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순환의 날 특집 칼럼] 미래 대한민국의 대표 특산품은 ‘재활용 기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이미 ‘재활용 DNA’가 흐른다? 폐기물 수집 조건부터 재활용 기술력까지 이미 재활용 산업 대국이 될 자질이 충분한 대한민국. 9월 6일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곽재식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 특산품으로 ‘재활용 기술’이 꼽히는 미래를 그려보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특산품은 무엇일까? 수천 년 전부터 유명했던 전통적인 특산품이라면 인삼이나 담비 가죽 같은 것이 있겠다. 그러나 요즘 담비는 법으로 보호받는 동물이라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하다. 인삼은 여전히 많이 생산되기는 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자면 한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라고 보기에는 그 양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경제 통계에서 항상 우리나라 수출 실적 상위를 차지하는 품목을 찾아보면, 대개 반도체와 자동차가 1, 2위를 차지한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우리나라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눈에 많이 띄고, 세계 곳곳에서 잘 팔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반도체와 자동차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의 특산품이라는 말은 괜찮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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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특산물이 ‘석유화학 제품’?
여기 더해 품목을 구분하는 방법에 따라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물량이 얼마나 될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석유화학 제품이 우리나라 3대 수출품 안에 속한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석유를 원재료로 가공을 거쳐서 만드는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에틸렌’이라는 물질이 있다. 에틸렌은 수많은 다른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원료로 널리 거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에틸렌을 이용하면 화학공업의 대표적인 대량생산 제품인 플라스틱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에틸렌 생산용량이 얼마냐를 가지고 그 나라의 석유화학 공업의 규모를 가늠하는데, 우리나라의 에틸렌 생산용량은 세계 4위에 해당한다(2021년 기준, 한국석유화학협회). 우리나라보다 에틸렌 생산용량이 큰 나라는 전 세계에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세 나라밖에 없다. 즉,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석유화학 대국이다.
에틸렌 세계 4위라는 순위는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기 나라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가 생산되는 석유 대국이다.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에서 그 석유로 만드는 석유화학 제품을 많이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현재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나지 않는 나라다. 그런데도 석유가 쏟아지는 세계의 수많은 다른 나라들을 제치고 석유화학 공업 규모에서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는 석유를 가공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우리나라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제 나라에서 아무리 석유가 넘쳐난다 한들 그 석유를 가공할 때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이야기다. 달리 보자면, 석유화학 기술을 발전시켜 온 많은 기술인들의 노력 덕택에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다고 말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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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의 본고장’ 유럽은 오히려 ‘재활용’에 집중
그런 만큼 세계에는 한국에 석유화학 기술 수준을 따라잡힌 선진국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유럽은 사실 플라스틱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화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용어로 ‘치글러-나타 촉매’라는 말이 있다. 치글러-나타 촉매는 에틸렌을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으로 바꾸어 주는 약품으로, 개발자인 독일의 화학자 칼 치글러(Karl Ziegler)와 이탈리아의 화학자 줄리오 나타(Giulio Natta)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두 사람이 치글러-나타 촉매를 개발한 덕택에 전 세계 사람들은 값싼 플라스틱을 대규모로 생산해 지금처럼 온갖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이 성과로 두 사람은 노벨상도 받았다. 어쩌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플라스틱의 모국, 플라스틱의 원산지, 전 세계에 플라스틱을 퍼뜨린 중심지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들의 플라스틱 생산 기술은 대한민국에 따라잡혔다. 화학 강국이자 기술 선진국인 독일이야 여전히 다양한 특수 플라스틱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독일의 화학산업조차도 그 규모 면에서는 한국 회사들을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질적으로 보아도 한국 과학자들의 석유화학 물질을 개발해 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은 결코 독일 과학자들이 만만히 보지 못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화학 회사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궁리를 했을까? 한 가지 멋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재활용’이다. 일찌감치 환경 기술에 투자하며 재활용 산업을 먼저 시작한 유럽 국가들은 환경 관련 산업에 대해서는 앞서 있는 점이 있다. 또 재활용 산업은 일단 다 쓴 물건이나 쓰레기를 거두어 오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므로 물건이 소비된 장소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그러므로 많은 물건을 소비하기 마련인 유럽 선진국에서 재활용 산업을 시작하면 유럽에 이점이 많다. 예를 들어 그냥 좋은 화학 제품을 판매하라고만 하면, 질 좋은 제품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석유화학 제품이 유럽에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을 하라고 하면, 일단 유럽 사람들이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두어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니 유럽 안에 일거리와 일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재활용 기술에서 앞서 있는 몇몇 유럽 화학 회사들이 그 플라스틱 쓰레기로 한국 회사보다 재활용 제품을 더 잘 만들어 경쟁에서 이기는 미래를 꿈꾸어 볼 수도 있다.
