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 잡으면 돈 된다?” 액화탄산 시장 뒤흔들 친환경 기술, CCU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지만 여러 산업 분야에서 필수 자원으로도 사용된다. 이에 탄소 포집·활용(Carbon Capture, Utilization, CCU) 기술을 통해 산업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그 가운데 최근 SK에코플랜트가 산업용 가스 전문 기업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자회사로 편입 추진하며 CCU 역량 강화에 나섰다는데∙∙∙. 이산화탄소를 친환경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지금 확인해 보자.
전승민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여름이 되면서 아이스크림 수요가 늘었다. 얼마 전엔 온라인 쇼핑몰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는 것도 봤다. 택배로 아이스크림을 배송해 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드라이아이스’ 덕분이다. 최저 영하 78도까지 온도를 내려주니 더운 여름철 다양한 식품 배송에 이만한 보냉제를 찾기도 어렵다. 익히 알려진 대로 드라이아이스는 ‘이산화탄소’다. 액체 이산화탄소(액화탄산)를 재처리해 고체로 만들면 드라이아이스가 된다.
흔히 이산화탄소를 ‘지구온난화의 원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산화탄소는 주요 산업들의 필수 기반 중 하나다. 액화탄산이 없으면 단순히 식품배송이 어려워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나아가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현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배출은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액화탄산은 원활히 생산·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모순된 조건을 어떻게 하면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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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화탄산, 어떻게 만들어질까?
산업용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액체, 즉 액화탄산 형태로 유통된다. 액화탄산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추출한 후 이를 정제하고, 다시 액화해서 만든다. 보통 가스를 순수한 물속에 주입해 통과시키는 ‘세정법’이 이용되며, 숯으로 가스 속 불순물을 제거하는 ‘활성탄법’을 공정에 추가하기도 한다. 이후 가스 속에 남은 수분을 열로 제거하면 순수한 이산화탄소만 남는다. 이렇게 모은 이산화탄소를 액체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높은 압력만 가하면 액체로 변한다. 다만 많은 양의 가스를 넣고 한 번에 압력을 높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여러 개의 *고압 챔버(Hyperbaric Chamber)를 만들고 3~5단계 정도로 나누어 압력을 점차 높여 나가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고압 챔버: 인공적인 고압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금속제로 둘러싸 만든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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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아이스도 액화탄산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본래 기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섭씨 영하 78도 이하로 낮추면 그대로 드라이아이스 입자로 바뀌는데, 이 방법은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므로 좁은 노즐을 통해 액화탄산을 강한 압력으로 분사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 방법을 쓰면 액화탄산은 갑자기 부피가 증가하며 다시 기체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 일부가 ‘설상탄산’이라 부르는 고운 입자 형태로 변해 쌓인다. 이를 틀에 넣어 찍어낸 것이 드라이아이스다.
우리나라에 액화탄산이 공급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다. 주한미군이 중유(벙커C유)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를 액화탄산으로 만들어 공급했는데, 이것을 음료회사에서 보급받아 탄산음료(칠성사이다) 제조에 사용했다. 당시 액화탄산 생산량은 하루 2~3톤 정도로 소량이었다. 이후 1970년대 초 나주비료(현 LG화학)가 수소 제조공장의 배출가스를 모아 일일 30톤 규모의 액화탄산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대덕공업(현 태경케미컬)이 액화탄산을 받아 다시금 드라이아이스로 제조·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탄산시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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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부터 의약품 보관, 반도체 세척까지’ 다양한 산업에 필수
액화탄산의 사용을 중지하면 현대 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 2024년 현재 국내 액화탄산 생산능력은 하루 약 5,960톤으로, 매월 약 15만 톤씩 생산되고 있는데, 액화탄산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용접’ 분야로 국내 생산량의 약 50%가 쓰인다. 조선업, 중공업, 건설업 등의 산업은 용접 작업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용접기법 중에 ‘가스 메탈 아크 용접(GMAW, Gas Metal Arc Welding)’이라는 것이 있는데, 작업할 때 이산화탄소를 분사해 산소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용접 부위의 발화나 과잉용융 등을 막는다. 작업이 간편하고 속도도 월등해 대체방법을 찾기 어렵다. 조선업의 경우 전체 용접 작업 중 절반 정도는 이 방법을 쓴다.
