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12㎝로 줄어들면 환경오염도 줄어들까? <다운사이징>
사람이 작아지면 자원의 낭비도, 환경오염도 줄 거라는 과학자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현실이 됐다! 작아진 인류는 정말 위기에 처한 지구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2022년 세계 인구는 80억 명에 도달했다. 이는 25억 명이었던 지난 1950년과 비교할 때 3배 이상 늘어난 규모. 하지만 급격하게 오른 인구 데이터 속에는 지구를 위협하는 ‘문제적 숫자’들도 숨어 있다.
실시간 세계 통계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Worldometer’에 따르면, 이 많은 전 세계 인구가 2022년 한 해 동안 소비한 물의 양은 7,847조 8,230억 리터, 이산화탄소 배출량 345조 3,192만 9,635톤, 사라진 숲의 면적 492만 4,358헥타르이며,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사람의 수는 8억 6,587만 7,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인구 과잉으로 발생한 환경오염과 식량 부족 등의 문제를 ‘사람 크기 축소’라는 기발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의 부피가 2,744분의 1로 작아진다면,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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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쓰레기와 자원 소비량까지 줄어드는 소인들의 세계
쓰레기와 자원 소비량까지 줄어드는 소인들의 세계
평생 같은 집에 살면서 10년째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때우며 궁핍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폴(맷 데이먼 역). 아내의 소원대로 야심 차게 이사를 준비해보지만, 대출 조건이 되지 않아 그마저도 무산되고 만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쪼들리는 집안 사정에 힘들어하던 폴은 우연히 TV에서 인간 축소 프로젝트인 ‘다운사이징(Downsizing)’ 기술을 접하게 된다.
다운사이징을 발명한 개발자는 인간의 부피가 2,744분의 1로 작아지면 먹는 양도, 버리는 양도 줄어들어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다운사이징된 사람 36명이 4년간 배출한 불연성 폐기물은 10리터짜리 비닐봉지에 다 담길 정도. 게다가 1억 원의 재산이 120억 원의 가치가 될 것이라며, 다운사이징을 ‘왕처럼 살 기회’라고 홍보한다. 이 말을 들은 폴은 다운사이징만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며 아내와 시술을 받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12.7㎝의 사람이 된 폴의 옆에 아내는 없었다. 아내가 가족과 친구 곁을 떠날 수 없다며 다운사이징을 취소하고 도망가버렸기 때문. 난생처음 경험하는 경제적 여유와 이혼의 슬픔을 동시에 겪고 있던 폴은 어느 날 우연히 강제로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다가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은 베트남 여성 녹란(홍 차우 역)을 알게 되고, 청소 도우미 일을 하면서 허름한 집에서 사는 그녀의 삶을 보며 다운사이징 세상에도 여전히 빈부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녹란의 다리를 낫게 하기 위해 다운사이징 개발자가 있는 노르웨이의 세계 최초 소인 마을을 방문한 폴과 녹란. 그곳에서 만난 다운사이징 개발자는 공기 오염, 급수 문제, 식량 부족, 기후 변화 등의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가 곧 멸종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 멸종에 대비하기 위해 암석 깊은 곳에 벙커 마을을 조성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폴. 하지만 녹란은 멸종에 대비하자고 현재의 행복을 등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서로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러나 결국 벙커로 향하는 길에서 폴이 현재 주어진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녹란의 말을 떠올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원래 살던 다운사이징 세계로 녹란과 함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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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염과 식량 부족은 정말로 인구 과잉 때문일까?
영화 <다운사이징>이 개봉됐을 때, 사람 크기를 줄여 인구 과잉을 해결한다는 아이디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영화 속 설정처럼 정말로 인구 과잉이 환경오염이나 식량부족과 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 걸까?
인구 과잉을 환경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인구가 늘어날수록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점점 파괴될 거야.’ 하지만, 식량 생산량과 탄소 배출량 등의 환경 오염 수치를 분석해 보면 이 주장에는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98년 인구 과잉론을 주창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는 “인류는 식량 생산량보다 빠르게 증가해 굶주림과 질병,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만큼 농업 생산성도 향상해 그의 이론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업 국가의 비축 식량은 필요량보다 많아 과잉 상태다. 세계인들의 주식인 곡물만 보더라도 1961년 이후부터 2021년까지 수확량은 인구에 비례해 꾸준히 늘어났다. 즉 오늘날의 식량문제는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란 이야기다.
인구 과잉이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주장 역시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환경오염은 인구보다는 각각의 사회가 얼마나 산업화되어 있는지, 얼마나 소비지향적인 삶을 사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전체 인구가 비슷한 우간다의 136배에 달한다(2018년 기준, EU <전 세계 CO2 및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서>). 이처럼 단순히 인구와 환경 오염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미국의 사회과학기관 연구단체인 우드로 윌슨 센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WWICS)의 연구원 제니퍼 시우바는 “환경 오염의 원인을 인구 과잉으로 돌리는 것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해롭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컨과 야외 수영장, 그리고 육식이 인구보다 환경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준다”고 이야기했다. 할인 행사에 휩쓸려 과도하게 쇼핑하거나 유행에 따라 이미 있는 물건을 또 사는 것, 육식을 너무 많이 하거나 플라스틱 용기가 많이 나오는 포장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이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훨씬 지구에 해롭다는 말이다.
