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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두 가지 주특기가 만든 황금 광산, 그 정체는?

미래 산업의 승부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갈륨. 이름도 낯선 이 금속이 오늘날 반도체, LED, 전기차 배터리까지 움직이는 게임 체인저로 부상해,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공급을 잠그면 전 세계가 비상에 걸릴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갈륨을 직접 캐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을 갖고 있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확인해보자.

갈륨 등 희소금속 확보가 국제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반도체 재활용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출처: 셔터스톡)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혹시 갈륨(Gallium, Ga)이라는 물질에 대해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철이나 알루미늄처럼 흔한 금속은 아니다. 그렇다고 금이나 은처럼 오랜 세월 귀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던 물질도 아니다. 1875년 이 물질을 처음 발견한 프랑스 과학자가 고대 프랑스 지역의 옛 지명인 ‘갈리아(Gallia)’라는 말을 변형해 이름을 붙였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갈륨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후 과학자들이 갈륨을 사용해 여러 가지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수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갈륨은 금속이라서 생긴 것은 꼭 쇳덩어리처럼 생겼지만 녹는 온도는 40℃가 채 되지 않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갈륨으로 숟가락을 만들어 손으로 쥐고 있으면 체온에 흐물흐물 녹아 버릴 수도 있다. 이 같은 성질 때문에 예전에는 마술사 같은 사람들이 장난을 치거나 자유롭게 초능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다는 따위의 쇼를 하기 위해 쓰던 물질이 갈륨이었다. 예전에는 보통 사람들이 갈륨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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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색의 금속 원소 갈륨,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갈륨은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게 됐다. 갈륨을 이용해 양질의 파란색 빛을 내는 LED를 값싸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파란색 빛을 내는 LED는 LED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축에 속해, 빨간색 LED와 초록색 LED가 개발되어 널리 쓰인 뒤에도 파란색 LED가 개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파란색 LED가 개발되고 나자 세상이 바뀌었다. 빨강, 초록, 파랑은 빛의 삼원색이다. 그렇다는 말은 이 세 가지 빛만 잘 조절하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을 다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세 가지 빛을 같은 세기로 섞으면 깨끗한 흰 빛이 나온다. 흰 빛은 주변을 밝히는 등불로 쓸 수 있다. 다시 말해, 에디슨 방식의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대신할 수 있는 조명을 LED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작 센서로 길을 밝히는 LED조명 (출처: 셔터스톡)

LED는 반도체 기술을 이용해서 빛을 내는 장치다. 그렇기 때문에 백열등이나 형광등에 비해 훨씬 더 적은 전력으로 더 정확한 빛을 낼 수 있다. 전기 요금도 적게 들고 작은 크기로 더 센 빛을 내게 할 수도 있다. 작은 필라멘트를 뜨겁게 달구며 전기를 흘려야 하는 백열등이나, 복잡하게 섞어 놓은 기체 속에서 형광 물질이 광반응을 일으키게 해야 하는 형광등과 비교해 보면 LED는 작동 중에 닳는 부분이나 무리한 힘을 받는 물질도 적다. 그래서 LED는 백열등이나 형광등보다 수명도 길다.

그 덕택에 어둠을 밝히는 불빛은 빠른 속도로 LED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아예 형광등이나 백열등을 사실상 금지하고 어지간하면 LED만 쓰라는 식의 규제가 생기는 지역도 속속 나타났다. 그 결과 지금은 LED 조명이 가정을 밝히는 불빛에서부터 자동차 헤드라이트까지 온갖 전기 조명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날씨 좋은 날 밤에 높은 곳에 올라 도시의 야경을 본다고 상상해 보자. 그 많은 건물들과 도시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색색의 전기 불빛을 밝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대개 LED 빛이다. 그렇게 보면 갈륨으로 만든 빛이 온통 도시의 야경을 밝히고 있다고 말해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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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반도체 전략 자원, 높은 중국 의존도에 대한 해답은?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갈륨은 매우 중요한 핵심 재료 물질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갈륨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2023년 기준으로 세계 갈륨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렇기에 중국과 갈등이 생기거나 중국 산업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갈륨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파란색 LED를 만들 수도 없게 되며 도시의 불빛이 꺼질 지도 모른다. 실제로 2023년 중국 정부는 무역 분쟁 대응을 위해 갈륨 공급을 일정 수준 통제하는 조치를 실행한 적이 있다.

중국 반격카드는 광물…“갈륨은 시작인가?”(출처: KBS News 유튜브 채널)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갈륨은 LED 뿐만 아니라 다른 특수 반도체를 만드는 데에도 핵심 재료로 활용된다. 요즘 반도체 소재의 주류가 규소라면, 미래의 반도체 내지는 특수 반도체의 후보로 지난 30년간 거론되어 오던 것이 갈륨과 비소를 조합해서 만드는 반도체다. 굳이 미래로 가지 않더라도 이미 갈륨으로 만드는 반도체는 군사 무기용 레이더나 전력 조정 역할을 하는 용도로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 갈륨을 팔지 않으면 각종 첨단 무기에 꼭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 수 없으므로, 미국에서는 갈륨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자국의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나온다.

