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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공기가 반도체 산업에 숨을 불어넣기까지” 엔트로피로 살펴본 한국 경제의 저력

산소와 질소는 지구에서 가장 흔한 기체지만,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여러 첨단 산업에서 ‘산업용 가스’로서 그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기 중의 산소와 질소는 어떻게 산업용 가스가 될 수 있을까? 그 과학적 원리와 함께, SK에코플랜트의 산업용 가스 전문 자회사 SK에어플러스를 사례로 이들 기체들이 우리나라 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봤다.

SK에코플랜트의 산업용 가스 전문 자회사 SK에어플러스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가스들이 배관과 탱크로리를 통해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 현장으로 운반되고 있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왜 흐를까? 시간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구든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렇지만 막상 시간이 정확히 뭘 말하는 것인지, 시간이 흐른다는 현상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만약 우주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텅 빈 공간만 있고 그곳에 아주 단순하고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작은 점과 같은 물체 단 하나만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럴 때에도 시간이 흘러 간다고 볼 수 있을까? 시계가 없으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혹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까? 아니면 그저 가만히 있는 상태이지만 알 수 없는 우주의 마음 속 시간은 그래도 흐르고 있다고 상상해야 할까? 그렇지만 이런 상태가 도대체 시간이 멈추어 있는 상태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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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을 책정하는 열역학적 척도 ‘엔트로피’

그래서 과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을 비교적 명쾌하게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entropy)’라고 하는 숫자를 개발해 냈다. 엔트로피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그 중에서도 실제로는 ‘그 물체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엔트로피라고 할 때가 많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대개 갈수록 ‘경우의 수가 많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를 할 때 앞면이 나올 경우의 수와 뒷면이 나올 경우의 수가 같아도 실제로 해보면 처음에는 우연히 앞면이 두 번 연속으로 나올 수도 있고, 어쩌다 보면 뒷면이 연속 세 번 나오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여러 번 동전 던지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전체적으로 앞면이 나올 때와 뒷면이 나올 때의 숫자가 거의 같아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얼음(고체)이 녹으면 분자의 무질서한 정도가 더 큰 물(액체), 그리고 수증기(기체)가 되는 것처럼, 물질의 변화는 무질서한 정도,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성이 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발생할 경우의 수가 적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대체로 발생할 경우의 수가 많은 일로 세상은 흘러 가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세상 전체의 엔트로피는 적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항상 커진다. 이것을 ‘*열역학(熱力學)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즉, 우리는 온 세상의 엔트로피가 커지는 정도를 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작은 물질 단 하나만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흐르는 상태가 아니다. 반대로 만약 물체가 두 개가 있어서 하나를 기준으로 다른 하나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면 그 때는 엔트로피를 따져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열역학: 물질의 상태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열(heat)과 일(work)의 양을 에너지와 엔트로피 등의 변수들을 이용하여 분석하는 학문

그렇다면 혹시 엔트로피를 줄일 수는 없을까? 세상 전체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온 세상의 엔트로피를 줄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술과 노력을 동원하면 다른 곳의 엔트로피를 더 많이 늘리는 방법으로 어떤 지역의 엔트로피를 줄일 수는 있다. 좀 거창하게 설명해 보자면, 내 주변의 시간을 더 빨리 가게 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기계로 다른 물체의 시간을 잠시 거꾸로 돌려 놓는 듯한 일은 해 볼 수 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니 엄청난 일 같지만, 소금물을 팔팔 끓여서 모든 물을 다 증발시킨 뒤 소금만 남으면 그 소금을 한 군데 모아 놓을 수 있다는, 그러니까 애를 써야 하지만 공을 들이면 소금이 물에 녹기 전으로 되돌릴 수는 있다는 뜻이다.

엔트로피를 변화시키는 이런 형태의 작업이 특히 재미있는 까닭은 이런 작업이 물질 자체에서 가치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물질의 상태와 그 변화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소금은 흔한 물질이다. 무궁무진하다고 할 만큼 널려 있는 것이 바닷물이다. 흔히 무엇이 크고 많을 때 ‘바다처럼 넓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좋은 소금이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는 이유는 바닷물 속에서 소금이 청결하게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 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소금이라는 물질 자체가 지구에서 귀하다기보다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의 소금이 귀하기 때문에 지난 수천 년간 소금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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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를 낮추는 산업용 가스 사업, 한국 경제를 뛰게 하다

이런 부류의 사업은 지하자원이나 화석 연료가 부족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 특히 관심을 가져 볼 만한 일이다. 자원, 물질 그 자체를 판매하는 사업이 아니라 그 자원과 물질의 엔트로피를 줄이는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의 사례는 굉장히 많고, 과학기술적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에 따라 기술의 범위도 넓다.

