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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수소’는 따로 있다?”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수전해’ 기술 총정리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얻는 ‘수전해(水電解)’ 기술이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다. 가장 깨끗한 청정수소, 이른바 ‘그린수소’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전해 기술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또 앞으로 수전해 기술은 어떻게 발전해 나가게 될까?

전승민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어릴 적 과학시간에 ‘물(H₂O)에서 수소(H)와 산소(O)를 추출하는 실험’을 해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매우 간단한 실험이었다. 건전지의 음(-)극과 양(+)극, 양 끝에 얇은 금속판을 각각 전선으로 연결하고, 그 두 개의 금속판을 실험용 비커 속에 담아둔 물속에 퐁당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잠시만 기다리면 두 개의 금속판 표면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음극 쪽에서 발생하는 거품이 수소, 양극 쪽에서 발생하는 거품이 산소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이해할 수 있는 이 단순한 실험은 가장 기초적인 ‘수전해(水電解)’ 과정이다. 글자 그대로 물을 전기로 분해한다는 뜻이다. 이런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수소는 대단히 얻기 쉬운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수소를 만들어 보는 단순한 실험에 불과하다. 이 방법 그대로 수소 생산 공정을 설계하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전해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수소 생산 기술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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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해 기술이 꼭 필요한 이유

우선 기본부터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왜 수소를 ‘청정에너지’라고 부르는 것일까? 태우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와 달리, 수소는 태워도(산소와 반응해도) 수증기로 바뀔 뿐이다. 즉 이론상 환경오염이 전혀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소는 ‘완벽한 에너지’ 같지만, 현실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소를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환경을 오염시켰다면, 수소를 태울 때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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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수소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수소는 ‘그레이수소’다. 그레이수소는 천연가스의 주성분, 즉 메탄(CH₄)에 열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탄소(C)를 떼어내고 남은 수소(H)를 갈무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현재로선 가장 값싸게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 과정에서 분리돼 나온 탄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이산화탄소(CO₂)’로 바뀌어 대기 중에 배출되므로 환경적으로 이익될 것이 거의 없다. 석유 정유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겨나는 부생수소도 그레이수소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수전해로 생산한 수소에는 어떤 이름이 붙을까? 일단 수전해를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한데, 화석연료를 투입해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다시 수소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바보 같은 일이다. 공연히 에너지 변환만 두 단계를 더 거치는 격이며, 그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도 많다. 천연가스나 석유를 그대로 에너지로 이용하는 것보다 환경을 도리어 더 오염시키고 가격만 더 비싸질 것이다. 결국 수전해 기술이 가치가 있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다. 에너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에너지, 즉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 지열,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통해 물을 분해하는 경우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수소를 ‘그린수소’라고 부른다.

하지만, 현재 그린수소가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을 찾아보긴 대단히 힘들다. 세계 수소 생산량의 약 99%는 그레이수소이며, 그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연간 8만 3,000톤에 달한다(IRENA, 2020). 앞으로 그린수소 비중을 높여 나가지 않는다면, 수소는 결국 친환경 에너지로 대우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그레이수소의 가격은 1㎏당 1.50달러지만, 그린수소의 가격은 1㎏당 5달러로 그보다 3배 이상 비싸다(IEA,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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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 내려진 특명, “효율을 높여라”

그래서 과학기술자들은 수전해 효율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전기분해가 좀 더 쉽게 일어나도록 촉매를 넣는 방법 △수백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물을 가열해 반응속도를 높이는 방법 △전기의 흐름을 돕기 위해 두 전극 사이에 특수 소재의 격막을 설치해 주는 방법 등 수많은 관련 기술들이 연구 중에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효율은 얼마나 향상될까?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최소 수 배, 최대 수십 배 이상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건 의외로 국내 연구진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관련 기술이 뛰어난 덕분이다. 수전해 효율을 높이려면 촉매로 쓰이는 금속 물질을 정교하게 설계해 전기의 흐름을 통제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는 반도체 기술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

반도체 기술로 75배 높은 고효율 수소 생산 기술 개발. (출처: YTN사이언스 공식 유튜브 채널)

2023년 9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기술도 반도체 기술이 응용된 사례다. 수전해 공정에서 촉매로 사용하는 물질 중 ‘이리듐(Ir)’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일정 시간 이상 사용하면 전자가 소모되고 촉매가 산화되면서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듐 촉매가 잃어버린 전자를 다른 지지체로부터 보충받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때 활용된 것이 바로 반도체 기술이다. 지지체를 반도체 생산 시 활용되는 ‘초미세패턴’ 가공기술을 통해 ‘안티모네(Sb)’라는 물질이 뒤덮인 주석 산화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산화물 표면에서 ‘전자 저장소’ 역할을 할 산소 이온 역시 반도체 *증착 기술로 쌓아 올린 것이다. 이렇게 처리한 지지체를 이리듐 촉매에 적용한 결과, 현재 상용화돼 있는 ‘나노입자’ 방식 촉매에 비해 최대 75배 개선된 성능을 보였는데, 이는 수전해 공정에 쓰이는 촉매 중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증착: 진공 상태에서 금속이나 화합물을 가열·증발시켜 그 증기를 물체 표면에 얇은 막으로 입히는 기술.