유럽연합 의회에서 지난 4월 승인한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지침(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PPWR)’에서는 이미 플라스틱을 이용한 포장재에 대해 그 재활용 비율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기본 목표로 제시된 수치는 2025년까지 50%다. 다시 말해 가볍고 튼튼하고 보기도 좋은 플라스틱 통을 만들어서 그 안에 제품을 집어넣어 포장할 수 있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 통을 만들 때 재료의 절반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써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목표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과 다양한 강제 규정이 실시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은 유럽 회사들이 재활용 제품을 잘 만들어 판다면 대한민국의 석유화학 산업을 다시 따라잡아 볼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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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재활용 기술 경쟁력이 경제 성장 좌우
대한민국에서 환경과 관련된 유럽의 정책을 소개하는 자료나 영상을 보다 보면, 그저 “유럽은 앞서 있는 나라고 의식이 깨어 있어서 재활용 정책이 이렇게나 앞서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 하다”는 느낌만 주고 끝낼 때가 종종 보인다. 가끔은 “유럽 사람들은 예로부터 선진국 국민들이라 이렇게 훌륭한데, 한국인들은 탐욕에만 빠져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마는 글을 읽을 때도 있다. 마치 먼저 선진국이 된 나라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고, 한국인들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기도 한다.
그러나 설마 유럽 사람들은 다들 착하고, 한국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나 나쁘겠는가? 유럽에서 환경 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앞서 추진될 수 있었고, 먼저 시행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할 때는 기술적인 이유, 산업적인 이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유럽 사람들이 먼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꾸준히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그에 따라 사회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도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관련 산업 구조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게 변화했다는 사실도 꼭 같이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유럽 시장처럼 정부와 산업계가 서로 발을 맞춰 재활용 제도를 산업에 유리하도록 활용하면, 그 자체로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려면 결국 우리나라 산업계도 재활용 기술을 키워 나가야 한다. 재활용 재료 의무 비율 규제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유럽에 물건을 수출할 때 정해진 비율을 맞추느라 재활용 재료를 웃돈을 주어 가며 확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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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재활용에 유리한 여건 갖춰… 기술 확보 나설 때
더군다나 꼭 유럽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이 재활용 기술에 특히 더 신경 써야 할 이유, 또 한번 제대로 기술을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면 썩 잘해 나갈 수 있을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이다. 요즘 주식 시장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리튬이온배터리만 봐도 그렇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주요 제조사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첫손에 꼽히는데, 핵심 재료인 지하자원은 대부분 수입산이다. 리튬은 볼리비아나 아르헨티나 같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 등의 아프리카에서, 망간은 오세아니아에 속하는 누벨칼레도니에서 각각 수입하는 식이다.