드라이아이스 제조에는 전체 액화탄산 생산량의 20% 정도가 쓰인다. 드라이아이스 역시 다양한 산업에 고루 사용된다. 정밀산업 분야에선 ‘초저온 세척’ 방식이 자주 쓰이는데, 드라이아이스를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 사용한다. 첨단산업을 이끄는 반도체도 이 드라이아이스 가루로 씻는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액화탄산 수요는 전체 생산량의 5% 수준인데, 앞으로 반도체 산업이 계속 성장하면서 많게는 1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백신이나 생체조직 보존 등에 드라이아이스가 필수적인 의약품 산업, 맥주나 탄산음료 등을 만드는 식음료 산업, 화학산업 등 액화탄산은 다양한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지속 생산∙유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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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액화탄산, 환경 영향 줄일 방법을 찾다
이산화탄소인 액화탄산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면 환경에 나쁠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유리한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정밀산업 분야에서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초저온 세척을 포기하면, 그 대신 수질이나 토양 등을 직접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화학물질 세척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또 사용한 후에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려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된다.
환경을 위해 우리가 당장 석유 사용을 멈출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석유를 포기하는 것은 현대 문명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겠지만, 당장은 석유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석유 시추 과정에서 유전 내부의 압력을 높이기 위해 대량의 물을 주입하곤 하는데, 최근엔 이 과정을 이산화탄소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석유만 뽑아내고 이산화탄소는 유전 속에 남겨둔 채 가스전의 입구를 막아, 대기로 배출되지 않도록 매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뽑아낸 석유가 결국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석유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처럼 생산 과정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노력이다.
액화탄산 역시 같은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액화탄산이 필수 자원인 것이 현실이라면, 당장은 이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이 ‘CCUS’ 기술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Carbon)를 포집(Capture)해 활용(Utilization) 또는 저장(Storage)한다는 의미로, 공장이나 발전소 등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다시금 산업 등에 사용하거나 안전한 곳에 저장하는 것을 뜻한다. CCUS는 다시 CCS(저장)과 CCU(활용)로 구분할 수 있는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유전 속에 밀어 넣어 버리는 것은 CCS, 액화탄산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은 CCU의 종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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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인 액화탄산 생산방법은?
우리나라에서 공장이나 발전소 등의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식, 즉 진정한 의미의 CCU로 생산된 액화탄산은 전체 생산량의 10~15% 정도다. 그 외 대부분은 석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을 수집한 것이며, 이는 처음부터 농도 95%를 넘어서는 고순도 기체 형태로 얻어진다.
물론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저장하는 것이 더 친환경적이다. 이산화탄소가 일단 산업에 활용되면 온실가스 형태로 대기 중에 배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듯 현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정량 이상의 액화탄산이 필요해, 지금까지는 석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저장하지 못 하고 액화해 활용해야 했다. 이 말은 기존에는 공장이나 발전소 등에서 그냥 대기 중으로 배출해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액화탄산으로 활용하는 비중을 늘리면, 석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그대로 저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CCU를 통한 액화탄산 생산, 이른바 CCL(Carbon Capture and Liquefaction)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산화탄소의 매립 비율을 늘릴 수 있으며,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에너지·환경 기업들이 CCL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는 SK에코플랜트를 꼽을 수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부터 한국남부발전 영월빛드림본부 강원도 영월 연료전지 발전소 내 설비된 300kW 규모의 연료전지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한 뒤 액화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는 등 CCL 기술 고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 더해, SK에코플랜트는 최근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자회사로 편입하기도 했는데,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는 산업용 가스를 제조·공급하는 기업으로 고순도 액화탄산 제조 역량 역시 뛰어나다. 이번 편입 역시 향후 기업 전체의 CCL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산화탄소 생산 과정을 혁신하려면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석유정제 과정에서 얻어진 이산화탄소의 지중매립도 유도해야 하며, 기존 액화탄산 생산방식을 CCL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서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쌓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산업계에서 액화탄산을 사용하는 방법은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화학적 변환과정을 통해 시멘트 등의 건축자재를 만들거나,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거나, 다양한 유기 혹은 화합물 생산용 재료로 사용하는 등의 CCU가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때가 돼도 이산화탄소는 결국 액화탄산 형태로 유통될 수밖에 없다. 액화탄산의 친환경 생산 기술을 높여 나가는 것이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하는 데 있어 기본이 돼야 하는 이유다.
