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아무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도, 초반 승패가 기운 경기라도, 극적인 순간은 거짓말처럼 찾아온다.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가 남자든, 여자든, 그리고 장애인이든 누구나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관중들은 선수가 만들어낸 드라마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드라마를 보여줄 그 가능성! SK에코플랜트는 바로 이 스포츠 정신을 오롯이 가져와 2020년 7월,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했다. 특히 단순 후원이 아닌 고용이라는 새로운 모델로,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 선수들에게 고용 안정과 훈련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SK에코플랜트의 장애인 선수단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장애인 선수단의 숨은 조력자인 SK에코플랜트 Talent팀 안문용, 최웅비 프로에게 장애인 선수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SK에코플랜트가 장애인 선수단을 만든 배경은?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 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재능 나눔 행사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장애인 선수단 담당자로서 장애인에 대한 생각 역시 남다를 것 같다.
안문용 프로(이하 ‘안’): 아무래도 장애인 선수단 창단부터 지금까지 관리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창단 전보단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에 대한 이해도나 관심이 커진 만큼 그 의미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최웅비 프로(이하 ‘최’): 음… 첫 질문부터 어렵다. (웃음) 개인적으로 일상의 다양한 면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까. 장애인 선수단 업무를 하면서 비장애인의 눈이 아닌 장애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많이 열린 것 같다.
장애인 선수단 창단은 외부인이 바라봤을 때도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장애인 선수단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안: 2019년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위한 SK그룹 차원에서의 고용 확대 약속 이후, 그룹 전체의 장애인 고용이 60%나 확대되었다. 하지만 SK에코플랜트(당시 SK건설)는 2019년 말 기준 1.74%를 기록했다.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 3.1%에도 못 미치는 결과였다.
HR을 담당하는 조직으로서 내부적으로 장애인 고용을 높이기 위한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우리가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비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근로의 가치를 느끼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장하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고심을 하던 중, 본사 사무직 장애인 구성원에게 장애인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운동을 하고 싶지만 지원체계가 부족한 장애인 선수들에게 후원이나 고용 지원이 가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실태조사를 해보니 대부분의 장애인 운동선수들이 소속이 없는 것은 물론, 지자체 체육센터에서 제대로 된 관리나 지도도 없이 훈련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중증 장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고용의 형태를 통해 그들이 진정한 자립과 자아실현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어려움은 없었나?
안: 후원이 아닌 고용의 개념으로, 이렇게 다양한 종목의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하는 경우는 거의드문 일이었다. 또한 스포츠 선수라는 직무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도 활성화된 직무가 아니었고 민간기업의 적용 사례가 많지 않아 고용 모델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먼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고용 형태의 장애인 선수단 창단을 먼저 제안했고, 서울시장애인체육회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다.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중증 장애인 고용 확대’, 서울시장애인체육회는 ‘우수 선수 지원 및 확보’, 그리고 우리측은 ‘취약계층 고용 창출’이었다. 이런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 두 기관과 MOU를 맺어 본격적인 선수단 창단을 추진했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고용 지원을, 서울시장애인체육회는 훈련과 육성을, 그리고 우리는 급여와 관리를 각각 담당하면서 고용 모델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장애인 선수들의 꿈과 희망을 위한 조력자들의 노력!
이런 준비 과정을 통해 2020년 7월 9일 장애인 선수단이 창단되었다. 창단 당시 5개 종목 17명이었는데, 이제 7개 종목 32명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이 모델이 안정화, 활성화되고 있는 걸 증명하는 듯하다.
최: 사이클, 탁구, 펜싱, 태권도, 역도 등 5개 종목에서 현재는 볼링과 육상이 추가되었다. 비장애인 선수단의 경우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지만, 우리 장애인 선수단은 선수 개개인이 운동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과 자기 발전을 가장 큰 목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다양한 종목에서 많은 선수들을 고용해 이러한 기회를 주고자 선수단의 규모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안: 현재는 SK에코플랜트뿐 아니라, 다수의 기업이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장애인 선수들에게 고용과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고, 운동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우리 장애인 선수단 모델의 사회적 가치가 입증된 것이라 본다.
고용의 형태인 만큼 선수들의 채용 면접도 직접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기억 남는 선수가 있나?
안: 정말 다양한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 2020 도쿄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K44(한쪽 팔 장애 중 팔꿈치 아래 마비 또는 절단 장애가 있는 유형), -75Kg급 동메달리스트 주정훈 선수를 비롯해, 중도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사이클의 조은경 선수 등 거의 모든 선수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특히 조은경 선수는 면접 당시에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선천적 장애보다 중도 장애가 생길 경우 더욱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데, 운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재활센터에서 요가 강사를 할 만큼 활기차게 살아가는 선수의 모습을 보며 내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 지적장애를 가진 역도 선수도 마음에 많이 남는다. 면접 질문으로 ‘왜 운동하고 싶냐’고 물었는데, 그 선수가 ‘빨리 돈 벌어서 엄마 소고기 사주고 싶다’고 하더라. 그 말에 마음이 참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한계를 넘어 최고를 향해 노력하는 SK에코플랜트 장애인 선수단 (출처 : SK에코플랜트공식 유튜브 채널)
저마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갖고 운동으로 꿈을 이루려는 그 자체가 감동이다.