2024년 1월,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KAIST 연구진은 수전해 과정에서 쓰이는 촉매의 가격을 크게 낮춘 연구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보통 촉매로 쓰이는 이리듐, 티타늄(Ti), 백금(Pt), 금(Au) 등과 같이 값비싼 귀금속 대신 저렴하면서도 구조 안정성이 높은 ‘루테늄(Ru)’으로 눈을 돌렸다. 루테늄은 기존 귀금속 촉매 대비 가격이 13~25% 낮고,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어 친환경 금속으로 구분된다. 다만 촉매로 사용할 경우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데, 연구진은 루테늄 원자 주변에 텅스텐과 실리콘을 결합한 구조를 개발해 효율을 높였다. 그리고 여기에도 역시 반도체 개발에 쓰이는 초정밀 소재 가공기술이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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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효과적인 수전해 방식은?

수전해 방식은 크게 4가지다. 전기가 잘 흐르도록 물속에 녹여 넣는 전해질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전기가 흐르는 과정을 통제하기 위해 중간에 설치하는 격막(이온교환막)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알칼라인수전해(Alkaline Water Electrolysis, AWE) △양이온교환막수전해(Proton Electrolyte Membrane water electrolysis, PEM), 음이온교환막수전해(Anion Exchange Membrane water electrolysis, AEM), 고체산화물수전해(Solid Oxide Electrolysis Cell, SOEC)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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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식은 AWE다. 네 가지 방식 중 가장 ‘가격대비 성능비’가 좋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싼 귀금속을 전극이나 촉매로 사용하지 않아 초기 시설비도 싸다. 이에 약 936MW 규모의 세계 수전해 시설 설치 용량 중 75%가 AWE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20, Hydrogen Europe).

PEM 방식은 수전해 시 수소에 산소가 섞여 들어가는 ‘크로스오버’ 현상이 대단히 적은 것이 장점이다. 이 말은 수소를 안정적으로, 또 높은 압력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향후 대량생산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강한 산성 조건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는 전극이나 촉매 등의 금속 부품도 내구성이 높은 고가의 소재, 예를 들어 이리듐, 티타늄, 백금, 금 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연구 동향도 이런 귀금속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 개발, 효율을 극도로 높여 사용되는 귀금속의 양을 최소화하는 방법 등에 맞춰져 있다.

AEM은 AWE처럼 알칼라인 수용액을 사용해 값이 싼 다양한 금속을 사용할 수 있으며, PEM 방식처럼 고압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구성이 약하다’는 큰 단점이 있어, 합금 기술 등을 통해 촉매 구성물질의 성질을 변화시키거나 수전해 장치의 내부구조를 개선해 전반적인 수명을 향상시키는 기술 등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SOEC 방식은 ‘고온수증기분해’ 방식이라고도 불린다. 특징은 작동 온도가 높다는 것이다. 다른 수전해 방식은 작동 온도가 보통 섭씨 수십 도 정도인데, SOEC 방식은 700~900도에 달한다. 그만큼 효율이 높아 투입하는 전기용량 대비 생산할 수 있는 수소의 양이 가장 많다. 다만, 고온 환경에서 동작하는 만큼 기기 설비의 수명이 비교적 짧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특히 주로 사용되는 니켈(Ni) 전극의 경우 고온의 높은 수증기 때문에 조금씩 증발되거나 구조가 변형되는 문제가 자주 보고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를 찾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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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방식 ‘SOEC’가 대세될까

저마다 장단점이 있어, 네 가지 수전해 방식 중 어느 것이 가장 뛰어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가장 새로운 방식인 SOEC가 최근 수전해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SOEC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현행법상 ‘수전해 설비’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지난해 ‘제3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통해 SOEC로도 수소·에너지 분야 실증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높은 효율과 함께 고온의 열을 생산하는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의 공정과 연계하기 쉬운 SOEC의 장점들이 인정받은 결과다.

이 실증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바로 ‘SK에코플랜트’다. SK에코플랜트는 2023년 12월부터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하는 ‘제주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에 참여했는데, 총 12.5㎿ 규모의 전체 사업분 중 1.8㎿에 해당하는 분량을 SOEC 설비로 생산키로 했다. 실증시설의 완공 시점은 2025년으로 예정돼 있다. SOEC 설비를 이용해 ㎿급 전력을 그린수소 생산에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에코플랜트의 SOEC 실증 설비.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국내 최초로 SOEC를 활용한 수소 생산 실증에 성공했다.

수소는 취급하기에 따라 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차세대 연료다. 그리고 이런 수소를 진정 ‘수소답게’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수전해다. 과거에는 수전해 기술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극심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수전해는 차세대 핵심기술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소 연료의 특성을 이해한 올바른 에너지 정책으로 다가올 수소시대를 주도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전승민 기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과학팀장, 과학동아 기자,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의 편집장으로 있으며, 동시에 과학 및 기술, 의학 분야 저술가로서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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