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의 편집장으로 있으며, 동시에 과학 및 기술, 의학 분야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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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산화탄소를 ‘지구온난화의 원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산화탄소는 주요 산업들의 필수 기반 중 하나다. 액화탄산이 없으면 단순히 식품배송이 어려워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나아가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현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배출은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액화탄산은 원활히 생산·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모순된 조건을 어떻게 하면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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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화탄산, 어떻게 만들어질까?
산업용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액체, 즉 액화탄산 형태로 유통된다. 액화탄산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추출한 후 이를 정제하고, 다시 액화해서 만든다. 보통 가스를 순수한 물속에 주입해 통과시키는 ‘세정법’이 이용되며, 숯으로 가스 속 불순물을 제거하는 ‘활성탄법’을 공정에 추가하기도 한다. 이후 가스 속에 남은 수분을 열로 제거하면 순수한 이산화탄소만 남는다. 이렇게 모은 이산화탄소를 액체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높은 압력만 가하면 액체로 변한다. 다만 많은 양의 가스를 넣고 한 번에 압력을 높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여러 개의 *고압 챔버(Hyperbaric Chamber)를 만들고 3~5단계 정도로 나누어 압력을 점차 높여 나가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고압 챔버: 인공적인 고압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금속제로 둘러싸 만든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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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아이스도 액화탄산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본래 기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섭씨 영하 78도 이하로 낮추면 그대로 드라이아이스 입자로 바뀌는데, 이 방법은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므로 좁은 노즐을 통해 액화탄산을 강한 압력으로 분사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 방법을 쓰면 액화탄산은 갑자기 부피가 증가하며 다시 기체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 일부가 ‘설상탄산’이라 부르는 고운 입자 형태로 변해 쌓인다. 이를 틀에 넣어 찍어낸 것이 드라이아이스다.
우리나라에 액화탄산이 공급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다. 주한미군이 중유(벙커C유)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를 액화탄산으로 만들어 공급했는데, 이것을 음료회사에서 보급받아 탄산음료(칠성사이다) 제조에 사용했다. 당시 액화탄산 생산량은 하루 2~3톤 정도로 소량이었다. 이후 1970년대 초 나주비료(현 LG화학)가 수소 제조공장의 배출가스를 모아 일일 30톤 규모의 액화탄산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대덕공업(현 태경케미컬)이 액화탄산을 받아 다시금 드라이아이스로 제조·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탄산시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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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아이스 제조에는 전체 액화탄산 생산량의 20% 정도가 쓰인다. 드라이아이스 역시 다양한 산업에 고루 사용된다. 정밀산업 분야에선 ‘초저온 세척’ 방식이 자주 쓰이는데, 드라이아이스를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 사용한다. 첨단산업을 이끄는 반도체도 이 드라이아이스 가루로 씻는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액화탄산 수요는 전체 생산량의 5% 수준인데, 앞으로 반도체 산업이 계속 성장하면서 많게는 1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백신이나 생체조직 보존 등에 드라이아이스가 필수적인 의약품 산업, 맥주나 탄산음료 등을 만드는 식음료 산업, 화학산업 등 액화탄산은 다양한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지속 생산∙유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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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액화탄산, 환경 영향 줄일 방법을 찾다
이산화탄소인 액화탄산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면 환경에 나쁠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유리한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정밀산업 분야에서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초저온 세척을 포기하면, 그 대신 수질이나 토양 등을 직접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화학물질 세척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또 사용한 후에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려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된다.