지구 환경에 필요한 것은 인구 억제 정책이나 다운사이징 같은 기술이 아닌 친환경적인 소비 습관이다. 의식주 생활 속에서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영역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자. 물건을 살 때 내 장바구니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따져 보자. 이 약속만 지킨다면 인구나 사람 크기를 줄이지 않아도 살기 좋은 지구를 가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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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세계 통계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Worldometer’에 따르면, 이 많은 전 세계 인구가 2022년 한 해 동안 소비한 물의 양은 7,847조 8,230억 리터, 이산화탄소 배출량 345조 3,192만 9,635톤, 사라진 숲의 면적 492만 4,358헥타르이며,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사람의 수는 8억 6,587만 7,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인구 과잉으로 발생한 환경오염과 식량 부족 등의 문제를 ‘사람 크기 축소’라는 기발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의 부피가 2,744분의 1로 작아진다면,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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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을 발명한 개발자는 인간의 부피가 2,744분의 1로 작아지면 먹는 양도, 버리는 양도 줄어들어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다운사이징된 사람 36명이 4년간 배출한 불연성 폐기물은 10리터짜리 비닐봉지에 다 담길 정도. 게다가 1억 원의 재산이 120억 원의 가치가 될 것이라며, 다운사이징을 ‘왕처럼 살 기회’라고 홍보한다. 이 말을 들은 폴은 다운사이징만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며 아내와 시술을 받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12.7㎝의 사람이 된 폴의 옆에 아내는 없었다. 아내가 가족과 친구 곁을 떠날 수 없다며 다운사이징을 취소하고 도망가버렸기 때문. 난생처음 경험하는 경제적 여유와 이혼의 슬픔을 동시에 겪고 있던 폴은 어느 날 우연히 강제로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다가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은 베트남 여성 녹란(홍 차우 역)을 알게 되고, 청소 도우미 일을 하면서 허름한 집에서 사는 그녀의 삶을 보며 다운사이징 세상에도 여전히 빈부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녹란의 다리를 낫게 하기 위해 다운사이징 개발자가 있는 노르웨이의 세계 최초 소인 마을을 방문한 폴과 녹란. 그곳에서 만난 다운사이징 개발자는 공기 오염, 급수 문제, 식량 부족, 기후 변화 등의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가 곧 멸종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 멸종에 대비하기 위해 암석 깊은 곳에 벙커 마을을 조성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폴. 하지만 녹란은 멸종에 대비하자고 현재의 행복을 등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서로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러나 결국 벙커로 향하는 길에서 폴이 현재 주어진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녹란의 말을 떠올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원래 살던 다운사이징 세계로 녹란과 함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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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과잉을 환경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인구가 늘어날수록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점점 파괴될 거야.’ 하지만, 식량 생산량과 탄소 배출량 등의 환경 오염 수치를 분석해 보면 이 주장에는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98년 인구 과잉론을 주창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는 “인류는 식량 생산량보다 빠르게 증가해 굶주림과 질병,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만큼 농업 생산성도 향상해 그의 이론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업 국가의 비축 식량은 필요량보다 많아 과잉 상태다. 세계인들의 주식인 곡물만 보더라도 1961년 이후부터 2021년까지 수확량은 인구에 비례해 꾸준히 늘어났다. 즉 오늘날의 식량문제는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란 이야기다.
인구 과잉이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주장 역시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환경오염은 인구보다는 각각의 사회가 얼마나 산업화되어 있는지, 얼마나 소비지향적인 삶을 사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전체 인구가 비슷한 우간다의 136배에 달한다(2018년 기준, EU <전 세계 CO2 및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서>). 이처럼 단순히 인구와 환경 오염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미국의 사회과학기관 연구단체인 우드로 윌슨 센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WWICS)의 연구원 제니퍼 시우바는 “환경 오염의 원인을 인구 과잉으로 돌리는 것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해롭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컨과 야외 수영장, 그리고 육식이 인구보다 환경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준다”고 이야기했다. 할인 행사에 휩쓸려 과도하게 쇼핑하거나 유행에 따라 이미 있는 물건을 또 사는 것, 육식을 너무 많이 하거나 플라스틱 용기가 많이 나오는 포장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이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훨씬 지구에 해롭다는 말이다.
지구 환경에 필요한 것은 인구 억제 정책이나 다운사이징 같은 기술이 아닌 친환경적인 소비 습관이다. 의식주 생활 속에서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영역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자. 물건을 살 때 내 장바구니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따져 보자. 이 약속만 지킨다면 인구나 사람 크기를 줄이지 않아도 살기 좋은 지구를 가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