만일 한국이 리튬이나 코발트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였다면 그 자원을 캐내 리튬이온배터리를 많이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지하자원이 없는 한국에서는 배터리 재료를 재활용하는 만큼 이익이 된다. 재활용 기술은 우리나라에 없는 자원을 기술의 힘으로 창조해 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이익은 수입산 목재로 만들어야 하는 종이나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재활용 분야에서 갖고 있는 두 번째 장점은 재활용에 필요한 재료, 즉 폐기물을 수집하기 좋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국민들은 분리수거를 잘하기로 따지자면 세계에서도 유별난 편에 속한다. 가까운 홍콩만 해도 2024년 상반기까지도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지 못 해 고생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1995년에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됐다.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하고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는 분리수거해 재활용하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체감한 지 이미 거의 30년, 한 세대가 지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주거 형태를 봐도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 모여 사는 아파트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도시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경향도 강하다. 이 역시 폐기물을 쉽게 모아서 재활용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캐나다처럼 넓은 땅에 사람들이 흩어져 사는 나라에서는 멀리 떨어진 이 집 저 집을 돌며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오는 일부터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그러나 한국은 재활용 쓰레기 모아 가는 날만 되면 아파트 동마다 사람들이 알아서 분리수거를 다 해 놓는다. 이런 곳은 재활용에 불리한 나라의 눈으로 보면 쓰레기 재활용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IT 산업이 발달해 있다는 장점까지 갖추고 있다. 쓰레기를 모으고 분류하고 종류에 맞게 재활용할 때, 자동으로 이 과정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나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 이런 일을 해내기에 우리나라 산업계는 적합하다. 이미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에 특화된 관리 시스템이 상용화되어 이곳저곳에 설치되고 있을 정도다.
세 번째로 한국은 폐기물 재활용을 해내기 위한 기술적인 바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폐기물 속의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속에서 가치 있는 성분만 골라내 추출하기 위한 화학 기술이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를 재활용하려면 배터리를 갈아 놓은 가루에서 가치 있는 금속만 녹여내서 뽑아 올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재질이 같은 플라스틱끼리만 모아서 열과 압력을 가해 모양을 다시 바꾸거나 플라스틱에서 다시 석유와 같은 기름 성분을 빼내는 등의 공정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화학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는 다른 화학 공장을 운영하면서 이미 이와 비슷한 공정을 경험해 본 업체가 많다. 하다못해 화학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인력도 여느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다.
과거 플라스틱 산업을 탄생시킨 과학자들이 있던 유럽은 그 과학을 발판으로 삼아 재활용 기술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쌓아 온 과학으로 재활용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충분히 나서 볼 만하다. 세계 전체에 걸쳐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또 세월이 흐를수록 지하자원은 점차 바닥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점의 문제일 뿐, 결국 전 세계에서 재활용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로 지난 세대의 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가 미래 세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꿈꾸어 보기에 재활용 산업은 아주 매력적인 분야다. 인삼으로, 또 반도체로 유명한 곳이었던 우리나라가 곧 전 세계에 자원 재활용과 쓰레기 처리 기술을 자랑하는 곳이 될 수 있다면 그만큼 나라의 앞날이 더 밝아지지 않을까?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인간적으로〉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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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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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특산물이 ‘석유화학 제품’?
여기 더해 품목을 구분하는 방법에 따라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물량이 얼마나 될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석유화학 제품이 우리나라 3대 수출품 안에 속한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석유를 원재료로 가공을 거쳐서 만드는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에틸렌’이라는 물질이 있다. 에틸렌은 수많은 다른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원료로 널리 거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에틸렌을 이용하면 화학공업의 대표적인 대량생산 제품인 플라스틱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에틸렌 생산용량이 얼마냐를 가지고 그 나라의 석유화학 공업의 규모를 가늠하는데, 우리나라의 에틸렌 생산용량은 세계 4위에 해당한다(2021년 기준, 한국석유화학협회). 우리나라보다 에틸렌 생산용량이 큰 나라는 전 세계에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세 나라밖에 없다. 즉,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석유화학 대국이다.