환경을 위해 우리가 당장 석유 사용을 멈출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석유를 포기하는 것은 현대 문명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겠지만, 당장은 석유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석유 시추 과정에서 유전 내부의 압력을 높이기 위해 대량의 물을 주입하곤 하는데, 최근엔 이 과정을 이산화탄소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석유만 뽑아내고 이산화탄소는 유전 속에 남겨둔 채 가스전의 입구를 막아, 대기로 배출되지 않도록 매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뽑아낸 석유가 결국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석유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처럼 생산 과정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노력이다.
액화탄산 역시 같은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액화탄산이 필수 자원인 것이 현실이라면, 당장은 이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이 ‘CCUS’ 기술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Carbon)를 포집(Capture)해 활용(Utilization) 또는 저장(Storage)한다는 의미로, 공장이나 발전소 등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다시금 산업 등에 사용하거나 안전한 곳에 저장하는 것을 뜻한다. CCUS는 다시 CCS(저장)과 CCU(활용)로 구분할 수 있는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유전 속에 밀어 넣어 버리는 것은 CCS, 액화탄산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은 CCU의 종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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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인 액화탄산 생산방법은?
우리나라에서 공장이나 발전소 등의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식, 즉 진정한 의미의 CCU로 생산된 액화탄산은 전체 생산량의 10~15% 정도다. 그 외 대부분은 석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을 수집한 것이며, 이는 처음부터 농도 95%를 넘어서는 고순도 기체 형태로 얻어진다.
물론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저장하는 것이 더 친환경적이다. 이산화탄소가 일단 산업에 활용되면 온실가스 형태로 대기 중에 배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듯 현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정량 이상의 액화탄산이 필요해, 지금까지는 석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저장하지 못 하고 액화해 활용해야 했다. 이 말은 기존에는 공장이나 발전소 등에서 그냥 대기 중으로 배출해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액화탄산으로 활용하는 비중을 늘리면, 석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그대로 저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CCU를 통한 액화탄산 생산, 이른바 CCL(Carbon Capture and Liquefaction)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산화탄소의 매립 비율을 늘릴 수 있으며,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에너지·환경 기업들이 CCL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는 SK에코플랜트를 꼽을 수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부터 한국남부발전 영월빛드림본부 강원도 영월 연료전지 발전소 내 설비된 300kW 규모의 연료전지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한 뒤 액화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는 등 CCL 기술 고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 더해, SK에코플랜트는 최근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자회사로 편입하기도 했는데,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는 산업용 가스를 제조·공급하는 기업으로 고순도 액화탄산 제조 역량 역시 뛰어나다. 이번 편입 역시 향후 기업 전체의 CCL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산화탄소 생산 과정을 혁신하려면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석유정제 과정에서 얻어진 이산화탄소의 지중매립도 유도해야 하며, 기존 액화탄산 생산방식을 CCL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서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쌓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산업계에서 액화탄산을 사용하는 방법은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화학적 변환과정을 통해 시멘트 등의 건축자재를 만들거나,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거나, 다양한 유기 혹은 화합물 생산용 재료로 사용하는 등의 CCU가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때가 돼도 이산화탄소는 결국 액화탄산 형태로 유통될 수밖에 없다. 액화탄산의 친환경 생산 기술을 높여 나가는 것이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하는 데 있어 기본이 돼야 하는 이유다.
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의 편집장으로 있으며, 동시에 과학 및 기술, 의학 분야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