가 미세화의 대안으로까지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건식 식각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식각 기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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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각 기체 전문기업 ‘SK레조낙’
국내에 이런 식각 기체 공급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SK레조낙이 있다. SK레조낙은 산화막 식각에 사용되는 C4F6(육불화부타디엔)과 질화막 식각에도 사용되는 CH3F(모노플루오르메탄), CH2F2(디플루오르메탄)을 공급한다. 특히 국내에서 CH3F을 양산한 것은 SK레조낙이 최초다.
이런 기체 없이, 수백층으로 구성된 고용량 3차원 낸드 플래시를 제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현재 200~300단 정도 되는 낸드 플래시는 2030년이 되면 1,000단 이상으로 그 층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D램은 미세화를 진행함에 따라 커패시터 높이를 계속 높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즉, 한국의 핵심 반도체 제품 두 종류 모두 식각 의존도가 계속 높아질 것이란 의미이다.
SK레조낙은 HBr(수소화브롬) 가스도 공급하고 있는데, 이 가스는 에너지 분포 폭이 좁아 매우 미세한 패턴을 수직에 가깝게 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도체 최하부의 소자층 크기가 지속적으로 미세화되는 상황이기에 이 또한 중요한 기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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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장 상황속에서 SK에코플랜트가 SK레조낙을 새로운 가족으로 편입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발표됐다. 두 회사의 결합은 생산과 공급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반도체 종합 서비스 사업을 펼치고 있는 SK에코플랜트에게 이번 편입은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다. 그동안 SK에코플랜트가 쌓아온 반도체 제조 인프라 구축, 반도체용 가스 공급, 반도체 메모리 생산 등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반도체 소재 사업 간의 시너지를 통해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최근 산업 전 분야에서 AI가 강조되는 흐름 속에서, 앞으로는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와 설비 전반에도 더 높은 수준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공정이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 속에서, SK에코플랜트의 이번 반도체 소재 회사 편입이 단순한 자회사 편입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적 행보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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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 저술가는 2019년 SK하이닉스에 재직 중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집필하면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거치며 얻은 경험으로 『AI 혁명의 미래』를 집필하였으며, 현재는 IT 분야 저술가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