에틸렌 세계 4위라는 순위는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기 나라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가 생산되는 석유 대국이다.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에서 그 석유로 만드는 석유화학 제품을 많이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현재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나지 않는 나라다. 그런데도 석유가 쏟아지는 세계의 수많은 다른 나라들을 제치고 석유화학 공업 규모에서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는 석유를 가공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우리나라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제 나라에서 아무리 석유가 넘쳐난다 한들 그 석유를 가공할 때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이야기다. 달리 보자면, 석유화학 기술을 발전시켜 온 많은 기술인들의 노력 덕택에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다고 말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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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의 본고장’ 유럽은 오히려 ‘재활용’에 집중
그런 만큼 세계에는 한국에 석유화학 기술 수준을 따라잡힌 선진국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유럽은 사실 플라스틱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화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용어로 ‘치글러-나타 촉매’라는 말이 있다. 치글러-나타 촉매는 에틸렌을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으로 바꾸어 주는 약품으로, 개발자인 독일의 화학자 칼 치글러(Karl Ziegler)와 이탈리아의 화학자 줄리오 나타(Giulio Natta)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두 사람이 치글러-나타 촉매를 개발한 덕택에 전 세계 사람들은 값싼 플라스틱을 대규모로 생산해 지금처럼 온갖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이 성과로 두 사람은 노벨상도 받았다. 어쩌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플라스틱의 모국, 플라스틱의 원산지, 전 세계에 플라스틱을 퍼뜨린 중심지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들의 플라스틱 생산 기술은 대한민국에 따라잡혔다. 화학 강국이자 기술 선진국인 독일이야 여전히 다양한 특수 플라스틱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독일의 화학산업조차도 그 규모 면에서는 한국 회사들을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질적으로 보아도 한국 과학자들의 석유화학 물질을 개발해 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은 결코 독일 과학자들이 만만히 보지 못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화학 회사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궁리를 했을까? 한 가지 멋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재활용’이다. 일찌감치 환경 기술에 투자하며 재활용 산업을 먼저 시작한 유럽 국가들은 환경 관련 산업에 대해서는 앞서 있는 점이 있다. 또 재활용 산업은 일단 다 쓴 물건이나 쓰레기를 거두어 오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므로 물건이 소비된 장소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그러므로 많은 물건을 소비하기 마련인 유럽 선진국에서 재활용 산업을 시작하면 유럽에 이점이 많다. 예를 들어 그냥 좋은 화학 제품을 판매하라고만 하면, 질 좋은 제품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석유화학 제품이 유럽에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을 하라고 하면, 일단 유럽 사람들이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두어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니 유럽 안에 일거리와 일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재활용 기술에서 앞서 있는 몇몇 유럽 화학 회사들이 그 플라스틱 쓰레기로 한국 회사보다 재활용 제품을 더 잘 만들어 경쟁에서 이기는 미래를 꿈꾸어 볼 수도 있다.
유럽연합 의회에서 지난 4월 승인한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지침(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PPWR)’에서는 이미 플라스틱을 이용한 포장재에 대해 그 재활용 비율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기본 목표로 제시된 수치는 2025년까지 50%다. 다시 말해 가볍고 튼튼하고 보기도 좋은 플라스틱 통을 만들어서 그 안에 제품을 집어넣어 포장할 수 있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 통을 만들 때 재료의 절반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써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목표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과 다양한 강제 규정이 실시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은 유럽 회사들이 재활용 제품을 잘 만들어 판다면 대한민국의 석유화학 산업을 다시 따라잡아 볼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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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재활용 기술 경쟁력이 경제 성장 좌우
대한민국에서 환경과 관련된 유럽의 정책을 소개하는 자료나 영상을 보다 보면, 그저 “유럽은 앞서 있는 나라고 의식이 깨어 있어서 재활용 정책이 이렇게나 앞서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 하다”는 느낌만 주고 끝낼 때가 종종 보인다. 가끔은 “유럽 사람들은 예로부터 선진국 국민들이라 이렇게 훌륭한데, 한국인들은 탐욕에만 빠져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마는 글을 읽을 때도 있다. 마치 먼저 선진국이 된 나라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고, 한국인들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기도 한다.