그 중에서도 이미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 ‘산업용 가스’ 사업이다. 산업용 가스는 여러 공장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기체를 판매하는 사업이다. 높은 온도의 불을 지필 때나 용접을 할 때 사용하는 ‘산소’나, 과자 포장에 집어넣는 ‘질소’ 같은 것이 가장 흔한 예시다. 그 외에도 이런 기체들의 용도는 무척 많다. 산소 기체는 여러 화학 물질과 다양한 반응을 빠르게 잘 하므로 잡다한 물질들을 산소와 반응시켜 마치 태워 버리듯이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주 쓰이며, 반대로 질소 기체는 반응을 거의 안 하는 물질로 아주 고운 가루나 엷은 안개 같은 물질을 아무런 변화 없이 원하는 곳까지 날려 보내기 위한 바람을 불어 일으킬 때 사용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산소, 질소 기체는 요식업에서부터 반도체 산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런 기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기를 재료로 가공하는 것이다. 공기는 질소 기체가 대략 80%, 산소 기체가 대략 20%, 그 외의 다른 물질들이 조금씩 섞여 있다. 마치 바닷물에서 소금을 빼내듯, 공기 속에서 순도가 높게 물질들을 분리해 낼 수만 있다면 가치 있는 물질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엔트로피를 낮추는 기술만 있다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허공조차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

SK에어플러스 울산 공장의 ASU(Air Separation Unit, 공기분리장치). 이 장치를 통해 SK에어플러스는 대기중 공기를 분리, 정제해 고순도의 산소, 질소, 아르곤 등의 산업용 기체를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울산 등지의 산업 단지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이렇게 공기 중의 물질을 분리하고 높은 순도로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해 값진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주요 업체 중에는 이미 시간당 수십 톤의 제품을 생산해 매년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SK에코플랜트의 산업용 가스 전문 자회사 SK에어플러스로, 이들의 울산 공장에서는 1시간마다 56,000N㎥의 질소와 48,000N㎥의 산소를 생산하고 있다. ‘어떻게 공기를 원료로 매년 돈을 수천억 원씩 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놀랍기도 한데, 과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런 회사의 사업은 단순히 공기의 일부를 판매하는 일이라고 하기보다는 낮은 엔트로피를 판매하는 일에 가깝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한 표현을 쓴다면, 과거로 거슬러 간 시간을 판매하는 사업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렇게 생산한 산소 기체, 질소 기체 등의 제품은 커다란 쇠 탱크에 넣어 트럭에 싣고 전국 각지의 다른 공장으로 판매되기도 하고, 아예 연결관을 통해 인근의 공장으로 바로 보내지기도 한다. 울산 등 주요 산업 단지의 공장에는 이런 식으로 물질을 즉시 보내 줄 수 있는 연결관이 수십 킬로미터 길이에 걸쳐 곳곳으로 뻗어 있다. 일례로 SK에어플러스 울산 공장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70%를 연결관을 통해 33개 사용처에 직접 공급하고 있는데, 이 연결관의 길이만 40㎞에 달한다. SK에어플러스의 최대 수요처는 반도체 산업으로, 산소, 질소와 같은 산업용 가스는 반도체 공정 곳곳에서 필수 소재로 사용된다.

이처럼 관을 통해 수십 개의 업체들이 함께 물질을 주고받으며 같이 운영되는 공업 도시의 모습은 마치 몸에 혈관이 뻗어 있어서 피가 돌며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와 비슷하다. 산업 가스 공장이 혈액 대신에 낮은 엔트로피를 도시에 불어넣어 한국의 산업 경제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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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의 저력이 한국 산업의 미래

이렇게 개발된 기술과 그 기술을 믿고 협력할 수 있어서 여러 분야의 공장들이 같이 맞춰 돌아갈 수 있는 체계가 한국 제조업이 가진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생각도 자주 한다. 단순히 값싼 제품을 잘 만들거나 반대로 고급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많다. 그러나 한 사업이 다른 사업과 연결되어 서로 도우며 다같이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이러한 특징 덕택에 한국 공장들은 더 기민하고 더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말하자면, 공기에서 질소 기체를 잘 뽑아내는 회사가 믿음직하게 움직여 주기에 반도체 공장도 걱정 없이 운영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이런 소중한 특징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데 한국 산업의 미래가 있다.

또 하나 짚어 보고 싶은 것은 기초과학의 저력이 결국 경제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나 시간이 멈추어 있는 세상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엔트로피에 대해 소개해 보았는데, 이런 지식은 그저 환상이나 현학적인 지적 놀음 말고도 쓰일 곳이 많다. 열역학 지식은 바로 현장의 작업을 돕는다. 현대의 산업 가스 공장에서는 공기에서 고순도 기체를 뽑아 낼 수 있는 효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 온도와 압력을 복잡하게 조절하며 설비를 운영한다. 이때 이러한 설비 조작의 기본 원리가 되고 효율 측정의 근본 지표가 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와 엔트로피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열역학 분야의 지식들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산업의 연결에 대한 이해에 더하여, 더 넓은 기초과학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미래라는 시간을 개척하기 위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인간적으로〉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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