안: 우리 선수들 거의 다 인간극장에 나올 만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장애에 대한 재활의 목적으로 운동을 접했다가 선수로서의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정말 열심히 훈련에 임한다. 더불어 이러한 선수들의 훈련은 SK에코플랜트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있듯, 장애인 선수들의 경우 상시 훈련과 각종 대회 참가를 주요 업무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장애인 선수단의 훈련은 그들의 꿈을 이루는 것임과 동시에 소중한 노동의 가치 역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운동에 매진 중인 선수들만큼이나 그들의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최: Talent팀은 전사의 채용, 구성원들의 교육, 복지 등 HR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 선수들 역시 우리 회사에 고용된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다. 특히 재직증명서 발급 같은 행정적인 부분, 복리후생, 급여 등에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 또한 선수단의 규모가 커진 만큼 전담 구성원을 배치해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좀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안: 각 구성원들의 직무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인 만큼 창단 초기 장애인 선수들과 종목별로 훈련을 함께해봤다. 한번은 장애인 탁구 선수와 연습게임을 했는데,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좌절 아닌 좌절을 경험했다. 텐덤사이클(앞자리에서 방향을 잡는 비장애인 파일럿과 뒷자리에서 발의 속도를 내는 장애인 선수의 2인용 사이클 운동)도 타봤는데, 생각보다 되게 무섭더라. 내가 길잡이를 해야 하는데, 균형을 못 잡고 떠니까 선수가 괜찮다고 토닥이며 이끌어줬다. (웃음) 이렇게 그들의 입장에서 경험해 보니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걸 해내고 있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았다. 항상 그때의 생각과 마음으로 장애인 선수단을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 선수들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
4월 20일 있었던 장애인 선수단의 재능기부 행사는 서울삼성학교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안: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부족한 장애인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전문 운동선수로서의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 특히 서울삼성학교 출신인 김서영 선수(탁구), 이한 선수(태권도)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직접 진행하였는데, 학교 선배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큰 의미로 전달되었길 바란다. 청각장애인 올림픽인 데플림픽(Deaflympics)의 태권도 3관왕이자 전 국가대표 코치, 임대호 선수도 스포츠 선수로의 진로 방향과 성공 경험을 주제로 수어(手語) 강연을 진행하는 등 진정성 있는 행사로 학생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최: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수어를 모르는 청각장애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여러가지 부분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에 대해 많이 깨닫고 배웠다. 이번 행사 이후 하반기에는 SK에코플랜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선수단의 재능 기부 행사를 준비 중인데, 온라인에서 짧게 보고 끝내는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이 아닌, 함께 운동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통해 다른 구성원들도 장애인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느끼고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선수단을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안: 장애인 선수단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우리 선수들에게 삶의 활력소인 운동에 매진할 구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이를 바탕으로 성취감을 얻을 기회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SK에코플랜트 역시 장애인 고용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 취약 계층인 중증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점, 이를 통해 그들의 삶에 희망을 싹 틔울 수 있도록 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그 희망의 싹이 멋지게 성장할 기회가 열린다고 알고 있다. 담당자로서 기대하는 바도 클 것 같은데.
안: 5월에 열리는 ‘2021 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탁구 김서영 선수 출전) 오는 10월에 열리는 ‘항저우 장애인 페러게임’이 있다. 작년 주정훈 선수처럼 좋은 소식이 전해지면 좋겠지만, 성적보다는 성장이 최우선이다. 모든 선수가 순위에 상관없이 자신이 노력한 그 이상의 결과를 얻고, 그 힘으로 한 단계 성장하길 바란다.
최: 창단 2주년에 맞춰 조만간 새로운 선수복도 마련할 예정인데, 선수들에게 작은 기쁨과 동기 부여가 되길 바란다. 아직 코로나 19라는 장벽이 있지만, 좀 더 자주 선수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조력자 역할에 더욱 매진하고 싶다.
두 조력자가 소속된 Talent팀은 장애인 선수단 운영과 함께 전사 채용 및 구성원 육성을 담당하는 부서다. 자신의 주요 업무 특성상 가진 직업병을 물어보니 그들이 채용한 구성원을 마주치면 이름보다 그 구성원의 경력과 히스토리가 떠오른다고 한다. 장애인 선수들도 마찬가지. 그래서일까. 이들은 각자 역경을 극복하고 운동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더 마음을 쏟고, 배움을 얻는다. 장애인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조력자, 안문용, 최웅비 프로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