그러나 설마 유럽 사람들은 다들 착하고, 한국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나 나쁘겠는가? 유럽에서 환경 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앞서 추진될 수 있었고, 먼저 시행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할 때는 기술적인 이유, 산업적인 이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유럽 사람들이 먼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꾸준히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그에 따라 사회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도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관련 산업 구조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게 변화했다는 사실도 꼭 같이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유럽 시장처럼 정부와 산업계가 서로 발을 맞춰 재활용 제도를 산업에 유리하도록 활용하면, 그 자체로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려면 결국 우리나라 산업계도 재활용 기술을 키워 나가야 한다. 재활용 재료 의무 비율 규제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유럽에 물건을 수출할 때 정해진 비율을 맞추느라 재활용 재료를 웃돈을 주어 가며 확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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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재활용에 유리한 여건 갖춰… 기술 확보 나설 때
더군다나 꼭 유럽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이 재활용 기술에 특히 더 신경 써야 할 이유, 또 한번 제대로 기술을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면 썩 잘해 나갈 수 있을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이다. 요즘 주식 시장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리튬이온배터리만 봐도 그렇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주요 제조사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첫손에 꼽히는데, 핵심 재료인 지하자원은 대부분 수입산이다. 리튬은 볼리비아나 아르헨티나 같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 등의 아프리카에서, 망간은 오세아니아에 속하는 누벨칼레도니에서 각각 수입하는 식이다.
만일 한국이 리튬이나 코발트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였다면 그 자원을 캐내 리튬이온배터리를 많이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지하자원이 없는 한국에서는 배터리 재료를 재활용하는 만큼 이익이 된다. 재활용 기술은 우리나라에 없는 자원을 기술의 힘으로 창조해 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이익은 수입산 목재로 만들어야 하는 종이나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재활용 분야에서 갖고 있는 두 번째 장점은 재활용에 필요한 재료, 즉 폐기물을 수집하기 좋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국민들은 분리수거를 잘하기로 따지자면 세계에서도 유별난 편에 속한다. 가까운 홍콩만 해도 2024년 상반기까지도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지 못 해 고생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1995년에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됐다.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하고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는 분리수거해 재활용하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체감한 지 이미 거의 30년, 한 세대가 지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주거 형태를 봐도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 모여 사는 아파트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도시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경향도 강하다. 이 역시 폐기물을 쉽게 모아서 재활용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캐나다처럼 넓은 땅에 사람들이 흩어져 사는 나라에서는 멀리 떨어진 이 집 저 집을 돌며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오는 일부터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그러나 한국은 재활용 쓰레기 모아 가는 날만 되면 아파트 동마다 사람들이 알아서 분리수거를 다 해 놓는다. 이런 곳은 재활용에 불리한 나라의 눈으로 보면 쓰레기 재활용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IT 산업이 발달해 있다는 장점까지 갖추고 있다. 쓰레기를 모으고 분류하고 종류에 맞게 재활용할 때, 자동으로 이 과정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나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 이런 일을 해내기에 우리나라 산업계는 적합하다. 이미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에 특화된 관리 시스템이 상용화되어 이곳저곳에 설치되고 있을 정도다.
세 번째로 한국은 폐기물 재활용을 해내기 위한 기술적인 바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폐기물 속의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속에서 가치 있는 성분만 골라내 추출하기 위한 화학 기술이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를 재활용하려면 배터리를 갈아 놓은 가루에서 가치 있는 금속만 녹여내서 뽑아 올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재질이 같은 플라스틱끼리만 모아서 열과 압력을 가해 모양을 다시 바꾸거나 플라스틱에서 다시 석유와 같은 기름 성분을 빼내는 등의 공정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화학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는 다른 화학 공장을 운영하면서 이미 이와 비슷한 공정을 경험해 본 업체가 많다. 하다못해 화학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인력도 여느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다.
과거 플라스틱 산업을 탄생시킨 과학자들이 있던 유럽은 그 과학을 발판으로 삼아 재활용 기술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쌓아 온 과학으로 재활용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충분히 나서 볼 만하다. 세계 전체에 걸쳐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또 세월이 흐를수록 지하자원은 점차 바닥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점의 문제일 뿐, 결국 전 세계에서 재활용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로 지난 세대의 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가 미래 세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꿈꾸어 보기에 재활용 산업은 아주 매력적인 분야다. 인삼으로, 또 반도체로 유명한 곳이었던 우리나라가 곧 전 세계에 자원 재활용과 쓰레기 처리 기술을 자랑하는 곳이 될 수 있다면 그만큼 나라의 앞날이 더 밝아지지 않을까?
곽재식 교수는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TV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갈 땐 주기율표》 등이 있다. KBS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김영철의 파워FM〉, 채널A〈인간적으로〉등 대중매체에서도 활약 중이다. 공학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