갈륨이 이렇게 귀하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말하면 갈륨과 같은 물질을 잘 구할 수만 있으면 그것은 가치 있는 산업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갈륨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길가에 그냥 아무렇게나 널려 있지는 않다. 갈륨을 심으면 갈륨이 열리는 나무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땅에 묻혀 있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갈륨 같은 소중한 자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은 한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바로 ‘재활용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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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없는 나라의 황금 전략, 재활용이라는 황금 광산

모든 제품은 사용을 마치고 나면 언젠가는 폐기되어 버려진다. 그런데 비록 버려진 제품, 고장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가 어디인가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된 갈륨이나 다른 중요한 물질들은 제품이 버려질 때에도 대부분 그대로 그 안에 남아 있다. 특히 첨단 전자제품의 경우에는 제품이 작동을 하지 않거나 낡아서 버리기보다는 유행에 뒤쳐지거나 성능이 부족해져 버려지는 일이 많다. 이런 제품은 정상 제품과 동일하게 작동하며 제품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도 거의 온전하게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물건들을 쓰레기 매립지에 묻어 두거나 그저 태워서 없애지 말고 다시 뜯어서 분해한 뒤 그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물질들을 추출해 사용해 보면 어떨까? 물론 어지러울 정도로 여러 물질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전자 제품 속에서, 판매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물질만 정확하게 골라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여러 복잡한 물질을 자유롭게 가공하고 그 속에서 한 가지 물질만 정제해내는 화학 기술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러한 작업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전자장비 폐기물에서 희귀금속 ‘갈륨’ 캔다 (출처: YTN 사이언스 공식 유튜브 채널)

마침 한국은 화학 기술의 수준이 높고 특히 광산에서 캐낸 돌 속에서 순수한 금속만을 뽑아내는 제련, 정련 산업이 상당히 발전한 나라다. 한국의 제련 산업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한국에서 황금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도 금광이 아니라 제련 공장이다. 현재 한국에서 운영 중인 금광에서 생산되는 황금의 양은 다 합쳐 봐야 매년 수백 킬로그램 수준이지만, 엉뚱하게도 제련 공장에서는 그 열 배, 백 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황금을 매년 생산해 낸다. 아연과 구리를 뽑아내는 작업을 하고 버리는 돌 찌꺼기 속에서 혹시나 황금이 들어 있는 경우는 없는지 훑어 내는 방법으로 그 정도의 엄청난 금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 양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방송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다가 시청자들로부터 “혹시 숫자를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 어떻게 찌꺼기 속에서 걸러내는 황금이 그렇게 많을 수 있느냐”는 의견을 받은 일도 여러 번 겪었다.

그렇기에 한국에는 폐전자제품과 그 속의 반도체에서 자원을 뽑아 내는 일 중에서도 이미 사업화가 이루어진 사례들이 있다. 예로부터 많이 다루어 온 구리나 황금 같은 금속을 뽑아내는 사업이 그 대표격이다. 최근에는 버려진 전자제품의 폐배터리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물질들을 다시 뽑아 내서 판매하는 사업도 급격하게 발전하는 추세다. 마침 중국의 갈륨 통제 이후로는 갈륨을 비롯한 온갖 다른 물질에 대한 재활용 기술도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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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두 산업이 만난 자원 재활용의 허브

반도체 재료 물질의 재활용에 한국이 더욱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화학 기술 못지않게 잘 발달된 사업이 바로 전자 산업과 반도체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자제품 모듈 및 부품 생산 회사들은 반도체가 어떻게 사용되어 조립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를 재활용할 때에도 어떤 제품을 어떤 식으로 뜯고 분해하면 무슨 물질이 얼마나 나올 수 있는지도 잘 파악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가진 회사가 재활용 기술을 가진 회사와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물질을 쉽게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SK테스의 E-Waste 재활용 공정. SK테스는 반도체, 폐배터리 등의 E-Waste 재활용 전문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에 반도체 기술 수준이 발달한 업체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렇게 뽑아낸 물질을 판매할 수 있는 판매처가 가까이 있다는 면에서도 큰 장점이다. 어떤 물질이 어느 정도의 순도로 있을 때 그 물질을 원하는 고객이 얼마에 살 수 있다는 지식이 있다면 그만큼 잘 팔릴 수 있는 물질을 집중적으로 솎아 내는 식으로 사업을 키워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재활용 회사는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고 그 수익으로 더 철저히, 더 많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물질을 구하고, 가공하고, 판매하고, 활용하는 여러 업체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서로 협력하며 여느 다른 나라 못지않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 비교해 보자면, 호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광물 자원이 많이 나오는 나라 또한 여러 가지 물질을 뽑아내는 기술은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나라는 반도체 산업, 전자 산업이 충분히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반도체를 도로 분해해서 재활용할 기술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는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라도 각종 반도체 재활용 기술이 더욱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아예 의무적으로 반도체에도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라는 규제가 활성화될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 걸친 기업들 간의 긴밀한 협력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황금 이상으로 소중한 온갖 자원들이 과학 기술인들의 손끝에서 마법처럼 쏟아지게 될 것이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인간적으로〉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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